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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하지 않을 용기 

<월간 채널예스>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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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해명하거나 응답하는 대신 내 글을 고친다. 그리고 새로 쓴다. (2019. 05. 03)

일러스트 손은경.JPG

                           일러스트_손은경

 


이미 발송한 글에 대해 해명하고 싶을 때마다 나의 스승 ‘어딘’을 생각한다.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나는 ‘어딘 글방’이라는 곳에서 글을 썼다. 다른 글쓰기 모임처럼 그곳에서도 합평이란 걸 했다. 어딘과 제자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과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A4 용지에 모아 찍기로 인쇄된 문장들을 조목조목 짚어 가며 풍부한 피드백을 테이블 위에 쌓아 갔다. 잘 읽는 것은 잘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지만 우리는 예비 작가인 동시에 서로의 동료이자 독자이므로 열심히 말을 고르며 이야기했다. 네 글은 이 점이 감탄스럽고, 이 점이 아쉽다고. 혹은 이 점이 궁금하다고.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찾다 보면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서로에게 온갖 애증의 감정이 싹텄다. 
 
여기엔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 있었다. 자기 글에 관한 의견을 받을 차례가 오면 글쓴이는 입을 닫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따라다니며 첨언할 수는 없다고 어딘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어떤 책을 사서 읽더라도 그 책의 작가가 실제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작가의 역량은 책 안에 담긴 텍스트로 평가받기 때문에 집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우리들의 글에서는 언제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다. 합평 시간이 오면 서로 그걸 놓치지 않고 날카롭게 짚었다. 나도 때로는 저격수 같은 합평자였다. 어떤 지적은 몹시 통쾌하여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지적은 내 글이 극복하지 못한 단점들이기도 했다. 내가 잘하는 건 어려워도 남에게 잘하라고 말하는 건 비교적 쉬웠다. 가끔은 자신도 아직 못하는 걸 서로에게 요구하며 합평했다. 우리보다 훨씬 좋은 작가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긴장감 넘치는 시간은 서로를 쑥쑥 키웠다. 잘 모르는데 아는 척하고 쓰다가 틀린 문장들, 무례하거나 폭력적인 문장들, 우스운 포즈를 취한 문장들, 비효율적인 문장들, 게으른 문장들, 느끼한 문장들, 그 밖에도 온갖 문제를 가진 문장들을 함께 살폈다. 이 우정은 질투와 감탄과 존경을 원동력 삼아 계속되었다. 
 
우리들 중 누구나 이 글방에서 논란거리 혹은 웃음거리가 되어 봤다. 매주 한 편을 쓰다 보면 한심한 실수를 몇 번쯤 저지르기 마련이었다. 그런 날에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어떤 글쓴이는 합평자의 말을 끊고 입을 열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원래 전하고자 했던 바는....” 그러면 어딘은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구구절절 해명을 늘어놓던 글쓴이는 어느 순간 말을 아꼈다. 말이 아니라 글로써 진작 잘 드러내야 했던 이야기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곳이 아니라 글쓰기 모임이니까. 
 
해명을 위한 발언권을 충분히 내어 주지 않는 건 적어도 이곳에선 글에 대한 존중이었다. 서로를 판단하는 근거가 글이기 때문이다. 글 이외의 정보를 함부로 추측해서 피드백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적어도 글방이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글로, 이야기로, 문장으로 서로를 만나기를 훈련했다. 합리적인 비난 앞에서 글쓴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고 듣는 게 상책이었다. 또 다음 주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오늘의 피드백을 받아 적어야 했다. 내 글의 성장은 다음 주에 완성해 갈 글로만 증명할 수 있었다. 만회할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물론 매주 만회되지는 않았다. 어떤 실수는 극복하기까지 일주일보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지금은 어떤 소속도 없이 혼자 글을 쓴다. 하지만 언제라도 내 등 뒤에서 나를 꾸짖거나 응원할 그들이 나타날 것만 같다. 어딘 글방에 7년이나 다녔는데도 여전히 혹평이 아프고 부끄러우며, 호평이 뛸 듯이 기쁘다. 
 
<일간 이슬아 시즌 2> 연재를 시작한 뒤 나의 스승과 친구들이 부쩍 자주 떠오른다. 작년에 해 본 일간 연재인데도 꼭 처음 하는 일처럼 어려워서 그렇다. 내 메일함에 아주 많은 피드백이 도착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합평 시간에 말을 아끼고 사람들의 말을 받아 적던 감각을 되살린다. 내게 쏟아지는 말들 중 어떤 것을 기억하고 실천할지를 고민한다. 답장은 하지 않는다. 궁색한 해명이 되기 쉬우므로. 답장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갈 정도로 많은 피드백이 와 있으므로. 일일이 해명하거나 응답하는 대신 내 글을 고친다. 그리고 새로 쓴다. 다시 잘해 보겠다고 다짐하며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다시’라는 건 말만으론 완성되지 않는 것 같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 새롭게 애쓸 각오를 하면 해명의 말을 꾹 참을 용기가 조금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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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슬아(작가)

연재노동자 (1992~).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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