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내과 의사가 죽음을 배웅하는 방법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양성우 저자 인터뷰
의사도 남들과 다를 것 없이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가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작은 소망은 환자와 의사가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것입니다.(2020. 06. 09)
안녕하세요 작가님, 글 쓰는 의사라는 소개글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등단과 문학상 수상의 이력도 흥미롭고요. 어떻게 처음 글을 쓰시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서점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한 번 가면 몇 시간씩 있고는 했죠. 그런데 한 번은 서점에 쫙 깔린 책들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 이렇게 작가가 많은데, 왜 내 책은 없을까?” 하지만 당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블로그나 소설 습작 정도에 그쳤죠. 글쓰기가 아무리 좋아도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작가가 된다는 미래가 너무 요원해 보였습니다. 남한테 내 글을 보여주는 게 너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맘 편히 독서만 했어요.
의사가 되니 글 쓸 시간은 더 없었습니다. 가끔 한 번씩 이런 저런 생각을 인터넷에 올리는 정도였죠. 그러다 한 번은 에세이를 썼는데, 그중 하나를 아내가 너무 재미있어 하는 거예요. 책에도 수록된 글로, 파리 여행 중 제가 응급실에 갔던 이야기를 풀어낸 <로맨틱 파리의 응급실 그리고 시트러스>라는 글입니다. 의사가 되고 난 이후, 환자의 입장에 처음으로 서게 된 때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제 속마음을 마주하며 글로 적는 순간들이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진심을 써내려간 글이라 그런지 아내도 응원을 해주어 더욱 힘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실제 제가 만나왔던 환자 분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환자가 되었던 경험 때문인지, 자꾸 의사-환자-보호자의 시선을 번갈아가며 담아내고 싶더라고요.
그때부턴 정말 빨리 사건들이 벌어졌습니다. 등단을 했고 문학상도 타고, 이렇게 책도 내게 되었네요.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아직도 누가 ‘작가’라고 부르면 어색합니다. 하지만 기쁘죠. 행복합니다. 제 글을 사람들이 널리 읽어준다는 사실이요.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에 의사의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동료 의사 등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의사라는 본업이 너무 바빠서일까요? 글 쓰는 의사는 드물죠. 그래서인지 많은 분이 신기하게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다들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해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제 책에 드러난 의사의 심리가 대다수 의사들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슴 아픈 경험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책임져야만 하는 프로페셔널의 마음이요. 그러나 동시에 의사도 평범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이 낫길 바란다는 것을요.
의사도 남들과 다를 것 없이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가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작은 소망은 환자와 의사가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서로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면, 치료 결과도 훨씬 빠르게 좋아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를 통해 그런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제 동료 의사들도 이런 생각에 공감할 거예요.
소아 환자 곁에 쪼그려 앉아 우셨다는 이야기가 담긴 <아빠의 마음 비슷한 것>이라는 에피소드가 인상 깊습니다. 다른 글들을 보니 성인인 환자들과의 관계에서는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시던데, 유독 아이들에게만 그러지 못하시는 건 왜일까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을 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성격이어서 한때는 소아과를 전공 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의대 실습을 하다 보니 소아과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천사 같은 아이들이 심각하게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아이들은 참 신비한 존재입니다. 슬펐다가도 즐거운 일이 생기면 금세 방긋 웃습니다. 누군가를 크게 미워하지도 않아요. 상처를 입어도, 아픔을 느껴도 결국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늘 아이들에게는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서로 눈을 마주치고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갓난아기인 환자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선에 섰는데 큰 상처를 하나 입고 시작하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아기 부모님만큼은 아니지만, 저 역시 아이를 둔 부모로서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같잖아요. 내 아이가 그저 건강하고 또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요. <아빠의 마음 비슷한 것>에는 그런 부모로서의 마음이 담겼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작가님 개인적으로,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것인가요?
<가난한 사람의 입원>이란 에피소드입니다. 아직도 그때가 기억나는데, 한 번은 퇴근 직전에 환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고민되는 상황이어서 퇴근이 몇 시간이나 늦어졌어요. 모든 의사들은 환자를 최선의 상태로 돌려놓길 원합니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많은 검사와 치료를 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검사와 치료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환자의 몫이니까요. 그래서 필수적인 검사나 치료 외에 나머지는 위험의 영역으로 두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치료비를 전혀 부담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들은 아무리 필수적인 치료라고 해도 자신들의 상황에선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해 어려운 상황에 놓인 환자 분들의 치료비를 쉽게 지원해주었잖아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실상 실현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의사인 저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혹여나 내가 권하는 것이 환자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져요. 많이 고민하고 환자를 대하지만 의사로서 늘 안타깝고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글에서 “가난한 사람은 나를 이렇게 심란(心亂)하게 한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어느 독자 분의 리뷰를 읽고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에서 제 마음이 어수선해진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는데, 오해를 일으키는 문장이 돼버렸습니다. 출간 직후의 일이라 새삼 글쓰기의 무게도 실감했고요.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의사로서 가장 후회되었던 순간, 혹은 시간을 돌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레지던트 초반에 제 환자분이었는데요. 저와 라포르(의사 환자 신뢰관계)가 좋으신 분이었고 몹시 퇴원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더 두고 봐야 할 상황이었는데 친한 환자라서 원하는 퇴원을 막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환자는 다시 응급실로 실려 들어왔습니다. 돌아가시지 않은 게 다행이었죠. 그날은 정말이지 너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위험도를 저평가하고, 단순히 환자가 원한다고 그냥 퇴원을 진행한 자기혐오 때문이지요. 그날 이후로 프로페셔널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문 중 <그때 그 전염병>이라는 글에서는 메르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실제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긴박감과 전염병과 분투하는 의료진의 삶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요즘 코로나로 다들 힘드시지요. 다들 메르스 때와 체감이 조금 다르실 텐데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일단 코로나는 전염력이 너무 강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렸고, 이 때문에 사회를 향한 불신의 골도 깊어진 느낌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형국이 된 거죠. 코로나로 인해 의사로서 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환자가 물어봐도 제대로 답할 수 없을 만큼, 이 신종 전염병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병에 대해 더 알고 싶지만 이 병을 의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없으니 답답한 상황입니다. 우리에게는 코로나라는 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막연한 공포감이 싹틉니다. 의사고 환자고 할 것 없이,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은 그런 혼란에 놓여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뉴 노멀’식 비관론까지 들려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시대가 펼쳐질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당연해진 지금이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중함을 잊고 가벼이 여겨온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등 여러 건강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끝으로 책을 통해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병원은 고통의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인생의 여러 문제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생각해보면, 시들시들한 우리 일상에서 오잖아요.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명제는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하면 지금의 삶이 더 활력을 얻더라고요. 저는 병원에서 배운 이 소중한 경험을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썼습니다. 병원에서 우리는 의사, 환자, 보호자로 만나지만, 이 글 앞에서만큼은 그냥 모두 같은 ‘보통의 사람’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꽃처럼 피어난 생의 순간순간을 독자 여러분들도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 양성우 “오늘 말을 나눴던 이가 다음 날 죽어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과 의사의 숙명 앞에서, 그럼에도 보통의 일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삶을 응시하는 글을 쓴다. 때로는 본인이 제일 슬프면서도 의사를 위로하는 보호자의 모습 속에서, 때로는 죽음을 앞둔 자신보다 살아갈 누군가를 걱정하는 환자의 모습 속에서 ‘삶이란 무엇인지’ 배워가는 중이다. 월간 시사문단 「수필」로 등단하였으며(2019), 제18회 한미수필 문학상을 수상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을지대학교병원, 분당제생병원을 거쳐 현재 대전 코스모내과 원장을 지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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