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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모두 함께 읽는 책] 어린이와 제대로 대화하는 방법
<월간 채널예스> 2020년 7월호 『이파라파냐무냐무』, 『당근유치원』
우리는 이런 배려 속에 자랐고 신입은 선임이 되었으며 결국은 누군가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은 오늘도 한 발짝씩 더 가까워진다는 기대를 놓지 않게 만드는 두 권의 멋진 그림책이다.(2020. 07. 07)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아기들은 웅얼거리면서 무언가를 부지런히 이야기한다. 세계와 소통하려는 아기들의 진지한 태도는 어른 못지않다. 온 힘을 다해 손짓발짓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아기들은 이미 충분한 열변가다. 어른들은 “배고프니?”, “더워?” 같은 물음으로 그들의 의사를 어림잡아 확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 적다고 해서 아기들의 감각이나 감정이 그만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불편을 말해도 “오늘 왜 짜증이 많을까?”, “또 졸리니?”로 뭉뚱그려질 때 아기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할까.
옹알이 단계를 지나 말을 좀 더 잘 할 수 있는 어린이가 된다고 해도 형편은 비슷하다. 어린이의 말은 동의 없이 축약되고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해석되거나 필요에 따라 변형된다. 누군가와 소통하려 한다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어린이에 대해서는 유독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시혜적 표현을 쓴다. 어서 의사를 전해야 하는 쪽은 애가 탄다. 그래서 어린이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울고 구르며 애쓴다. 하다하다 지쳐서 표현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표현이 적으면 오히려 순해졌다고 오해 받기도 한다. 상대가 권력을 가졌을 때는 손가락만 까딱해도 알아서 뜻을 살펴 모시는 사람이 흔하고 흔한 세상이지만 간절한 어린이의 언어에 끝까지 귀 기울이는 어른은 드물다. 방법을 모른다면 배우면 될 텐데 어쩌면 좋을까. 그림책 중에 어린이의 말을 듣는 태도를 잘 알려주는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
이지은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하얗고 몽실몽실한 마시멜로들이 모여사는 마시멜롱 마을의 이야기다. 책의 겉면을 감싼 종이를 벗기면 다 다른 표정을 지닌 36명의 마시멜로가 나타난다. 셋이나 둘이 사는 마시멜로도 있고 혼자 사는 마시멜로도 있다. 이들은 레몬색 아보카도 모양에 석류 같은 알맹이를 가진 신기한 열매를 나눠 먹고 산다. 어느 날 평화로운 마시멜롱 마을에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추적해보니 커다랗고 시꺼먼 털숭숭이가 내지르는 소리였다. 털숭숭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마시멜로들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파라파 냐무냐무”라는 정체불명의 언어만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마시멜로들은 “냐무냐무”라는 소리에 착안해 털숭숭이가 자신들을 후루룩 냠냠 잡아먹으려 한다고 짐작한다. 새총에 열매를 장전하고 털숭숭이를 무찌르러 나선다. 하지만 털숭숭이는 마시멜로들의 공격에 끄덕도 하지 않으며 “이파라파 냐무냐무”라고 되풀이 외친다. 털숭숭이의 말을 통역해낸 것은 결국 그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말을 들어주려고 정성을 다했던 한 작은 마시멜로였다. 이 마시멜로는 털숭숭이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보라고 다정하게 알려주고 덕분에 마시멜롱 마을을 위기에 빠뜨렸던 암호말의 의미가 풀린다. “이파라파 냐무냐무”의 의미와 마시멜로의 모양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끝까지 읽고 나면 작가의 착상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 속에서는 마시멜로들도 어린이지만 털숭숭이도 어린이다. 표현이 서툰 어린이와 어린이 사이의 소통에서 부드러운 열쇠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기”와 “서둘러 상대가 화났다고 짐작하지 말기”다. 이는 어린이와 어른이 대화할 때도 유용한 비법이다.
안녕달의 그림책 『당근 유치원』에도 대화자가 배워야할 자세가 장면마다 가득이다. 빨간 토끼는 전학생이어서 당근유치원이 낯설고 불편하다. 만약 자상한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빨간 토끼가 유치원에 순조롭게 적응했다는 스토리가 펼쳐졌다면 재미없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른과 어린이는 함께 서투른 사람이고 나아지는 사람이라는 걸 말한다. 빨간 토끼의 담임인 곰 선생님은 목소리 크고 힘만 세며 책으로만 배운 선생님 역할이 아직 어색하다. 빨간 토끼는 새로운 유치원에 정이 안 붙어서 심통을 내는 중이다. 이런 빨간 토끼의 마음을 180도 돌려놓은 것은 그런 아기토끼들의 불편함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곰 선생님의 진지한 노력이다. 빨간 토끼가 바지에 응가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거 흙이에요. 똥 아니에요.”라고 우기자 곰 선생님이 “그래, 흙이야. 어서 바지 갈아입자. 친구들이 똥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어린이와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는 최고의 예문이다. 독자는 빨간 토끼와 함께 곰 선생님의 팬이 된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 “선생님. 이거 봐요!”라고 고함치는 빨간 토끼의 마음이 완벽히 이해된다.
곰 선생님의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행정과 시설관리의 달인, 다람쥐 원장님도 흥미로운 캐릭터다. 작가는 유아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생생히 보여주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사 개인의 역량에 기대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많은 어른들의 우호적인 협력으로 한 아이가 자라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빨간 토끼의 마음 변화에 따라 처음에는 유치원 반대방향으로 날다가 어느 순간부터 유치원 방향으로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이나 주인공만큼 주목받지는 않지만 말하고 표현하기를 멈추지 않는 다른 아기토끼들의 표정, 돌봄노동자로서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곰 선생님의 한숨까지 구석구석 잡아낸 작가의 예리함이 놀랍다. 우리는 이런 배려 속에 자랐고 신입은 선임이 되었으며 결국은 누군가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은 오늘도 한 발짝씩 더 가까워진다는 기대를 놓지 않게 만드는 두 권의 멋진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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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세 번째 사람』, 『거짓말하는 어른』을 썼고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인어를 믿나요』, 『홀라홀라 추추추』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