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보다 ‘생각의 변화’를 주목한다 - 『안철수의 생각』
온 국민이 궁금해하는 안철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다!
지지율에 비해 정치적 견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출간은 분명 적절한 일이었다. 역시나 책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판단해달라는 요청에 독자들은 응답하고 있는 셈이다. 독자들이 맹렬한 속도로 사서 읽고 있는 지금, 이제 독자들의 ‘판단’을 기다릴 시간이다…
“지금의 지지율을 온전히 믿는 것은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생각이 나를 지지하는 분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지율에 비해 정치적 견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출간은 분명 적절한 일이었다. 역시나 책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판단해달라는 요청에 독자들은 응답하고 있는 셈이다. 독자들이 맹렬한 속도로 사서 읽고 있는 지금, 이제 독자들의 ‘판단’을 기다릴 시간이다.
『안철수의 생각』은 훌륭하다.
『안철수의 생각』은 대선주자의 훌륭한 자기소개서다. 정책 실무자라면 물론 헛점을 발견하겠지만, 정책 결정권자의 비전과 가치관을 엿본다는 관점에서는 논리적 일관성과 명확한 방향성을 충분하게 보여준다. ‘고작 책 한 권’이라 폄하하는 시선도 있지만, 어쨌든 이제 정치적 견해가 모호하다는 식으로 비난할 근거는 사라졌다. 애매모호하게 말을 흐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세금은 더 걷어야 하고, 원전은 줄여야 하고, 한미FTA는 폐기가 아니라 재재협상이란 식이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결론을 도출하진 않는다. 자신의 원칙과 논거를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단기와 장기과제를 잘 구분한다. 다루는 이슈의 범위도 넓다. ‘판단’해달라고 내놓을 만한 책이다.
『안철수의 생각』은 불충분하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읽어도 ‘지지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철수의 키워드는 ‘복지, 정의, 평화’다. 손학규의 키워드는 ‘복지, 정의, 진보적 성장’이다.(‘저녁이 있는 삶’은 슬로건) ‘진보적 성장’에는 ‘평화성장’의 얘기가 포함되어 있다. 문재인 역시 『사람이 먼저다』에서 복지와 평화, 정의로운 시장질서가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를 한다. 확실히 세 후보의 방향은 유사하다. 이렇게 『안철수의 생각』이 안철수 만의 생각은 아닐 때, 독자들은 ‘내용’만 가지고선 판단을 내리기 곤란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슷한 얘기를 하는 손학규, 문재인보다 안철수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전혀 곤란해하지 않는다. 애초에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지지를 초과하는 문제였고, 본인도 인정하듯 기성 정당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안철수 현상’의 핵심이란 뜻이다. 그래서 안철수가 유권자에게 판단을 구하며 보여주어야 할 것은 ‘생각’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기성 정당과 차별점을 지켜갈 것인가’가 핵심이다.(안철수가 쉽게 민주당에 입당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책’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책에 없는 셈이다. 이 책이 훌륭한 책이자, 불충분한 책인 이유다.
안철수는 차별점을 지켜갈 수 있을까
안철수는 ‘수출 대기업’ 중심이 아닌 ‘중소기업’ 중심의 안정된 내수 경제를 꿈꾸고, 세금을 더 걷어 탄탄한 사회 안전망을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며 밝혔듯 대기업은 정치권력도 함부로 할 수 없을 힘을 지니고 있고, 세금을 ‘폭탄’으로 여기는 국민 일반의 정서도 여전히 팽배하다. 참여정부는 탄핵역풍으로 거대 여당(열린우리당)을 꾸린 시절에도 ‘국가보안법’ 법안 하나의 개혁에도 실패한 바 있다.
이런 현실에서 소속 정당도 없고, 변변한 원외 지지단체 하나 없는 안철수가 ‘시스템’을 개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보수/진보의 합의로 복지국가를 일군 스웨덴과 독일의 사례를 들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가능하다 말하지만, 스웨덴과 독일이 강력한 노조를 바탕으로 기업집단과 절충점을 마련할 수 있었단 점을 눈 감은 순진한 언급이라 할 수 있다. 힘이 없으면 ‘타협’도 불가능하다. 지금이야 대중의 지지가 압도적이지만, 임기 초반 양대 정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 지지는 언제든 ‘무능’이란 비판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고 입당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앞서 확인했듯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기성 정당과의 차별점이다. ‘안철수’를 통해 ‘민주당’의 쇄신이 이뤄질 확률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상처없는 단일화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로서는 묘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과연 차별점을 어떻게 지켜나갈까.
안철수의 ‘생각’보다 ‘생각의 변화’를 지켜보자
‘기성 정당과 차별화된 존재’로서의 안철수를 판단하는 것은 이처럼 철저히 책 밖의 근거들로 이야기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안철수의 생각』을 안철수에 대한 지지/반대의 근거로 삼는 독법은 불충분하며, 안철수에게 어서 등판을 하고 국민에게 검증의 시간을 주어야 한단 얘기는 합리적인 면이 있다. ‘책 내용’ 그대로의 정책을 지킬 수 있는가 여부도 ‘책 밖 행보’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책은 제한적인 판단 근거다.
하지만 『안철수의 생각』은 여전히 의미가 크다. 한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을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조정을 거치게 되는지 이제 많은 독자들은 목격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물이나 정당이 변화를 이끌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라 여긴다. ‘훌륭한 개인’도 사회구조 앞에선 역부족이고, ‘정당’은 선거 때를 제외한다면 표보다 기득권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의 세력관계와 여론의 변화가 명백하게 선행할 때 비로소 합당한 인물이 힘을 얻고, 정당은 움직일 것이다. 그러려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한반도 갈등보다 한반도 안정, 고소득자 감세보다는 서민 복지에 힘을 싣는 세력이 성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오늘, 안철수의 생각은 ‘책’ 그대로 진행될 수 없음이 거의 명백하다. 바로 이 부분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큰 권한’을 지닌 한 인물에게 기대를 보내는 것 보다 기득권 세력을 압박하기 위해 사회의 구석구석, 이슈 하나하나에 대한 일관된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안철수의 생각』이 앞으로 한국 사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이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분명히 이 책을 읽어 둬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