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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자, 당신은 왜 산토리니에 가지 않는가?

곽민지의 혼자 쓰는 삶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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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자를 보면서 왜 산토리니는 안 갔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면, 그보다 그의 바르셀로나가 어땠는지 물어주면 어떨까? (2020.06.09)

일러스트_응켱

“민지 씨는 왜 비혼자가 된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온전히 내가 정한다. 가끔은 가수면 상태로 급한 메일이나 메시지에 누운 채로 답장을 하고 20분 간격으로 모닝쪽잠을 자기도 한다. 샤워를 하면서 고민을 한다. 밥을 먹고 나갈까, 나가서 먹을까. 샤워를 마치면 급한 대로 샤워가운을 입고 머그잔에 얼음을 채우고, 베트남에서 사 온 커피핀을 거치한다. 딱 1인분의 커피가 한 방울씩 얼음 위로 떨어지도록 두고 냉장고에서 과일 하나를 꺼내 접시에 대충 투박하게 썰어서 들고 방으로 간다. 머리를 말리면서 선 채로 과일을 하나씩 집어 먹는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추가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추출한 커피를 보틀에 담아가지고 나간다. 일하다가 오늘 저녁을 언제 먹을지는 오후 4시쯤에 정한다. 운동을 하고 먹을지 안 하고 먹을지. 집에 돌아오면 말을 하는 대신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틀어두고 쉬다가 늦은 저녁쯤부터 남은 일들을 한다. 잠은 거의 4시경에 잔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 중 몇 가지의 일상을 지킬 수 있을까? 나의 일상은 파트너와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로 이뤄져 있다. 일, 취향, 가치관, 입맛,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그때그때 나의 컨디션에 따라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사랑한다. 결혼을 한다는 건 두 사람의 세계를 함께 새로 구축해나가는 일이지, 일상에 사랑 하나가 단순히 추가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나의 기준에서, 결혼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활동이다. 왜 비혼이 됐냐는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가 먼저 갸우뚱 반응해버리는 이유는 정말로 떠올릴 터닝 포인트가 없기 때문이다. “비혼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할 만큼 그저 살던 방식, 삶의 연속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자신이 정한 루틴대로 살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과 살기로 약속하는 것은 내 기준에서 해외 이민만큼이나 큰 일상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데, 세상의 디폴트가 비혼이 아닌 기혼이라는 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살던 대로 내 서울 집에서 사는 것이 비혼이라면 결혼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그리스 산토리니에 가는 것이다. 가본 친구들이 있고, 가보면 그렇게 낭만적이며 좋다고 하고, 물론 한국과 그리스는 다르니까 나름의 고충도 있겠지만 잘 맞는 사람은 또 좋아라하는 것.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 내게 "너 산토리니 왜 안 가? 언제 안 가기로 결정했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고 싶은 사람들이 가면 되지, 왜 남은 사람들에게 안 가는 이유를 묻는 거죠, 하필 그런 눈으로요?

나에게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결혼해서 아이들 키우는 사람,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이 사는 사람, 결혼했지만 사회가 용인해주지 않아 혼인신고는 못 한 사람, 결혼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 아직은 하지 못한 사람, 결혼을 안 하기로 애초에 결정한 사람, 오랜 연인과 지내면서 막연히 이대로 가면 결혼하겠지 생각하지만 그 시점을 굳이 의논하지는 않는 사람. 같은 기혼자라도 내 주변의 비혼자보다 나와 사는 결이 비슷한 사람도 있고, 비혼으로 살지만 가족 내에서 기혼자보다 큰 책임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하면서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 각자 산토리니, 샌프란시스코, 바르셀로나, 방콕, 제주를 드나들며 저마다의 행복을 찾고, 나는 산토리니에 간 친구에게 왜 산토리니는 간 거냐고 추궁하면서 거기 가지 않은 내 존재를 정당화하려 들지 않는다.

비혼자를 보면서 왜 산토리니는 안 갔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면, 그보다 그의 바르셀로나가 어땠는지 물어주면 어떨까? 눈에 별을 박고서 들뜬 기분으로 몇 시간이고 즐겁게 할 용기와 용의가 있다. 팟캐스트 <비혼세>도 그렇게 탄생했다. 놀랍게도 산토리니에 가 있는 기혼의 청취자들이 이메일로 자신의 여정을 말해주며, 덧붙여 나의 바르셀로나 이야기를 얼마나 즐겨듣고 있는지 알려준다.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여행은 직접 가지 않더라도 이야기로 충분하다. 오늘 또 다른 기혼 청취자에게서 정성스럽게 보낸 장문의 산토리니 이야기가 도착했다. 시간을 두고 읽다가 새벽에나 까무룩 홀로 잠들어야지, 생각하며 쓴다.



* 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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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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