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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시시하게 보이면 글쓰기가 나아진 것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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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가 첫 번째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 강의에서는 ‘글은 왜 쓰는가’ 라는 주제 아래 조지 오웰, 사르트르, 롤랑바르트가 글쓰기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살펴보았다. 또한 ‘인상적인 글쓰기’를 위해 알아야 하는 첫 문장과 끝 문장의 중요성, 논리와 수사의 역할 등을 공부했다.

칼럼니스트 고종석이 절필 선언을 한 것이 지난해 9월 24일이니, 꼭 1년 만이다. 직업적 글쓰기는 그만둔 그는 글쓰기 강좌로 독자들을 찾았다. 강좌가 시작하기 전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반드시 좋은 선생님은 아니지만 기자로, 소설가로, 에세이스트로 독특한 글쓰기를 해온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강의를 시작하며 고종석은 이 강좌가 문학이나 철학, 역사 강좌가 아닌 글쓰기 강좌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일정 정도 인문학적 지식이 등장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문장을 만들고 한국어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는 뜻이었다. 그런 만큼 강의를 듣는 것뿐 아니라 글을 읽고 쓰고 고치는 과제가 준비되어 있었다. 과제 양도 적지 않았다. 수강생들을 직접 글에 뛰어 들도록 하는 꽤나 본격적인 강좌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강생들 모두에게 나누어준 수업용 교재 『자유의 무늬』 였다. 김영삼 정부 말부터 김대중 정부 말까지지 고종석씨의 쓴 글을 묶은 낸 산문집인데, 그는 이 책 속에 있는 글을 읽으며 문제를 찾아 수정하는 것을 과제로 냈다.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자신의 글을 선뜻 내놓고 그 속에 있는 문제를 함께 찾아보자 권하는 것이 꽤 멋지게 느껴졌다. 글쓰기 능력은 끊임없이 다듬어지는 것이라는 말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곧 이 책에 있는 글들이 시시하게 보이면 그때 글쓰기가 조금 나아져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글은 왜 쓰는가?

강의는 글은 왜 쓰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수강생들은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소통하려는 의지라는 답을 내놓자 고종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조지 오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조지 오웰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나는 왜 쓰는가」 라는 글을 썼다. 만년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쓴 이 글에서 조지 오웰은 자신의 글쓰기를 회고하며 사람들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네 가지로 정리했다.

가장 먼저, 순전한 이기심이 있다. 글을 써서 자신을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미학적 열정이다. 언어의 아름다움 자체에 천착하는 마음을 말한다. 세 번째 이유는 역사적 충동으로 후대의 독자들을 위해 기록하려는 욕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꼽은 것은 정치적 목적이다. 여기서 정치적 목적은 현실 정치가 아니라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마음을 뜻하는 넓은 의미에서 쓰였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살면서 쓴 대부분의 글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이었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제외한 나머지 욕망들이 더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한 글들은 하나같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을 때라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 의미 없이 현란한 수식들이 많이 나온다는 거다. 결국 그가 평생하고 싶었던 정치적 글의 예술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언어를 ‘사물의 언어’와 ‘도구의 언어’로 나누었다. ‘사물의 언어’는 독자를 인식하기보다는 내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사르트르가 무용이나 음악에 가깝다고 생각한 시의 언어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도구의 언어’는 소설, 에세이, 정치적 팜플렛 등에 두루 쓰이는 산문의 언어다. 이는 앞에서 조지 오웰이 말한 정치적 목적과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어 고종석은 롤랑바르트가 말한 글쓰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롤랑바르트는 글쓰기를 ‘자동사적 글쓰기’와 ‘타동사적 글쓰기’로 설명했다. 기능, 재능, 기술에 가까운 ‘자동사적 글쓰기’는 사르트르가 말한 ‘사물의 언어’에 가깝고 활동이라 볼 수 있는 ‘타동사적 글쓰기’는 사르트르가 말한 ‘도구의 언어’와 조지 오웰이 말한 ‘정치적 목적’에 어느 정도 포개진다. 고종석은 앞으로 글쓰기 강좌에서 공부할 부분은 바로 후자라고 설명했다.




인상적인 글을 쓰는 방법 ‘선동의 대가들에게 배우기’

다음으로 던진 질문은 글 쓰는 능력은 타고나는가? 였다. 수강생들이 미묘한 웃음을 짓자 고종석은 “모든 뛰어남은 압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쓰기는 갈고 닦으면 나아진다”고 말했다. 말에 대한 감각은 어느 정도 타고나지만 충분한 연습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대학 때는 리포트 쓰는 일도 힘들만큼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주변에 작가들을 봐도 나이가 들면서 좋은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며 글쓰기 능력은 나아질 수 있다고 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은 많이 읽는 것. 그는 자신과 가까운 황인숙 시인과 차병직 변호사를 예로 들면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을 읽고 그것들을 조금씩 모방하다 보면 천천히 자기 것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다음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한 방법으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통과 설득을 목적으로 글을 쓸 때, 사람들은 그 글이 인상적이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거다. 사람을 설득하는 기법에는 선전과 선동이 있다. 선전은 독자의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이고 선동은 독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이는 중립적 의미로 좋고 나쁨을 가르는 말은 아니다.

고종석은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선동을 소개했다. 제일 먼저 토마스 페인의 『상식』 을 꼽았는데, 그는 이 책이 아니었으면 미국 독립운동이 늦춰졌을 거라 말했다. 다음으로 꼽은 책은 마르크스-앵겔스의 『공산당 선언』 이었다. 특히,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라는 첫 문장을 언급하며 글쓰기에서 첫 문장은 독자가 계속해서 글을 읽도록 만드는 힘을 가진다고 말했다. 물론, 이 신선하고 충격적인 문장들도 시간이 지나고 여러 가지로 변주되어 사용되면서 더 이상 새로운 문장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꼽은 것은 소설 『작은 것들의 신』 을 쓴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글이었다. 그녀가 쓴 「9월이여 오라」 는 두 개의 9월 11일을 통해 전개된다. 하나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등이 테러조직의 공격을 받은 날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1973년 9월 11일로 칠레에서 미국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장군이 쿠데타를 통해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킨 날이다. 작가는 이 두 개의 9월 11일을 포개놓으며 미국에 위선에 대해 말한다. 미국의 아픔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아픔 뒤에 미국이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녀의 이런 의도는 9월 11일을 중심으로 한 구조 속에서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고종석은 인상 깊은 글을 쓰기 위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번 더 되풀이 한 뒤, 몇 가지 글을 제시했다.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이 그 첫 번째 작품이었다.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중 한 꼭지를 이루는 이 정치적 팸플릿은 “헤겔은 어디선가 모든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강력한 도입부는 제목과 더불어 그 힘을 발휘한다. 브뤼메르 18일은 원래 1799년 11월 9,10일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체제를 구축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이 글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가 아닌 그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의 ‘브뤼메르 18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대한 이야기다. 나폴레옹 1세에서 그의 조카로 이어져 반복되는 쿠데타를 마르크스는 제목과 첫 문장을 통해 명확하고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그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까뮈의 『이방인』 에 대해 이야기했고, 대중 소설가인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 의 첫 문장을 소개했다. ‘What can you say about a twenty-five-year-old girl who died? That she was beautiful and brilliant? That she loved Mozart and Bach? The Beatles? And me?’ 라는 도입부만큼 유명한 것은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장인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였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의 경우, 반복을 통해 그 의미가 더욱 심화된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자를 화해시키려 애쓰는 부인에게 남편은 화를 내고 나간다. 시간이 지나 남편이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부인이 하는 말이 바로 이 대사이다. 그리고 부인이 죽은 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과를 하고 아들이 이 말을 받아 아버지에게 전하며 그 울림은 더욱 커진다. 같은 문장이라도 어느 곳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리와 수사,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글을 이루는 두 가지 부분, 논리학과 수사학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고종석은 “논리학은 이해를 위한 부분을, 수사학은 비유를 통해 글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의 이론을 이용해 비유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로만 야콥슨은 비유를 은유와 환유로 구분하고 은유는 유사성에 기초하며 환유는 인접성에 기인한다고 이야기했다. 은유에 대한 설명은 쉽게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환유는 낯설게 느끼는 수강생들이 많았다. 고종석씨는 사실 우리 생활 속에는 환유가 더 많이 사용된다고 말하면 몇 가지 예를 들어주었다. ‘최근 워싱턴과 파리의 사이가 가까워졌다.’라는 문장에서 워싱턴과 파리는 지명이 아니라 미국정부와 프랑스 정부를 뜻한다. 또 “나는 헤겔은 못 읽겠어.”라고 말할 때, 헤겔은 철학자의 이름이 아니라 헤겔의 책을 뜻하게 된다. 바로 이런 수사법이 환유다.

우리는 흔히 논리학은 명확함을, 수사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생각이 모든 경우 들어맞지는 않는다. 어떤 논리는 논리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으며, 수사 역시 명확함에 기여할 수 있다. 고종석은 극단적인 예라고 말하며 수학언어는 논리를 통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수사학이 명확함에 기여하는 예는 프랑스의 시인 레미 드 그루몽의 시에서 찾았다. 레미 드 그루몽의 시 「눈」 을 보면 ‘시몬, 눈은 네 목처럼 희다. 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라는 구절이 있다. 보통 ‘네 목은 눈처럼 희다’로 쓸 문장을 ‘눈은 네 목처럼 희다’로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바꾸어 쓴 것이다. 하지만 흰 것의 상징인 눈이 시몬의 목과 무릎을 닮았다고 말하면서 목과 무릎의 이미지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수사의 명확함과 논리의 아름다움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이 말은 수사를 통해 강력한 명확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수사의 경우 자연언어의 제약성을 갖는다. 한 언어의 수사법은 다른 언어로 가면 어색해지는 일이 많다. 위의 문장 역시 ‘자유’와 ‘공짜’가 모두 ‘free’인 영어권에서는 효과적인 말이 되지만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 그 맛이 사라진다.

이렇게 수사에 대한 설명을 마친 고종석은 글을 쓸 때, 논리와 수사를 모두 구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면 논리를 택하라고 말했다. 글이 논리적인 구조를 갖추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논리와 수사에 대해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어느덧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첫 강의라 그런지 수강생들은 여전히 또랑또랑했고 강의자 역시 여전히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 보였지만 모자란 시간을 탓하며 다음 수업을 기약했다. 수업교재인 『자유의 무늬』 를 읽고 문장을 고쳐보는 것, 가을에 대한 짧은 글을 써오는 것. 수업을 마치면서도 계속해서 과제를 확인하는 고종석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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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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