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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9화 : 오롯이 겨울 징역을 산 셈이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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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교도소에서는 사계절이 없다고들 말한다. 감옥은 여름과 겨울 두 가지의 징역뿐이라는 것이다. 여름은 오월에 시작해서 구월이 되어야 끝나며 겨울은 시월에 시작하여 사월에 끝난다고 했다. (2019.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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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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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오가 굴뚝에 올라온 지 칠개월 가까이 되었고 이백일 되는 날이 사흘 뒤라고 김이 말해주었다. 이미 첫눈도 며칠 전에 내렸으니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었다. 월동준비는 털모자에 동절기 등산복과 롱패딩으로 감싸고 털양말에 방한화까지 신었다. 굴뚝 테라스의 시멘트 위에 비닐을 깔고 텐트 안의 바닥에는 다시 스티로폼에 은박지 깔개를 얹고 합섬담요를 깔고 방수 패딩침낭 위에 또 담요를 덮었다. 월동 물품들은 노조에서 각 시민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올려준 것들이었다. 옷가지와 음식물을 담을 용기들은 모두 등산용품들이었다. 아직까지 낮에는 그런대로 견딜만했으나 해가 지고 밤이 되면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고 새벽이 오면 한겨울의 혹한기처럼 변했다. 고공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마치 절벽에 매달려 있는 상태와도 같았다.

 

진오는 그래도 두 차례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군에 갔을 적에 전방고지의 초소에서 두 해의 겨울을 보냈다. 그때 지급 받은 월동 장비는 지금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아웃도어 복장과 비슷한 정도였고 자연 환경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때가 현재의 상황보다는 좀 더 나았다고 할 수 있었다. 초소근무는 심야나 새벽 시간이나 한 시간에서 길게는 두 시간이 못되었고 다음 순번의 초병이 교대하러 오기 마련이었다. 그것도 주야간 근무가 순환근무제여서 일주일에 몇 차례였다. 여기처럼 사방이 노출된 고공이 아니라 산등성이에 참호로 연결된 벽과 지붕이 있는 초소였다. 전방에 시찰구가 뚫려있고 바람이 들어온다고는 해도 방한 마스크와 고글을 쓰면 아늑해서 잠이 올 정도였다. 대개는 장전한 총의 총구를 시찰구 앞으로 내밀어 놓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졸다 깨다 하면서 교대시간을 기다렸다. 다만 내무반의 선임이 일상을 간섭하고 괴롭히지 않았다면 겨울도 그리 끔찍한 계절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가 노조지부장 시절에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육 개월 동안 감방에 갔던 일이다. 대개 교도소에서는 사계절이 없다고들 말한다. 감옥은 여름과 겨울 두 가지의 징역뿐이라는 것이다. 여름은 오월에 시작해서 구월이 되어야 끝나며 겨울은 시월에 시작하여 사월에 끝난다고 했다. 그는 재수없게 시월에 들어갔으니 오롯이 겨울 징역을 산 셈이었다. 시월이 겨울의 시작이라는 것은 그맘때에 침구와 옷가지와 시설점검이 월동준비 태세로 바뀌기 때문이다.


수감자들은 고참일수록 자질구레한 사항들을 미리미리 준비하기 시작한다. 피복부에 부탁하여 합섬 솜이 들어간 조끼를 만들어 수인복 상의 안쪽에 안감 대신 박아 넣는다. 털양말을 구입하여 신기도 하고 적당히 잘라서 머리에 쓰는 취침용 보온 모자를 만들기도 한다. 지급 받은 이불은 오랫동안 물려 내려오는 터여서 세탁을 수차례씩 하는 동안에 안의 솜이 뭉쳐져서 잔뜩 오그라들어 있었다. 독거수는 노역수들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큰 방에 들어가 이불 홑청을 뜯고 안에 눈사람처럼 뭉쳐진 솜들을 정성스럽게 뜯어서 천위에 골고루 펴고 홑청을 빈틈없이 다시 꿰맨다. 시월 말부터 시멘트 감방은 추워지기 시작하여 한겨울이 되면 시멘트 위에 그대로 깔아버린 널판자 마룻장에서는 끊임없이 습기가 올라온다. 스폰지 매트리스 아래 종이박스를 깔지 않으면 매트리스가 축축해져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종이박스를 깔았다가 아침에 일어나 들춰보면 체온과 마룻장의 온도 차이로 습기가 차서 비 맞은 것처럼 종이박스가 젖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면 시멘트벽에 성에가 하얗게 끼고 천정에서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밤새 내쉰 자신의 호흡이 천정에 올라가 성애가 되었다가 녹아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천정을 올려다보면 시선 정면에 동그랗게 낀 성에가 자신의 숨 쉰 흔적이 되어 얼어붙어 있다.


교도소에서 물려 내려오는 군수용품 가운데 실탄통은 매우 귀중한 보온용품으로 끝발이 있는 죄수들에게만 사용이 허락된다. 실탄통은 철물이고 고무패킹이 붙어 있어서 보온물통에 맞춤했다. 그걸 구할 수 없다면 재질이 두꺼운 페트병을 두세 개쯤 구해 놓아야 했다. 추운 날에는 교도관의 허락을 받아 복도의 난로에 끓인 뜨거운 물을 받아 병에 담는다. 병이 제대로 보온기능을 할 수 있도록 보완을 해줘야 하는데 그것은 병주머니였다. 헌 담요 조각을 두 겹으로 바느질하여 그 속에 물병을 넣고 이불 속 발아래 묻어 놓으면 아침 기상 시간까지 따뜻한 온기가 이불 속에 남아 있었다.


지금 여기서 더운 물을 올려 달라고 동료들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제는 핫팩이라는 물건이 발명된 지 오래여서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기 전에 핫팩을 양쪽 발에 감고 목덜미에서 어깨까지 두 장을 붙여 두면 그런대로 따뜻하고 견딜만했다. 물병을 머리맡에 놓아두면 새벽녘에 얼어붙어서 그는 자기 겨드랑이에 두기로 했다. 저녁에 해가 재빨리 지고 밤이 길어지자 저녁밥 때가 당겨져 다섯 시에 밥이 올라왔고 감옥에서처럼 아홉 시만 되면 배가 고팠다. 어쨌든 밤 아홉 시 무렵에는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해야 한다.


이진오는 매섭게 추운 긴긴 밤이 지나가는 동안 되도록 텐트 안에서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의 제일 원칙은 미리 소변을 보아두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한참이나 침구를 여미고 자세를 바로잡고 비로소 잠들어 체온으로 침낭 속이 따뜻해진 뒤에 깨어 일어나 바깥 테라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는 롱패딩을 걸치고 지퍼를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털모자 위에 패딩 후드까지 덮어 쓰고는 텐트 밖으로 기어나갔다. 뒤뚱거리며 텐트에서 먼 곳까지 걸어 나가 난간 가녘에 서서 코트 자락을 위로 올리고 방한복 바지 지퍼를 내렸다. 가랑이 사이에 처박혀 움츠러들었던 물건이 반사적으로 오줌을 쏟아냈다. 그는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소변을 보았고 다행히 서북풍이 오줌줄기를 왼쪽으로 흩날려 보냈다. 으쓱 진저리를 치고 테라스 바닥을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돌아오는데 몸은 되도록 벽 쪽으로 붙이고 한 손은 뻗어 난간 쇠파이프를 잡으며 한 발짝씩 걸었다. 뭔가 발에 걸려 넘어졌다. 내려다보니 난간에 기대놓고 밧줄로 매어 두었던 페트병들 중의 하나가 삐져나와 있다. 진오가 이름을 적어서 세워 두었던 병들이다. 그는 허리를 굽혀 병을 집어 들고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진기’라고 쓴 매직 글씨가 보였다.


그는 패딩코트와 방한화를 벗고 두터운 털양말을 신고 털모자 쓴 채로 침낭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바람소리는 텐트자락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날카로운 휘파람소리처럼 들렸고 안으로 들어오면 바닷가의 묵직한 파도소리가 되었다. 때로는 속이 빈 굴뚝을 맴돌고 지나가는 바람이 우웅 하는 소리를 냈다. 진오는 머리맡에 놓아둔 진기 페트병을 생각했다. 진기는 금속노조의 집회에서 알게 되었던 노동자 친구였다. 세 살이나 아래였는데도 또라진 반말로 그를 대했다. 어이 이진오 우리 다 쇳가루 먹고 사는 버러지들 아닌가. 요즘 세월에 자칫하면 군화발로 뭉개지고 마는 목숨들이지.


그는 키가 작았다. 진오와 마주 서면 그의 정수리가 훤히 내려다보였고 가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거의 탁상시계만한 넓이로 탈모가 진행 중이었다. 동료들이 진오와 진기가 이름자가 비슷하다고 형과 아우라고 불렀고 모르는 이들에게는 농담으로 ‘형제는 용감했다’고 옛날 영화제목을 빌려 말했다. 자동차공장 해고 노동자였던 진기는 몇 년 전에 공장 굴뚝 위로 올라가 일 년 가까이 고공농성을 했지만 패배했다.

이후 스물두 명의 해고노동자가 자살했고 그는 아홉 번째의 자살자였다. 그에게는 아들 둘에 딸 하나 세 자식이 있었고 아내는 그가 해고당한 뒤 수년간 식당에서 일하며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렸다.


진기는 노래를 잘했다. 소싯적에 그의 고향에 전국노래자랑 쇼가 들어왔을 때 뽑혀서 지방 도청소재지의 월말대회에 나오라는 통지도 받았지만 그의 표현에 의하면 바로 전날 ‘만땅꼬로 취해서’ 참가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기 얘기만 나오면 이진오는 피식 웃고 눈물을 찔끔 흘리고는 건성 하품으로 얼버무렸다. 왜 하필이면 바로 그 전날 만땅으로 취했느냐고? 진오가 되물으면 그는 늘 똑같은 대답으로 사람을 웃겼다. 꽃사슴이 내가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고백을 했거든. 아니꼽게 그 자식은 언제나 자기 아내를 남들 다 듣는데서 꼬박꼬박 ‘우리집 꽃사슴’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진오는 머리맡에 진기 페트병을 세워둔 채 누워서 중얼거렸다.


 “나는 늘 니가 맘에 걸렸다.”


소리를 내어 말하자 바로 곁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야 그럼 쐬주나 한잔 사든지. 우리 처가포차에 가자!”


 “어라, 왜 여기까지 나타나구 지랄야.”


이진오가 돌아보니 진기는 머리에 한 팔을 받치고 비스듬히 옆에 누워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면도하기에 게을러서 늘 코밑과 턱에 돼지털 같은 수염이 괴죄죄하게 자라나 있는 얼굴도 그대로였다. 진기는 늘 그랬듯이 형 행세로 시작했다. 


 “인마 형이 왔으면 먼저 한잔 꺾자구 앞장설 것이지, 굳이 내가 먼저 말하게 만드냐?”


 “쯩을 깐 게 언젠데 쬐끄만 놈이 형 타령이야.”


 “니가 나이만 세 살 위지 굴뚝에 올라온 건 내가 새카만 선배다.”


 “그래 너 선배 먹어라 짜샤. 까짓 거 술 한 잔 사지 뭐.”


진오는 휘적휘적 앞장서서 굴뚝을 벗어나 양쪽으로 잡초가 무성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어갔다. 철야작업 중인 공장의 불빛들이 보였다. 남쪽 지방의 산업공단은 도시의 남동쪽 외곽에 있었고 진오와 진기가 일하던 공장은 서로 한 블럭쯤 떨어져 있었다. 공단 입구에 아파트 연립 원룸 그리고 편의점 식당 술집 등이 모여 있는 중심가 비슷한 거리가 있었다. 그곳이 그들의 동네인 셈이었다. 이 도시에 식구들과 함께 자리를 잡은 이들도 많았지만 먼저 일하면서 다른 도시에 식구가 자리를 잡은 축은 혼자 또는 두세 명이 합숙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진오는 식구들이 영등포에 오래 살아온 토박이여서 혼자 내려와 있었지만 진기는 식구들과 공단 초창기부터 내려와서 살았다. 처가포차는 돼지고기 뒷고기 집이었다. 그 술집도 진기가 먼저 데리고 가서 알게 되어 진오도 술 생각이 날 때마다 들르는 단골집이 되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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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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