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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 칼럼] 감싸거나 씻어 내거나(Feat. 오소영 - 다정한 위로)
오소영 <다정한 위로> 윤이형 『붕대 감기』
긴장감으로 가득한 피아노가 이끌고 가는 전반부가 지쳐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면, 후렴부의 멜로디는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2020. 06. 10)
‘우울함은 수용성’ 이라는 말이 SNS에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샤워를 하고 씻으면 우울한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분노는 지용성’ 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공감한 이 문구에 나 역시 깊이 동의한다. 샤워를 한 뒤에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을 때 느끼는 보송함을 좋아한다. 씻는 동안에는 온전히 혼자인 것도 마음이 놓인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감쌀 때, 다시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 잠시 유예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력함을 많이 느끼던 시간에는 그 준비의 시간이 좀 길어지기도 한다. 아마 더 많은 우울에는 좀 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로 샤워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잠들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럴 때 포크 싱어송 라이터 오소영의 노래 <다정한 위로>를 떠올린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을 다정한 위로로 받아들이는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다. 긴장감으로 가득한 피아노가 이끌고 가는 전반부가 지쳐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면, 후렴부의 멜로디는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우울함이 수용성이라면 하늘이 뚫린 것처럼 내리는 빗물이야말로 이를 씻어내기에 적당한 것이 아닐까. 그 물의 양이라든가 쏟아지는 타이밍이라든가 하는 점에서.
하지만 우울함과 피곤함을 만드는 원인들, 현실에서 만나는 문제들은 물로 씻어 버릴 수 없는 선명한 상처에 가깝다.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를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쉽게 씻어 낼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을 둘러싼 성차별적인 억압이 그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페미니즘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등장인물 각각이 놓인 다른 위치와 상황에 따라 서로 등지게 되는 상황이 그러하다.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으로서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모습이나 연령과 지위의 차이로 인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힘든 일이지만, 왜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가를 생각할 때 더욱 뼈아프다. 현재의 직업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자신이 지지하는 생각과 모순될 때 느껴지는 내적 갈등은 참으로 극복하기 힘든 일이다. 부당함을 바꾸려고 하는 이에게 왜 세상 모든 것들이, 심지어 자신과 동료들마저 벽으로 다가오는가 생각하면 어지러움과 피로,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붕대 감기』가 보여주는, 지금 2020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민들은 그 중심에 있지 않은 나에게도 숨이 막히게 다가온다. 소설을 발표한 이후에 있었던 작가의 절필 선언은 글에 담긴 메시지와 문제의식을 더욱 아프게 보여준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이 고민들과 관련해서 어떤 움직임과 담론들이 생길지는 가늠할 수 없는 상태지만, 이런 ‘갈등’들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길 바랄 뿐이다.
학창시절, 교련 시간에 세연은 당황해서 실수로 붕대를 한 번 더 감는 바람에 짧은 붕대를 잘 마무리 하지 못하고 진경의 머리를 꽉 졸라 매 비명을 지르게 한다.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경이 그 순간을, 그때의 세연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한 위로’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오 이런 이상한 일이 내 머리를 두드리면
난 한껏 목소릴 높여 나약해진 날 변호해
젖은 회로 속 모질게 엉켜 버린 나
이 세상 누구도 날 고치지 못할 테니
오 이런 이상한 일이 내 머리를 두드리면
오 제일 우매한 이 만이 현명한 날 구원해
내 지친 어깨 위로 내리는
한줄기 내 눈물 이미 길을 잃은 미로
한줄기 그 빗물 그나마 다정한 위로
- 오소영 <다정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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