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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편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 <마담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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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영화 <마담B>를 외면하지 못할 만큼 인상 짙은 얼굴이었다. (2018.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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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밝힐 수 없는, 마담B 때문에 나는 심란하고 답답했다. 그녀의 인생이 보여준 사람과 사랑의 운명이라는 거, 가족과 국가는 선택과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운명 그 자체라는 것이 마음을 회색밭으로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블랙 화면에 울먹이는 북한 어투의 내레이션이 자막과 함께 연속된다. “엄마 때문에 네가 누명을 받으면 내가 다 책임을 지겠으니 너는 엄마를 욕하고 비난만 해라. 엄마를 용서해라.” 이 엄마가 마담B다. 공부시키겠다고, 잘 살라고 탈북시킨 두 아들에게 남기는 눈물의 메시지다. 왜 한국에 정착한 두 아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 영화 <마담B>는 윤재호 감독이 핸드헬드 카메라로 밀착하여 담은 그녀의 인생 고백록이다.
 
‘탈북여성’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이 영화는 내 관심 바깥에서 비켜 있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문제는 으레 어떤 답을 강요하므로. 영화와 다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예고편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영화 <마담B>를 외면하지 못할 만큼 인상 짙은 얼굴이었다.
 
마담B에게는 북한의 가족과 중국의 가족이 있다. ‘북한의 남편’도 있고 ‘중국의 남편’도 있다. 떠나온 곳과 떠나간 곳, 그러니까 남편이 둘이다. 현재 마담B는 탈북한 북한 가족과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중국의 남편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 삶의 질곡이 짐작되는 발길, 굳이 왜 과거를 돌리려고 할까. 이곳의 삶이 어떻길래? 아니, 그곳의 삶이 어땠길래? 그녀는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15년 전 가난을 면하기 압록강을 건너 중국 산둥으로 넘어왔다. 2003년 나이 서른일곱. 1년만 돈을 벌고 북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브로커에게 속아 가난한 중국 청년 ‘진 씨’에게 팔려 결혼했다.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돌아갈 수 없었다. 해가 지나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중국 남편을 좋아했다.
 
북한 가족의 생활비를 위해 그녀는 탈북 브로커 일을 했다. 1인당 1000위안을 받고 꽤 노련한 브로커로서 활동했다. 카메라가 들이댄 숨 가쁜 탈북 현장은 싸했다. 인간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목숨 건 탈북 장면에서 브로커인 그녀는 무섭고 독하고 악착같았다. 오토바이를 몰 때의 모습은 중년의 북한 여성이라기보다는 운동선수 같았다.
 
속아서 자신과 결혼했다는 것, 이미 남편과 아들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진 씨는 누구보다 그녀를 이해하고 아꼈다. 아들이 있는 그녀를 위해 자식도 낳지 않았다. 이 중국의 남편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한국에 가려 한다. 한국에서 국제결혼을 하게 되면 정식 부부로 살 수 있으니까. 제도권 바깥에서 떠돌던 그녀는 제도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 한다. 그것도 자본주의라는 제도 속으로. 그녀가 한국으로 잠행하던 날, 둘은 눈물을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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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담 B>의 한 장면

 

 

여권 없는 탈북 여성들과 함께 라오스와 태국을 몇 날 며칠 헤매고 흙탕물 강과 허허벌판을 건너 밤새 숲길을 내달린다. 방콕의 탈북자 임시 수용소에서 한국의 입국허가증을 받고 도착한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녀는 바로 ‘간첩’ ‘마약거래’ 혐의로 국정원의 조사를 받는다.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신물 나는 한국’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정수기 소독 작업과 귀가 후의 가사로 채워져 있다. 그녀에게 웃을 일이 없다. 중국 남편을 데려오려던 꿈은 사라지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북한의 남편’ 앞에서 ‘중국의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하는 아이러니. 그녀에게 남편이 둘인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두 나라, 두 남편 사이에서 마담B는 방향을 잃었다. 언제든 두 가족을 책임지겠다던 당당함은 절망 속에서 겨우 버티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프랑스 영화제작사는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에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를 붙였다. 그녀의 진짜 이름이 궁금하다. 윤 감독은 이 다큐 연출 이후 탈북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를 찍었다. 다큐든 극영화에서든 그녀들은 강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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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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