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음악이 위대할 수 있었던 이유 - 아이삭 헤이스(Isaac Hayes)의 < Shaft >
비단 대중음악사 뿐 아니라 모든 역사에 있어 ‘최초’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감은 상당합니다. 아이삭 헤이즈는 아직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그 모든 편견을 이겨내고 처음으로 국민적 영웅의 자리에 오른 흑인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작품이 이 앨범이었지요…
아이삭 헤이스 Isaac Hayes 흑인음악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 샤프트 등록일: 2012.08.17
김동률 음악 여정의 시작점 - <The Shadow Of Forgetfulness>
1993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이름을 알렸던 ‘전람회’의 김동률은 변해가는 세월에 따라 새로운 음악의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김동률 The Shadow Of Forgetfulness 배려 동반자 등록일: 2011.12.05
반전 음악의 표상이 된 작품 - 밥 딜런(Bob Dylan)
그는 포크에 활력과 중요성을 부여하여 60년대 초반 전면적인 포크 붐을 일으켰고 영미 대중음악에 저항정신을 일깨웠다.
밥딜런 Bob Dylan 포크 Freewheelin' 등록일: 2011.08.12
90년대 수작 앨범 <서태지 3집>, 보컬은 아쉬워 -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3집>(1994)
등록일: 2009.06.10
대중음악사에는 ‘광기의 음악’들이 몇몇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보편적인, 혹은 일반적인 작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힙스터들에게 종종 신봉되기도 하지요. 조이 디비전의 경우가 꼭 그렇습니다. 여담이지만, 영화 < 500일의 썸머 >를 기억하신다면 이 커버아트를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 이언 커티스 포스트 펑크 500일의 썸머 등록일: 2012.11.19
1980년대 일본의 젊음, < 린다 린다 린다 >의 그 노래 - 블루 하츠
해체한지도 벌써 17년, 그럼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추앙받고, 계속 불리어지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언급이 된다. 이를 통해 위대한 음악과 뮤지션의 존재 의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동시에, 결국 그러한 결과물의 원천은 남들과는 다른 시도와 계산 없는 열정임을 재확인시킨다.
“표절 또한 예술의 한 방법이다” 주장한 여장남자 - 컬쳐 클럽(Culture Club) < Colour By Numbers >
컬처 클럽(Culture Club)은 마이클 잭슨의 바로 뒤를 이어 < Thriiler >와 인기 정상을 바톤 터치한 그룹이었다. 그들의 두 번째 음반 < Colour By Numbers >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의 상징인 보이 조지(Boy George)는 『Newsweek』지의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스스로 ‘성 개척자’임을 자부한 그는 여장차림과..
컬쳐 클럽 보이 조지 표절 Crying Game 크라잉 게임 등록일: 2012.07.06
교통사고로 한쪽 팔 절단, 남은 한 팔로 드럼 연주 감동 - 데프 레파드(Def Leppard)
1983년 앨범 < Pyromania >는 7백만 장이 팔려나가 팝 메탈의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진은 그 정도의 실적을 창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4년 뒤에 발표한 이 앨범은 전작의 규모를 뛰어넘어 당시에만 9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전대미문의 신화를 창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