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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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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좋아질라치면 나는 먼저 끝을 생각한다. 맨 끝 말이다. (2018.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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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은 중요하다. 중심이 있음으로 ‘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면에서 아주 그렇다. 한 개인에게도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려 친구가 될 때도 그 중심은 기둥이 되고 지붕이 된다. 플로리스트는 꽃다발을 만들 때 가장 생기가 좋은 상태의 꽃을 중심으로 해서 나머지 꽃들을 돌려 묶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휩쓸고 지나간 많은 ‘그룹’들은 왜 오래 묶이지 못하고 깨지거나 그중 일부만 따로 남는 걸까.

 

한 그룹이 있었다. A는 귀여운 수준을 벗어나는 정도로 거짓말을 하는 데 능했고, B는 돈을 꾸고 꾸다 해외로 도주를 했으며, C는 우리가 헤어진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안타깝게도 자살이라는 극단 방식을 택했다. 나는 그 세 사람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적고 있지만 그들은 나머지 한 사람인 나를 무어라 한 줄로 적게 될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인, 지금의 시점에서 말이다.

 

또 한 그룹이 있었다. 꽤 친하게 지내던 네 사람 사이에 내가 들어가 다섯이 되었다. 내가 들어가자 그룹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며 듣기 좋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자주 모였고 정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매일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일 만났다. 셋이나 넷이 모이는 건 무효처리 되었고 다섯이 돼야 합체였다. 이제 와서 이 그룹이 깨어진 이유를 돌아보니 서로 너무 좋아해서였던 것도 같고, 서로가 서로를 가족이라 칭하면서 큰 의미를 부여한 데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또 여러 그룹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생각만 하는 것으로 입 안이 쓰고 맵다. 지나간 것은 그렇게 쓰고 맵고 짜고 텁텁하다.

 

깨졌기 때문에 우리는 더 함부로 말할 자격을 갖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든 전체를 전체로 이끌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그 좋은 시절을 지금까지 이끌고 오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어떻게든 덮으려 하다 보니 쓰디 쓴 사실만 도드라지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는 최선을 다했단 말이야, 라고 절규라도 하고 싶은 것일지도.

 

그렇다면 중심은 누구였을까. 중심이 없었다면 그토록 만나지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 질문에 무게를 두어본다. 중심을 확보하지 않으면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의 문틀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영혼이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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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생중계되고 있다. 연애하는 모습이 모습만으로 좋아 보여 모르는 사람임에도 팔로우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별 후, 추억의 장면들을 모두 삭제한 것이다. 삭제키를 누를 때의 손가락은 어느 정도 마취를 한 상태일까. 한때는 들끓고 암팡졌던 순간들을 써내려간 문장을 지우는 손가락의 감정이란 어떤 것일까.

 

언젠가 내가 살던 동네에는 수영장을 갖춘 아파트가 있었는데 수영장을 이용하기 위해 그 아파트에 사는 동네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다. 남의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때도 친한 사람이 아니면 도서관 카드를 빌릴 수 없으니 마찬가지였다. 바다가 보이는 별장이 있는 사람과도 친해질 수 있다면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친구가 되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친구가 아닌 사이가 되고 만다. 
 
“그때 그 친구 잘 있어? 요즘도 자주 봐?”
“어? 아니, 그게… 안 본 지 꽤 됐네.”

 

그럴 때마다 왜냐고 묻는다. 묻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어김없이 왜냐고 묻는다. 나는 그 사람을 흉볼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는데도 자꾸 왜냐고 묻는다. 그래도 대답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를 안 좋은 인물로 진술하고 만다. 그럴 때 ‘뭔가 저질렀을 수도 있었을’ 나의 속물적 입장은 배제된다. 미치겠다, 정말.

그런데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간 것일까.

 

“그렇게 친구들이 좋으면 친구들하고 살아. 집에 들어오지 말고.”


이 말은 청춘을 지나며 어머니께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다. 사실 친구들이 더 좋았다. 더군다나 집에 들어가는 건 정말 싫었고. 그래서 바뀐 게 있는데, 안타깝게도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로 바뀌었고, 다행스러운 건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 일찌감치 집을 나와 독립이라는 걸 했다. 그래서, 그 과거의 친구들은 모두 어디 있는 것일까. 돌이키려니 나는 너무 멀리 와 있고 그곳으로 되돌아가자니 낡고 해진 부위를 꿰맬 재간이 없다.

 

누군가가 좋아질라치면 나는 먼저 끝을 생각한다. 맨 끝 말이다. 좋아도, 좋지 않아도 끝은 끝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결말의 지점을 이제 와서는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라 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모든 관계가 시간 앞에서 감히 영원할 수도 없으며 감히 이상적일 수도 없다면, 그렇게 끝은 끝인 채로 완성일 테니.

 

나의 어떤 경우는 처음부터 관계의 끝을 예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섭지도 않다. 그냥 무조건 그 사람에게 잘해주게 된다. 너무 잘해주다 보면 나 스스로가 감동해서 내 콧등이 자주 시큰거릴 때가 있는데 언젠가 닥쳐올 끝을 생각하면 내가 더 잘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런다. 미치겠다, 정말.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인정하지 않으려는 걸까? 아니면 끝과 관련된 기억들을 락스로 빡빡 지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걸까. 아무리 끝이 안 좋았었다고 그 끝 자체를 모른척하려 해도 분명 ‘최고의 끝’이란 건 존재하는 것 같다. 무의미한 끝이란 것도 없지는 않은 것 같고 말이다.

 

여행이란 말과 ‘거시기’가 합쳐진 ‘여행뽕’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지에서 우리의 허전함은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의 특별한 시간을 염두에 두면서 슬쩍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안 그래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 그 한 사람에게 무작정 빠져들지만, 막상 여행지에서 돌아와서는 그 감정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 말 앞에서 나도 모르게 동공이 열리고 마는 것은, 우리가 한때 같이 지낸 사람들과의 그 시절은 그저 여행뽕이거나 ‘사람뽕’에 취한 상태에 불과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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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병률(시인)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찬란』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2005) 등이 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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