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 특집]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출판사 -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월간 채널예스> 2020년 9월호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해오던 이벤트가 연거푸 엎어지고 앞으로의 일도 기약할 수 없어지자 새삼스러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제 뭘 하지. (2020.09.08)
얼마 전 여행사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연락을 받았다. 자신의 집을 파티룸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에어비앤비에 등록했으니 널리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홍대에서 제일 높은 그곳의 옥상 파티에 초대된 적이 있었던 나는 멋진 생각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한편으로 지난 몇 달간 여행사 업무가 마비되는 바람에 짜낸 고육책이겠구나 싶어서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그는 20년 넘게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보는 투어를 진행해온 베테랑 가이드다. 2016년에 ‘유럽 서점 떼거리 유랑단’이라는 이름의 북스피어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듬해부터 우리는 매년 독자를 모아 유럽으로 떠났다. 이를 통하여 쉽게 맞닥뜨릴 수 없는 다양한 서점을 복수의 눈으로 둘러보며 ‘혼성합창의 질감이 있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는 건 큰 매력이다. 그러나 올해는, 망했다. 그뿐이랴. 올 초에 뜻한 바대로라면 지금쯤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만나러 갈 독자 인터뷰단을 모집하고 장르문학 부흥회 준비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테지만 코로나 때문에 전부 중단됐다.
해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해오던 이벤트가 연거푸 엎어지고 앞으로의 일도 기약할 수 없어지자 새삼스러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제 뭘 하지. 물론 출판사 이벤트라면 온라인에서도 열심히 해왔다. ‘읽었나뷰 배틀’이라거나 ‘폴링 리더 챌린지’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독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들이 남긴 댓글, 직접 만든 동영상, 책을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고 계속해서 색다른 아이디어를 구상해야겠다는 의욕을 고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플랫폼이 또 하나 생길 때마다 두 마리 토끼,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숨이 턱까지 차고 무릎이 자주 꺾이는 기분을 맛보았다. 관리해야 할 플랫폼이 늘어나는 만큼 업데이트하는 콘텐츠의 자연스러운 활력도 독자와 나누던 소통의 깊이도 점차 사라져갔다. 그런 주제에 요즘에는 “유튜브를 해야 하나”라는 말을 되뇌고 있다. (구)독자가 여기저기로 분산되는 와중에 ‘유튜브가 대세’라는 소문을 주야장천 듣다 보니, 습자지와도 좋은 승부가 될 만큼 얇은 귀를 가진 나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대에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어떨까. 과연 새로운 토끼를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능사일까.
이런 고민을 안고 동종 업계 종사자를 만날 때마다 물어보았다. 혹시 최근에 눈여겨보고 있는 서점이나 출판사의 온라인 플랫폼이 있느냐고. 하나같이 “우리 출판사 블로그에,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브런치에, 카카오 플러스에, 네이버 출판사 공간에, 뉴스레터에, 유튜브에 글(콘텐츠)을 올리고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사가 커버해야 할 공간에 짓눌려 다른 쪽으로 눈 돌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데 그와 같은 생산성은 바람직하기만 한지 의문이 든다. 내가 보기엔 정보의 집적 공간이 확장되어 간다기보다 그저 여러 플랫폼에 형식만 달리한 같은 알맹이를 복제할 뿐인 듯한데. 결국 만드는 쪽이나 보는 쪽, 모두에게 피로감이 쌓이지 않을까.
올해 5월 16일 <워싱턴 포스트>는 서점, 페스티벌 담당자, 도서관, 작가, 출판사가 각자 온라인 이벤트(Virtural Events) 정보를 올리면 북팀의 스태프가 솜씨 좋게 배치하여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라이브러리 캘린더’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라이브러리 캘린더 오른쪽 상단에 표시된 ‘이벤트 추가’ 항목을 클릭하면 누구라도 이벤트 계획을 제출할 수 있다. 독자들은 책 관련 정보를 한눈에 파악하고 마음에 들면 즉석에서 참여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처럼 정보를 콤팩트하게 큐레이션한 통합 플랫폼의 개발은 코로나 이후로 가속화될 언택트 환경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똑같이 따라 하자는 건 아니지만 문어발식 플랫폼 운영을 타개할 대응책으로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바스카가 지적한 대로, 혁신적이라 평가받는 아이폰 역시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하나로 엮은 것일 따름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라 연대, 누군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 그걸 알아봐 주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의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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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