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진형의 틈입하는 편집자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편집자의 삶은 시작됩니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5월호 다섯 번째 편지
스무 살 언저리에 한 시인으로부터 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매주 숙제가 있었는데, 국어사전을 읽어오는 것이었습니다. (2019. 05. 03)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의 범위를 헤아리면, 그 사람이 확장해낼 수 있는 세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수현,
편집자가 되기 위해 무엇부터 준비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언제나 저는 먼저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편집자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도 거의 비슷하게 답합니다. 먼저 좋은 독자로 살아가야 한다고. 물론 그렇더라도 편집자가 될 수 없을 수도 있고, 편집자로 살아남을 수 없을 수도 있겠으나, 편집자로 살아가는 것 그 이상의 것을 품고 있어야 편집자로도 겨우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독자는 편집자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는 결코 독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당위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독자가 된다는 것, 즉 책 읽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저는 사실 ‘독서법’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독서는 책의 종류만큼,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니까요. 지금 제가 소개할 이야기들은,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지향에 불과할 것입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독서는 습속과의 싸움이며, 그 싸움의 무기는 질문입니다. 인간다움을 옭아매는 것이 도리어 인간들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습속일 때가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한 습속의 근거가 되는 통념들을 강화하는 데 복무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이런 책들은 이른바 잘 팔리는 책이 됩니다. 그러나 무구한 책의 역사에서 진보를 이뤄낸 책들은 습속과 통념들에 맞서 용감하게 질문을 던진 책들입니다. 저는 습속과 통념을 강화하는 책들을 나쁜 책이라고, 그것에 맞선 책들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경우에 모두 해당하는 정확한 예가 있는데 바로 『성서』 입니다.
『성서』 는 누군가에게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기복의 증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고난을 마다하지 아니하는 정의의 깃발이 됩니다. 이 모순은 대개 오독에서 비롯하였으며, 그 오독은 질문하지 않는 순종 때문에 생긴 비극입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첫 번째 판단을 버려라. 그것은 시대가 네 몸을 통해 판단한 것이다.”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독자는 죽습니다. ‘두 번째 판단’에 이르는 순간, 독자는 거듭납니다.
둘째, 독서는 언어의 확장과 문장의 수련을 도모합니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의 범위를 보면, 그 사람이 확장해낼 수 있는 세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자신의 세계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전 학년 국어교과서를 해체한 후 장르별로 일곱 권의 책으로 분권하게 하였습니다. 그러곤 날마다 한 권씩 읽으라고 과제를 내주었지요. 국어 공부는 그게 전부였는데, 그 시절에 문장의 리듬과 아름다움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작품들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정교하게 심겨진 호흡의 아우라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스무 살 언저리에 한 시인으로부터 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매주 숙제가 있었는데, 국어사전을 읽어오는 것이었습니다. 3개월 만에 2800쪽짜리 국어사전을 완독했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읽을 때마다 생소한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본 후, 별도의 수첩에 옮겨놓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어휘를 수집하는 것이지요. 수집되는 어휘만큼 문장은 물론 저의 삶도 조금씩 깊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셋째, 독서가 체험, 즉 몸의 경험이 될 때에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머리의 기억은 쉬이 잊히지만, 몸의 기억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습니다. 몸으로 익힌 자전거 타는 법은 평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습(習)’이 중요합니다. ‘習’은 ‘어린 새가 날개(羽)를 퍼드덕거려 스스로(自) 날기를 연습한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습’은 ‘비행’의 단초가 됩니다. 하루에 많이 읽지 못하더라도, 하루라도 읽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습’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문장에 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를 남기고 책 한 모퉁이를 접어 표시해두는 것은, 그리고 문장을 필사하고 온라인 공간에 간단한 독서록을 남기거나 서평을 쓰는 것은, 모두 그 텍스트를 몸으로 기억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낭독을 통해 눈으로 읽고 귀로 들으면서, 그리고 타자와 더불어 독서라는 노동을 수행하면서, ‘책의 습’에 좀더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넷째, 독서는 ‘저자-책-독자’의 지형도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책을 사이에 두고 저자와 독자가 만납니다. 저자의 시대ㆍ장소ㆍ사회와 독자의 시대ㆍ장소ㆍ사회가, 저자의 사상과 독자의 사상이 충돌하고 화해하며 새로운 길을 도모합니다. 저자와 독자는 서로 해석당하거나 해석해냅니다. 저는 책을 읽은 후, 저의 승리 혹은 패배를 기록합니다. 독서의 패배는 승리만큼이나 값집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정복이나 항복이면 곤란합니다. 기록의 형식은 서평이면 제일 좋겠으나 시간이 부족하다면, 책의 면지 한 모퉁이에 기록하는 한두 문장이라도 괜찮습니다. 조금 더 욕심낸다면, 나만의 색인을 기록해놓는 것입니다. 내가 느낀 것, 깨달은 것, 발견한 것을 또 하나의 색인처럼 쪽수와 함께 기록해놓는 것이지요.
다섯째, 독서로 사상의 지도를 만듭니다. 지도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사상은 홀로 탄생하지 않습니다. 책의 각주와 참고문헌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산맥에 이르게 됩니다. 그다음 필요한 것은 종이를 꺼내 지도를 그리는 것입니다. 그 지도는 곧 나만의 도서목록이 됩니다. 근대를 지배했던 사상가들과 현대를 추동해냈던 사상가들을 쫓다 보면,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밖에도 미처 소개하지 못한 독서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출판 기획은 시작됩니다. 어휘의 확장과 문장의 수련은 편집자의 생산성과, ‘책의 습’은 편집자의 체력과 관련 있습니다. 독서의 지형도와 사상의 지도 위에서 새로운 책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어디 편집자뿐이겠습니까.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삶은 시작됩니다. 어휘의 확장과 문장의 수련, 그리고 ‘책의 습’은 우리 삶을 깊고 단단하게 합니다. 독서의 지형도와 사상의 지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굳건한 사상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 먼저 독자가 되어야 합니다.
편집자로 일한다는 자부심을 잃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