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9월 우수상 - 반품도 어려운, 뜯어야만 알 수 있는 성패
가장 후회했던 쇼핑
매번 고심해서 고르고 결재를 반복한다. 우리 집고양이님 둘이 맘에 들어 하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2020.09.08)
늘 복불복이다. 어느 때는 더없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이걸 왜 샀나 하는 후회는 기본이고, 포장을 뜯었기 때문에 반품도 되지 않아 처치 곤란에 빠져 곤욕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매번 고심해서 고르고 결재를 반복한다. 우리 집고양이님 둘이 맘에 들어 하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그날은 좀 다른 아침이었다. 탁, 탁, 밀폐 용기 통이 열리고 또로로롱 사료가 스테인리스 식기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일등으로 달려와 자리를 잡던 까망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니 냄새를 맡기만 할 뿐 먹질 않는다. 자기 밥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동생 베르가 먹고 있으면 머리를 슬쩍 들이밀어 뺏어 먹던 녀석이었다. 어제 자정까지만 해도 와그작와그작 잘 먹었는데,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냄새만 한번 맡을 뿐 다시는 밥그릇 근처에 오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사람이면 물어라도 볼 텐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가서는 무엇을 들이대도 본체만체하기만 할 뿐 요지부동이다.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머릿속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별일 아니길 기도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죄다 무서운 얘기뿐이다. “소화기 계통, 치주질환, 호흡기 질병 등 식욕부진은 질병에 걸렸을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검색할수록 마음에 돌덩이가 하나씩 쌓이는 느낌이다. 왠지 까망이의 낯빛이 좋지 않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우선은 오랜 시간 고양이 집사였던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가장 좋아하는 간식, 맛밥을 줘보고 하루 정도 지켜보기로 했다.
난제는 여기서부터다. 아주 좋아하는 간식 그 간식을 찾으려고 난 얼마나 많은 쇼핑을 했던가. 유명하다는 궁디팡팡 캣페어에 가서 줄이 긴 곳만 골라가며 사료와 간식을 사기도 했고, 온라인에 “기호성 짱이에요”라는 후기가 많은 것을 골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적중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뜯자마자 달려든다는 츄르도 까망, 베르는 냄새만 맡고 절대 먹지 않는다. 어떤 제품은 냄새를 맡고 뒷걸음질 치거나 땅에 묻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땅에 묻는 시늉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앞발로 땅을 파는 흉내를 내면 정말 내가 들고 있는 간식이 땅속에 묻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맛밥을 주라고? 주식으로 먹는 사료 말곤 다 묻어버리는 녀석에게 최애 간식은 무엇일까?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래도 무엇이든 해봐야 한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낯선 곳에 가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이유로 병원에 다녀온 후 컨디션이 나빠져 더 손이 가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는 건 고양이에게도 집사에게도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밥을 먹지 않는 증상 말곤 특별한 이상은 없으므로 속이 안 좋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도 속이 좋지 않으면 죽을 먹으니, 죽처럼 먹을 수 있는 연어, 칠면조, 닭가슴살 등 종류별로 사둔 습식 사료를 꺼내 보았다. 제발 하나쯤은 있기를 바라면서 하나씩 깠지만 역효과만 생겼다. 냄새를 맡고 폴짝 뛰어오르더니 토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베르는 칠면조 맛 사료를 싹싹 핥아먹고 있었다. 한 녀석에게는 나의 쇼핑이 틀렸다는 슬픔과 다른 녀석에게는 좋아하는 맛 하나를 찾았다는 환희를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크게 탈이 난 것 같은 녀석은 내일 병원에 데려가기로 하고, 한 녀석을 위해 또다시 쇼핑에 몰두한다. 칠면조 맛을 좋아했으니 칠면조가 들어가 고양이 먹거리를 검색해 장바구니에 담는다. 다양한 브랜드의 사료와 간식을 담고 결제. 더 이상 실패는 없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지 않았던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설거지한 것처럼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택배가 도착했다. 와구와구 아침밥을 먹는 까망, 베르를 보니 왠지 두 마리 모두가 좋아할 거 같다. 택배를 뜯어 저녁 대신 주려고 건넸더니 두 마리 모두 관심이 없다. 믿을 수 없었다. 칠면조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베르 마저도 관심이 없다. 이건 배신이다. 남은 습식 캔을 보면서 이걸 어쩌나 싶다. 오늘도 남은 사료를 들고 길고양이를 찾아다녀야겠다.
김원희 고양이를 얻고 잠을 잃은 집사입니다. 덕분에 커피의 맛을 알게 됐어요. 무척 행복하네요. 웃음, 땀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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