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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30화 : 해고는 살인이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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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 먹힌 결과였다. (2019.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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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처음에 그 술집에 갔을 때 진오는 진기에게 물었다.


 “어이 조직부장, 지저분하게 뒷고기가 머냐?”


 “뒷고기라니까 돼지 똥구녕인줄 알았구나.”


자기도 첨엔 그렇게 알았다면서 진기는 웃었다. 옛날에 도축장에서는 돼지를 잡으면 상품으로 잘 나가는 삼겹살 갈비 목살 등심 안심 뒷다리 앞다리 등으로 분류하고 내장이나 머리도 순대와 수육감으로 제하면 부위마다 조금씩 나오는 잡고기들을 따로 처리했는데 그런 것들에 맛있는 부위가 있었다. 이를테면 갈매기니 제비추리 항정살 같은 고기조각들을 도부들이 일 끝내고 뒤에 모여서 먹었다고 하여 뒷고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진기는 설명했다. 


 “원래가 궂은 일 하던 사람들이 현장에서 젤 맛있는 걸 먹었다는 얘긴데. 그것두 옛말이 되어버렸지. 요새는 특수부위라고 이름이 바뀌면서 더 비싸졌단 말야.”


아무려나 둘은 뒷고기를 시켜 숯불에 올려놓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굵은 소금 몇 알갱이를 톡톡 찍어서 구운 고깃점을 씹으며 잔을 주고받는다.


 “너 짤린지 벌써 얼마나 됐냐?”


 “알잖아, 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들은 외환위기 때에 어떻게 살아냈는지 아무도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긴 침묵으로 서로를 짐작해내곤 했었다. 그것은 마치 큰 삽으로 평온하던 개미굴을 무지막지하게 들쑤셔버린 것과 같았다. 공장들은 분해되었고 구조조정이라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려져서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해고했다. 요행이 해고든 권고퇴직이든 피하고 살아남은 경우에도 다른 지방의 공장으로 발령 받아 임시직이니 계약직이니 하는 위태로운 처지로 불안한 잔명을 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다 지나갔거니 할 때쯤에 무한경쟁이니 세계화시대니 하는 그럴듯한 유식한 말씀과 함께 공장들은 보따리를 싸서 보다 임금이 싼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진기네 자동차 공장의 일부가 해외로 옮겨가면서 국내의 노동자들을 대량해고 했다. 그들은 공장을 사수하겠다며 버티었고 옥상에서 조직적으로 버티었지만 경찰 병력이 투입되어 무자비하게 진압 당했다. 노조의 조직부장은 이를테면 행동대장인 셈인데 그는 화상 몇 군데만 입었을 뿐 자신의 말처럼 사지가 말짱했다. 진기가 소주잔을 치우고는 유리잔에다 술을 따르더니 벌컥이며 마셨다. 


 “니미 웬 술을 그렇게 급히 먹어?”


 “왜, 술값 많이 나올까 봐 걱정 되냐? 하도 오랜만이라 술 맛이 달아서 그런다.”


이진오네 공장도 소문이 안 좋아서 조마조마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별 탈이 없던 시기였다. 월급 받는 자기가 오늘은 진기에게 술 한 잔 사리라 작정하고 있던 터였지만 그의 태도가 어쩐지 불안했다. 진기가 유리잔으로 몇 잔 연거푸 마시고는 그제야 눈이 풀리고 거나해져서 진오에게 말했다.


 “씨바 이제 좀 술이 올라오네. 야 높은 사람 지부장아, 나 노래 한자리 하까?”


 “노래방두 아닌데 여기서 해?”


 “그럼 말뚝 같은 너 데리구 노래방 가서 폼 잡아야 되겠냐? 우리 꽃사슴두 없는데.”


 “마누라 어디 갔어?”


 “인마 일하러 갔지. 야 내가 노래 한자리 한다니까.”


그가 의외로 차분하게 음성을 낮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입술이 풀려서 발음이 또렷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듣기에 괜찮았다. 자식이 언제나 노래는 잘 불렀지. 아마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두집회의 뒷자리에서 그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듣고 쇳가루 먹는 노동자치곤 분위기가 있다고 진오는 생각했던 거였다. 그가 처가포차에서 불렀던 노래가 무엇이었지? 제목은 모르지만 첫 구절은 생각이 난다. 눈을 감고 걸어도 뭐 그런 소리였을 것이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그는 노래를 마치고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얼굴을 들고 상반신을 탁자 위로 기우려 그에게로 내밀면서 말했다.


 “진오야, 나 올라갈라구 그런다.”


 “어딜 올라가?”


 “굴뚝 위로. 씨바 우리가 거기 밖에 갈 데가 어딨냐?” 


진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지만 진기는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었고, 스물두 평짜리 다가구주택에는 가장이 언젠가는 일터로 돌아갈 것을 기다리며 그의 가족이 함께 버티고 있었다. 


 “나 어제 초상집 다녀왔다. 우리 노조에 줄초상이 난 거 알잖아?”


 “또야?”


 “다섯 사람이 떠났다. 이번은 대의원하던 선밴데 정말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이었다구. 십오 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어.”


진오는 그 다음 주에 진기가 폐쇄된 공장의 굴뚝에 올라간 것을 현장에 찾아가서 똑똑히 보았다. 굴뚝 전면에는 길게 플래카드가 늘어져 있었고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씌어 있었다. 해고된 뒤로 그들은 삼 년을 거리에서 보냈고 굴뚝에도 올라가고 송전탑에도 올라가고 그리고 철탑 위에도 올라갔다. 진기가 죽은 뒤에도 농성은 계속 되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이진오네 공장이 폐업하고 매각하면서 문을 닫았고 그게 사실은 이름만 바꿔 자본을 이동시킨 것이라는 게 들통이 났다. 해고자들은 무기력하게 흩어졌고 버티는 사람들은 오십 명 삼십 명으로 줄어들었다가 십여 명이 남았고 이제 다섯이 가까스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진오는 어느새 술집을 나와 굴뚝에 돌아왔고 침낭 속에서 고치에 든 애벌레처럼 꼬무락거리고 있었다. 진기도 따라와서 혼자도 비좁은 텐트 안에 비스듬히 누웠다. 

 

 “니 장례식에 못 갔다. 그때 본사 건물 앞에서 며칠째 시위 중이었거든.”


이진오의 말에 진기는 킬킬 웃었다. 


 “세상이 변할까? 점점 더 나빠지구 있잖아.”


 “살았으니까 꿈틀거리는 거지. 그러다 보면 아주 쬐끔씩 달라지긴 하겠지.”


하고는 이진오는 텐트 자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두 오늘 살아 있으니 할 건 해야지.”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 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해고는 살인이다.

 

진오는 진기의 장례식이 있은 지 열흘쯤 뒤에 그의 집을 방문했다. 전에 함께 노조활동을 했던 같은 공장의 동료들과 의논하여 약간의 조의금을 뒤늦게 모았다. 평소 친구처럼 지냈던 이진오가 대표하여 죽은 진기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지금 진오는 굴뚝에서 내려와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 진기는 연기처럼 흐늘흐늘 흔들리며 진오의 주위를 맴돌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온다. 


 “내가 너희 집 기억이 날까 걱정했는데, 저 연립 아니냐?”


 “한번 찾아 봐라.”


원래는 흰색 칠을 했을 사층 건물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거나 얼룩지고 곰팡이가 검게 앉은 부분도 보여서 꽤 낡은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맨 앞 건물이고 그중 왼쪽에서 두 번째 입구였지. 몇 층이었더라……”


 “나는 땅 냄새 풀냄새를 좋아해.”


그렇지 일층이었어. 그 집 아이들이 거실 문을 열어놓고 바로 앞의 나무 아래로 뛰어나가곤 했다. 그는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한번 두 번 한참 기다렸다가 다시 누를까 하는데 문이 빼꼼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진오라구 합니다.”


 “어머나 이지부장님.”


꽃사슴은 자다가 깼는지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 건지 원래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딘가 멍하고 무표정했다. 들어오라는 말도 없이 문을 연 채로 비켜서길래 진오도 내키지 않은 것처럼 슬그머니 문 안쪽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거실의 낮은 상 앞에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다가 제각기 인사를 하고는 우르르 방안으로 몰려 들어가 버렸다. 엄마가 텔레비전을 끄고 방석을 끌어다 주며 말했다.


 “좀 앉으세요.”


이진오는 엉거주춤 주저앉았다. 


 “저희두 그날 행사가 있어서 오지 못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참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꽃사슴은 이제 그 별명을 불러줄 사람이 없으니 지친 엄마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는 자꾸만 진오의 얼굴을 넘어 뒤쪽 벽을 올려다보았다. 집 앞에까지 동행했던 진기는 이곳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진오는 저도 모르게 힐끔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 둥근 전자 벽시계가 걸려 있는 걸 보았다. 그녀는 시계를 보고 있었구나. 


 “어디 일 다니십니까?”


진오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네 오늘 철야라서. 애들 저녁 먹이려고 들어왔어요.”


 “어 그럼 제가 일어서야겠네요.”


 “아뇨, 괜찮아요. 봉제 일인데 우리 동네에 있는 조그만 공장이에요. 옛날에 하던 일이라서.”


그녀는 이제 배시시 웃기까지 했다. 열흘 정도라면 표정이나마 무덤덤해지는 것일까. 아마 그녀는 피곤할 것이고 지쳐있을 거였다. 지친 사슴이 갑자기 말투가 바뀌며 어조가 빨라졌다. 


 “글쎄 그 난쟁이 아저씨가 우릴 감쪽같이 속였잖아요. 애들 학교 다 보내놓고 나 일 나간 사이에 혼자서 일을 저지른 거 있죠? 나는 공장에 있었구요, 딸아이가 학교 파하고 집에 왔다가 젤 먼저 보고 나한테 달려 왔더라구요. 머리맡에 파라치온 살충제 병이 있구 자기 입에는 거품이 잔뜩 묻어선 방바닥에는 온통 토해놓은 자국이 여러 군데였어요. 힘들었는지 방안을 굴러 다녔나 봐요.”


그렇게 힘든 이야기를 단숨에 뱉어 놓고는 그제야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쉰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찍어내어 치마에 닦았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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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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