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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코의 분명한 반항

바스코(vasco) - <Det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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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빌스택스의 행보에 따라 가치가 요동칠 수밖에 없는 앨범인 것도 사실이다. 금세 흩어질 뿌연 대마 연기보다 그 아래 창작자의 성실함에 성패가 달려있다.(2020. 05.27)


바스코(Vasco)는 정규 앨범 제목을 <덤벼라 세상아!>라 지을 정도로 거친 래퍼였다. <쇼미더머니> 출연 후 초심을 찾기 위해 이름을 빌스택스(BILL STAX)로 바꾼 그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덤비고 있다. 2018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후 자숙하는 대신 오히려 「Idungivaㅗ」라는 도발과 함께 한국에서의 대마초 합법화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 억지가 아니라 의료용 대마의 필요성, 마약 사범에 대한 진지한 교육과 사회 전반의 인식 재고를 주장하며 국민 청원까지 작성할 정도로 진지한 태도다.

한 술 더 떠 새 앨범 <DETOX>의 콘셉트와 주제조차 대마초로 삼았다. 숱한 래퍼들이 고개를 숙이고 반성의 의사를 비치는 와중에도 아랑곳 않고 거리낌 없이 ‘국내 최초 대마초 앨범’을 선언했다. 선연한 고집, 분명한 반항이다.

분명 거친 반항인데 작품의 태도는 아주 여유롭다. 대마초 합법화의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희석한 덕이다. 대마 흡연자의 위험한 삶이 아니라 ‘대마 흡연’만이 예외일 뿐 「Wake n’ Bake」처럼 여타 래퍼들과 동일한 일상을 공유하는 삶이다. 하이(High)한 A사이드 사티바(Sativa)와 릴랙스(Relax)한 B사이드 인디카(Indica)로 작품을 나눠 감정의 흐름을 노래하는 등 의도가 분명하나, 그 속에서 대마초를 소재 제공의 정도로 억제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이 유효하다.

천연덕스레 ‘떨 라이프’를 주장하는 빌스택스의 모습에 거부감은 줄어든다. DJ DOC 「슈퍼맨의 비애」 속 ‘어젯밤 우리 엄마 아빠 부부싸움에 잠을 잘 수가 없네…’를 빌려 대마 흡연을 와사비의 맛에 비유하는 「WASABI」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흥얼거리며 무기력한 감정을 토로하는 「Lonely stoner」를 대비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Wickr me」처럼 과감하다가도 허경영의 허황된 주장을 소재로 직접 찍은 그라임(Grime) 스타일 비트 위 랩을 뱉다 ‘한국거가 아닌거’라며 별종임을 선언하는 모습은 미워하기 어렵다. 아미네(Aminé)의 「Caroline」을 닮은 「TNF」의 흥도 자연스럽고 앨범을 마무리하는 「[Thur’sday]」의 멜로디라인은 선명하다.

분명 ‘한국거가 아닌거’지만 수많은 ‘외국거’들의 흔적은 들린다. 현재 최고 주가의 트랩 비트 위 과거의 자신을 지워버린 새로운 플로우로 무장한 빌스택스에겐 40대 기성 래퍼보단 트렌디한 20대 초반 이모 랩(Emo Rap) 뮤지션들이 더 가깝다. 이는 「답답해」, 「Price tag」 등으로 축 늘어지는 B사이드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탄탄한 랩과 프로듀싱에 비해 기시감이 짙어져 의외로 작품 단위의 독창성을 깎는다. 한국의 대마초 앨범이라는 간판을 떼고 나면 숱한 해외 트랩과 대마초 서사에 비해 새로운 지점이 많지 않다. 국내 힙합 신에서 흔치 않은 스타일을 개척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으나, 「WASABI」나 「Lonely stoner」처럼 ‘외국거’ 보다 ‘한국거’를 외친 트랙의 감흥 정도는 아니다.

과감한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음악으로 선언했다는 데 음반의 의의가 있다. 부정적인 이미지에 고개 숙이는 대신, 허허실실 하면서도 치열한 반론을 제시하며 허술하지 않은 결과물로 커리어의 새 전기를 열고 사회 담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향후 빌스택스의 행보에 따라 가치가 요동칠 수밖에 없는 앨범인 것도 사실이다. 금세 흩어질 뿌연 대마 연기보다 그 아래 창작자의 성실함에 성패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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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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