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왜 교향곡에 ‘합창’을 넣었는가?
인류에게 띄우는 베토벤의 편지, 베토벤 9번 교향곡 « 합창 », Op.125
암울했던 2020년을 보내고 다가올 2021년에 대한 약간의 위로와 희망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2020.12.28)
1789년 프랑스혁명이 터졌을 때, 베토벤은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문학도였던 피 끓는 청년에게 옆 나라에서 세습 군주정을 끝내는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이상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의 고유하고 거룩한 권리,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인을 넘어 유럽인의 마음에 새겨졌고, 베토벤의 영혼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1785)’는 베토벤이 꿈꾸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시였습니다. 혁명의 시대를 사는 젊은 작곡가는 언젠가 그 시에 음악을 붙이겠다 결심했습니다.
예술, 오직 예술로만 나를 견딜 수 있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세상을 뜰 수는 없으니까.
언젠가는 진정으로 끔찍한 이 삶에도 끝은 오겠지.
[…]
28살 때부터 철학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예술가인 내게는 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알지? 나의 내면 깊은 곳에도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인류에 대한 사랑, 자비를 구하는 마음이 내게 숨겨져 있다는 것을.
<1802년, 하이리겐슈타트에서 동생 카를과 요한에게>
베토벤은 27살 때부터 서서히 청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괴로웠을 작곡가의 몸과 달리, 그의 영혼은 음악으로 만들어진 비물질적 세계를 한계 없이 유영하는 듯 자유로웠습니다. 그에게 음악은 진동으로 전달되는 물리적 현상을 넘어 그가 꿈꾸는 이상을 전하는 철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술, 박해받는 이 예술은 어디에서든 결국 안식처를 찾습니다.
미로에 갇힌 다이달로스(크레타섬의 미로 제작자)는 자신을 미로에서 탈출시켜줄 날개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도 찾을 겁니다. 그 날개
<1812년, 빈에서 니콜라우스 츠메스칼에게>
그를 가둔 미로는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병이었을 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단언합니다. 그 미로를 날아오를 날개를 찾을 거라고 말이죠. 미로에 갇혀 길을 찾지 못할 때,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도 베토벤은 그것이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하고 극복할 길을 찾아냈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여러 작품에서 암흑으로부터 빛으로 나가는 음악 구조로 나타났습니다.
일생을 병과 싸우고, 예술에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 대항하며 인류의 진보를 열망했던 베토벤은 사망하기 3년 전, 마침내 실러의 시를 «합창» 교향곡으로 완성했습니다. 위대한 건축물과도 같은 이 교향곡은 인류에게 띄우는 베토벤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1악장의 지축을 울리는 듯한 도입부, 거칠게 연주하는 첫 번째 주제와 선율적이고 부드러운 두 번째 주제의 강력한 대조, 그리고 관현악단 전체가 이끄는 거대한 울림은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교향곡을 시작합니다.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은 제1 주제와 제2주제를 대조하는 제시부, 앞에서 나온 몇 가지 음악적 아이디어를 화려하게 발전시키는 발전부, 그리고 제시부가 다시 돌아오는 재현부로 진행됩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 스스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일종의 기승전결과 같은 구조인 셈이지요. 재현부가 끝나고 나면 비정상적으로 긴 종결부(코다)가 이어지면서 장송행진곡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장엄하게 1악장을 마무리합니다.
2악장은 ‘스케르초-트리오-스케르초 다 카포’ 형식으로 작곡되었습니다. 팀파니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강력한 리듬과 속도로 음악을 이끌어 갑니다. 긴 스케르초에 이어 나오는 트리오는 우리가 흔히 아는 3중주와는 상관없습니다. 그저, 형식을 부르는 용어일 뿐이지요. 힘이 넘치는 스케르초와 대조적으로, 트리오는 부드럽고 평온합니다. 호른과 오보에가 자아내는 음색으로 목가적인 분위기는 한층 고조됩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에 나왔던 스케르초가 재등장해 다시 에너지를 끌어 올립니다.
3악장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느린 악장입니다. 형식으로 단단한 구조를 만드는 베토벤은 이번에는 변주곡 형식을 선보입니다. 속도가 약간 다른 두 개의 주제 선율을 다양한 악기 편성으로 변주하며 악장 전체를 평화롭고 차분하게 이끌어 갑니다. 마지막 변주 전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팡파르는 아직 모든 게 끝나지 않았음을 부드럽게 일깨워 줍니다.
4악장의 도입부는 평온한 들판에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처럼 3악장의 단꿈을 단숨에 깨버립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낮고 깊은 독주 선율은 마치 레치타티보(성악가가 오페라에서 말하는 것처럼 노래하는 부분)를 노래하듯 연주합니다. 악기가 연주하는, 가사 없는 레치타티보 사이로 1, 2, 3악장에서 나왔던 선율들이 과거를 회상하듯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환희의 송가’ 선율도 그 틈에 삽입되어 새로 시작될 미래를 예고편처럼 맛보여줍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만 보였던 관현악 연주 이후 바리톤 솔로가 들어 오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음악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바리톤 솔로에서 솔리스트 4중창으로, 마침내 합창단이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부분에 이르면 그제야 베토벤이 왜 교향곡에 ‘합창’을 넣었는지를 온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1악장부터 지금까지 추상적으로 쌓아 올린 분노, 두려움, 기쁨, 평안함, 즐거움, 환희에 인간의 목소리로 정확히 그 이름을 붙여 주기 때문입니다. 성악이 나오기 전, 45여 분간 경험한 온갖 감정은 실러의 시와 연결되며 강력한 메시지로 우리를 관통합니다.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던 1824년 5월의 어느 저녁, 거의 10년 만에 베토벤은 무대에 올랐습니다. 작품이 끝나고 청중이 기립해 연주장이 떠나가도록 박수를 보내도 이미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작곡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솔리스트 중 한 명이 다가와 청중에게 등을 지고 있던 베토벤을 돌려세웠고, 그제야 그는 청중에게 자신의 염원이 가 닿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귀로는 들을 수 없었던 환희의 소리가 모두의 영혼을 적시고도 남을 만큼 충분했음을 확인한 것이죠.
모이는 것만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 지 거의 9개월이 흘렀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느라 일상은 자주 멈추고, 불안함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으로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중입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잘 느끼지 못했던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모두를 평등하게 공격하는 공공의 적을 만나고 나서야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 중 환희와 관련된 부분만을 가사로 사용했습니다. 평생,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꿔온 천재가 인류가 자신을 구할 길은 인류애 밖에는 없음을,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가 경험할 ‘환희’를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70분간의 대서사시를 써 내린 것입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온 합창단이 ‘환희의 송가’ 주제 선율을 부를 때 베토벤이 실러의 시에서 선택해 붙인 가사입니다. 9번 교향곡 전체에서, 아니 음악사 전체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하지요.
환희, 그 아름답고 신성한 광채,
엘리시온의 딸이여,
우리는 그 빛에 취해
당신의 경이로운 성소로 들어갑니다.
신비로운 당신의 힘으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이 다시 화합합니다.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펼쳐진 곳에서
인류는 모두 형제가 됩니다.
훌륭한 음반이 많이 있지만, 연말이 가기 전 다니엘 바렌보임이 2012년 영국의 프롬(Proms) 페스티벌에서 지휘한 4악장 영상(//youtu.be/ChygZLpJDNE)을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마스크 없이 가까이 모여있는 수많은 청중, 관현악단, 합창단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밀려옵니다. 특히, 어린 연주자들과 합창단원들이 찬란하게 빚어내는 열정과 환희에서, 암울했던 2020년을 보내고 다가올 2021년에 대한 약간의 위로와 희망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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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