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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자가 누리는 산책

‘산책’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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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오래 보고 싶은 책은 아무래도 종이책으로 살 것 같다. (2018.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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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이상하다. 못 견디게 책을 읽고 싶어 안달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바로 ‘급박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다. 내 경우 데드라인을 이미 넘긴 원고를 급하게 써야 할 때 그렇다. 아, 이 책을 ‘지금! 당장!’ 읽을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의 백 분의 일 정도는 팔 수 있을 거야, 생각하며 신을 원망한다. 신이여, 왜 제게 책 읽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겁니까? 그러면 불벼락과 함께 호통을 치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게으른 놈아, 내종 놀다 왜 하필 일하라니까 책을 읽겠다고 난리냐? 이건 신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원래 시험기간에 읽는 책과 원고 마감 때 읽는 책,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자우림)” 읽는 책이 제일 재미있는 법!

 

물론 책보다 재미있는 일은 세상에 많다. 침대에 누워 땅콩을 까먹으며 텔레비전 보기,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떨기,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사람들의 동정 살피고 댓글달기… 다 재미있지만 ‘혼자 구석에 앉아 책장에 코를 박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흥미롭고 짜릿하다. 책 읽는 자만이 누리는 특별한 산책이 있는 것이다. 독서는 한자리에서 멀리 다녀오는 능동적인 행위다. 

 

 사실 전자책을 읽기 전에는 독서를 ‘산책’과 연결지어 생각한 적이 없었다. 스스로 책 읽는 자의 위치를 따져 묻고,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전자책을 읽다 나는 독서가 걷는 일임을, 그것도 지표와 길이 있고 거리와 공간을 느끼며 하는 능동적인 산책임을 알게 되었다. 침대 위, 책상 앞, 나무 아래… 이렇게 실제 독서하는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한 권의 책에서 내가 어느 부분을 지나고 있는지, 어느 곳에서 머무르거나 서성이는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이 책 속의 공간 지각을 통해 일어나는 일인지 몰랐다는 말이다. 물론 전자책을 읽는 중에도 알 수는 있다. 가령 ‘85/376’, 이런 식으로 총 376쪽 중에 85쪽을 지나는 중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그러나! 손으로 책을 쥐어 잡고, 책장의 부피 변화를 느끼며, ‘이동 감각’을 전자책으로 느끼긴 어렵다. 처음 전자책을 접했을 때 당황했던 이유, 어딘가 답답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전자책을 보는 중엔 책을 텐트처럼 엎어두고 물끄러미 표지 보기(나는 이 행동을 정말 자주 한다)를 할 수 없다. 책 모서리를 일없이 매만지며 읽기, 이따금 되돌아가거나 앞서가기, 걸은 곳에 나만의 표식(가령 나뭇잎이나 엽서나 돈을 끼워놓는 일)을 얹어두기 등을 할 수 없다. 영 섭섭하다.

 

물론 전자책이 가진 장점도 많다. 두꺼운 책을 볼 때 손이 편해진다. 침대에 옆으로 누운 후 쿠션에 전자책을 세워놓고 읽으면 더 없이 편하다. 책 한 권보다 가벼운 기기에 많은 양의 책을 저장할 수 있기에 여행갈 때 좋다. 급하게 책을 구해 봐야할 때 서점에 갈 필요 없이 바로 구입해 볼 수도 있다(좋은 점이 어째 죄다 몸이 편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자책으로 ‘산책’하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읽은 책의 구절을 인용해 글을 쓰려 할 때도 불편하다. 그게 어디쯤 있었더라, 찾다가 포기한다. 닫힌 문 앞에 선 것처럼 막막해 하다 결국 전자책으로 구입한 책을 다시 사오거나 도서관에 가서 빌린 적도 여러 번이다. 뭐랄까. 전자책은 책의 증명사진 같다고 할까. 한참을 걸었는데 겨우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올 때의 기분 같다고 할까. 정말 읽고 싶은 책, 일할 때 두고 오래 오래 보고 싶은 책은 아무래도 종이책으로 살 것 같다. 무엇보다 산책이란 아무렴, 나무 사이(종이들!)를 헤집고 걷는 게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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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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