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7월 대상 - 우리에게 케이크가 필요한 이유
나를 위로했던 음식
입안에서 부서지는 달콤한 냄새와 혀끝에서 녹는 씁쓸한 초콜렛. 한참을 씹다가 애처럼 울었다. 우울한 스물에게도 케이크는 필요했다. (2020.07.02)
아홉, 혹은 열. 그 사이쯤의 일이다. 하루는 동생이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친구 A와 싸우다가 이마를 얻어맞았다고 했다. 세 아이를 기르며 학원을 운영하던 내 부모님은 그 나이대 애들이 별일도 아닌 일로 죽을 만큼 싸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만큼 관대했다. 늦은 저녁 사과를 하기 위해 들린 A의 어머니에게 재차 괜찮다고 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A의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그 주 토요일이었다. 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던 것이 영 마음에 쓰였다 한 A의 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케이크 좋아하니?” 물으며 같이 나가자 했다.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빵집에 들어서자 문에 붙여 둔 종에서 소리가 났다. A의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케이크가 잔뜩 놓인 쇼케이스로 데려갔다. 초콜렛으로 모양을 낸 무스 케이크, 딸기와 파인애플, 포도 따위가 올라간 하얀색 생크림 케이크, 딸기맛이 날 것 같은 분홍색 케이크. 동네에서도 짠순이로 소문이 난 엄마는 군것질거리나 장난감을 사주는 일에 특히 인색했고, 생일 케이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날, 갑자기 찾아온 색색의 케이크에 우리는 시선을 온통 빼앗겼다. A의 어머니는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 하셨다. 그날 저녁, 동생은 생크림 케이크를 씹으며 사실 화가 다 풀렸다고 속닥거렸다.
스물이 되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주일 중 삼 일은 등교를 하고 나흘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에게는 동생이 둘이나 있었고, 만나야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써야 하는 돈이 있었다. 레시피를 외우는 것도, 포스기의 작동 방법을 외우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았지만 ‘아가씨!’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나는 사람들이 왜 인상을 찌푸리는지, 왜 내게 소리를 지르는지, 왜 가끔 내 얼굴에 돈을 집어 던지는지 궁금했지만 그 사람들은 내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예고 없이 내린 소낙비를 맞은 것처럼 엉망으로 젖어야 했다. 자주 그랬다.
하루는 또래 손님이 삿대질을 하며 들어본 적도 없는 욕을 했다. 택배 기계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잘못은 기계가 했지만 내게 사과를 요구했고, 당황하여 쳐다보자 소리를 질렀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장님도 내게 사과를 하라 윽박을 질렀다. 포스기 작동 방법을 외우는 것도, 상품의 위치를 외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죄송합니다’ 한마디 하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도 기어코 해냈다.
근무하던 편의점 건너편에 조각 케이크를 파는 카페가 있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다 별안간 그곳으로 들어갔다. 케이크를 산 것은 굉장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집 앞 공원에 앉아 포장해온 케이크 상자를 펼치고, 밤 11시에 꾸역꾸역 케이크를 퍼먹었다. 입안에서 부서지는 달콤한 냄새와 혀끝에서 녹는 씁쓸한 초콜렛. 한참을 씹다가 애처럼 울었다. 우울한 스물에게도 케이크는 필요했다.
스물의 나는 스물일곱의 내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스물세 살의 나는 스물여덟의 내가 대단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운전도 슝슝 하고, 돈도 차곡차곡 모으고,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명확하게 찾아서 가는 그런 어른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비문학 지문보다 재미가 없고 나는 그보다 재미없고 시시한 어른이 되었다. 울진 않아도 잠 못 드는 일이 종종 생겼다. 첫 애인과 헤어졌을 때도 반년을 매달린 공모전에서 낙방했을 때도, 친구와 연락이 뚝 끊기거나 엄마와 다투었을 때도 나는 케이크를 씹었다. 여러 가지 맛의 만 원짜리 일탈. 어떤 때는 낭비이고 어떤 때는 사치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오늘을 보내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훌쩍 자란 우리에게도 케이크가 필요한 이유 말이다.
최윤영 아직은 대학원생, 오늘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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