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지금, 우리가 영국사를 알아야할 이유”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안병억 저자 인터뷰
유학 당시 위로가 되었던 것은 셜록 홈즈 드라마와 영국의 역사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그때부터 세계사의 맥락에서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영국사를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20.07.06)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는 카이사르의 브리튼 침공부터 브렉시트와 코로나19가 등장하는 오늘날까지 영국의 역사를 다룬다. 영국인에게 세계사는 곧 영국의 역사다. 영국인의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했다. 카이사르의 브리튼 섬 원정 이후 역사시대에 들어선 뒤부터, 영국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이고,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유럽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였다. 그 역사는 때론 세계를 긍정적인 면으로 물들였고, 때로는 세계를 어두움 속에 밀어 넣기도 했다.
하지만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는 이런 다양한 면을 보여주려 한다. 역사의 밝은 면과 함께 그 밝은 면이 만들어낸 어두운 부분 또한 동시에 조명하려 했다. 페이지를 채운 사진과 도표, 상세한 지도와 그림들이 이야기로의 몰입을 돕고,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게 한다. 10여 년간의 기자생활을 거쳐 영국 유학을 마치고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안병억 저자의 내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영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알고 싶습니다.
대구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과 교수이자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9년의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영국으로 늦깎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 당시 위로가 되었던 것은 셜록 홈즈 드라마와 영국의 역사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그때부터 세계사의 맥락에서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영국사를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유럽 통합을 공부하면서 현대 정치사를 연구했고,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3가지를 꼽으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사건들이 세계에 끼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 윌리엄 공작의 잉글랜드 점령입니다. 정복자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대륙보다 더 강력한 봉건제를 이식했습니다. 중앙집권제를 실시했는데, 이는 영국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는 1819년의 ‘피털루대학살’입니다. 19세기는 ‘영국의 세기’였습니다.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유무역과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기를 연 사건이 피털루대학살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생활이 곤궁해진 노동자들이 1819년 8월, 대도시 맨체스터에서 평화 시위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군을 동원한 당국으로부터 강제 진압을 당했고, 이때 7백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숨졌습니다. 이는 19세기 노동운동의 시발점입니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더 나은 삶을 향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지요.
세 번째는 1945년 총선에서 승리한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노동당)의 복지국가 정책입니다. 애틀리 총리는 무료 의료보험과 기본적인 소득 보장을 포함한 고용보험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이는 현대 복지국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한다면 2016년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브렉시트’입니다. 산업혁명, 의회민주주의 등 ‘최초 증후군’을 겪은 영국이 또다시 포퓰리스트 정치혁명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미국이나 남미 등 각 지역에 전파되었습니다.
민족, 종교, 출신지 등이 다양한 영국인이 느끼는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그런 다양성이 오늘날 영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요?
잉글랜드가 역사의 중심이 되었지만, 영국은 웨일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아우르는 연합왕국입니다. 유럽대륙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프랑스와의 지속된 전쟁,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로 제국을 형성하면서, 수백 년 동안 한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굳건해졌습니다.
아일랜드와 웨일스 같은 구성 지역은 언어와 풍습이 달라 영국이 여러 나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영국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이런 지역 간의 정체성 차이를 크게 드러냈습니다. ‘브렉시트’ 당시 잉글랜드는 이를 지지하고, 스코틀랜드는 반대하면서 이를 둘러싼 정체성의 정치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인들은 유럽과는 다른 정체성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유럽인들이 보는 영국인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영국과 정체성 이해 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나라는 독일입니다. 독일은 영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수백 년간 지속된 제도를 부러워합니다. 이는 20세기 역사를 끊임없이 반성해야만 하는 독일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영국의 역사가 유럽통합과 협력에 장애가 될 때는 비판하기도 합니다. 독일은 영국의 예외주의를 이해하는 한편 대륙의 협력에는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읽을 때,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은 당시의 맥락을 고려해 다양한 시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제국주의라고 하면 우리 대다수는 머릿속에 부정적인 인상만을 떠올립니다. 반면 영국인들은 이 단어에서 부정적인 면과 함께 ‘백인의 책무’, ‘문명화 임무’라는 내용도 함께 떠올립니다. 물론 저는 제국주의를 비판합니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와 영국과의 관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역사에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리나라와 영국은 1883년 우호통상항해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1885년 3월, 영국 해군은 23개월간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대게임(Great Game)을 인도 및 세계 각지에서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작은 섬은 강대국 간의 세력 싸움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 군을 파견한 유엔군 16개국 가운데 영국군은 두 번째로 많은 군(5만 6,700여 명)을 보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2014년부터 두 나라 외교부 장관은 전략대화를 개최해 정치와 문화, 통상 등 긴밀하게 협력을 논의해 왔습니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협력 국가입니다.
영국은 국가 위기 때 윈스턴 처칠 같은 리더가 솔선수범해 국론을 통합했고,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러한 국난극복의 리더십은 우리가 영국 역사를 통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이후 집필하시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유럽 역사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대중 역사서를 구상 중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조망해보는 책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셜록 홈즈” 관련 서적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4년 전부터 운영 중인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에서도 여러 주제를 다뤄 왔습니다.
* 안병억 1965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독일어, 경제학)를 받고, 공군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10년간 연합뉴스와 YTN에서 기자로 근무한 뒤, 만 36세에 가족과 함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늦깎이 유학을 갔다. 유럽통합(국제정치)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브렉시트와 의회주권」, 「유로존 경제위기와 민주주의」, 「유럽통합에서의 독일문제」, 「유로존 재정 위기와 은행동맹」 등 유럽의 흐름을 분석하는 다수의 논문을 썼고, 『유럽연합의 이해와 전망』, 『유럽연합의 통화 정책』, 『한눈에 보는 유럽연합』, 『지구촌 경제와 G20 ? G20 참여자의 현장 보고서』, 『미국과 유럽연합의 관계』(공저), 『유럽 언론에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공저) 등 10여 권의 관련 서적을 집필했다. 유럽통합과 지역주의 비교연구, 평화 연구가 주 관심사다. 유럽과 글로벌이슈를 분석하는 주간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을 제작, 운영하고 있다. 처에게 고구마를 구워주는 게 큰 행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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