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하루] 수학, 그리고 나 – 최윤영
에세이스트의 하루 13편 – 최윤영
나는 수학을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한 번도 백 점을 받아본 적이 없는 유일한 과목.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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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학을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한 번도 백 점을 받아본 적이 없는 유일한 과목. 윤영이는 수학을 못하는구나.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그래서 대학은 가겠니? 엄마는 걱정했다. 난 어떻게 하지? 나는 겁을 먹었다.
중학교까지는 전교 꼴찌였지만 서울 의대에 합격한 오빠나 유학 없이 하버드에 합격한 언니가 쓴 에세이가 유행하던 시절, 나도 비슷한 책을 몇 권이나 선물 받았다. 요즘은 학교도 부모님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라’고 하시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공부를 잘하는 게 적성을 찾는 것이었다. 조금 재수 없는 말이지만 어릴 때 나는 배운 적도 없는 한글을 줄줄 읽었고 7살부터 영어를 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천재를 낳았다고 생각했다. 천재로 태어났으면 응당 명문대를 가 최씨 집안을 드높여야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수학을 못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데 다른 친구 어머니가 그랬다. 현정이는 수학 잘하는데 윤영이는 수학 못한다며. 둘이 노는 것만 하지 말고 공부도 좀 배워. 눈이 오백원짜리만큼 컸던 동생과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면 꼭 어른들이 한마디를 했다. 자매가 하나두 안 닮았네. 너는 나중에 쌍꺼풀 수술해라, 응? 사과 한 알을 사도 예쁘고 붉은 것을 고르는 어른들 눈에는 나도 사과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국어를 잘해서 50점, 책을 많이 읽어서 10점, 또래보다 키가 커서 10점을 받았지만 수학을 못해서 40점이 깎였고, 쌍꺼풀이 없어서 다시 10점이 깎였다.
중학교 때 ‘샤프로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했다’는 전교 1등의 수기를 읽었고 100점짜리가 되어야 했던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14살의 나는 내 허벅지를 난도질하면서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공부를 제대로 한 거야”라는 만족감과 ‘100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어느 날 티비를 보다가 무심코 허벅지를 봤는데 피멍이 들어 온통 울긋불긋했다. 내 몸이지만 내 몸 같지가 않았다. 징그러웠다. 저녁을 굶으며 독서실에 앉아있는데 너무 배가 고팠다. 100점을 몇 개나 맞아도 성적표가 나오는 날에는 언제나 울면서 집에 갔다. 만족은 재미가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도, 장래희망에 의사를 적어넣는 것도, 내 허벅지를 난도질하는 것도 사실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 선생님이나 가수가 되고 싶었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시험에 안 나오는 소설을 읽는 게 좋았다.
나는 수학을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수학 문제집을 접어두고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하면서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마킹 하는 것도 까먹어 마구잡이로 찍고 답안을 제출했고 8점을 받았다. 내가 80점을 받았을 때도 인상을 쓰던 엄마 아빠가 그때는 웃었다. 아마 기가 차서 그랬을 거다.
‘자존감 높아지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글이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자존감 높아지는 법’이라는 제목을 볼 때마다 수학 문제집에 파묻혀 울던 어린 나를 떠올린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나에게 이런 옷이 어울리는지, 이 머리를 해도 되는지, 이 행동을 해도 되는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몇 점인지.
15년 전, 아빠는 나에게 수학을 못해서 어떻게 할 거냐 했다. 14년 전, 엄마는 수학을 못하는 게 창피하지 않냐고 물었다. 한때는 걱정스러웠고 어떤 때는 창피했으나 50점짜리 성적표를 가져온 16살은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50점이고 앞으로 100점을 받을 수 없을 테지만 그게 괴롭지 않았다. 수학을 못하는 건 그냥 수학을 못하는 거니까. 수학을 못해도 된다고 결정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의사가 되지 못했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50점짜리 성적표를 가져왔던 해에는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그때 나는 몇 점이었을까? 지금 나는 몇 점일까? 50점일 수도 있고 80점일 수도 있고 혹은 0점일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내가 정했기 때문에!
*최윤영 아직은 대학원생, 오늘 쓰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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