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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다음 생엔 내 딸로 태어나

김애란 『달려라, 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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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더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 (2018. 0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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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아버지는 자살했다. 당신 나이 스물아홉 살에. 여름이 한창인 1988년 초복이었고, 유서 한 장 없는 죽음이었다. 대체 청산가리는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걸까. 엄마는 아버지가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경찰에게 매달렸지만, 경찰은 주검을 발견한 즉시 아내 동의 없는 부검을 마치고 사건을 하루 만에 종결시켰다. 

 

나는 엄마의 은폐 덕에 아버지의 죽음을 삼십 년 가까이 교통사고로 알고 살았다. “사실은 자살”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살짝 놀랐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정말 자살이라면, 근사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다. 요절은 한때 나의 꿈이었는데, 나는 죽지 못했다. 요절을 하려면 세상에 뭔가 멋진 글을 남겨야 하는데 그런 글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내 꿈을 대신 이뤘다. 내가 요절할까봐 본인이 죽어버린 게 분명하다. 아버지는 ‘멋진 글’ 대신 ‘멋진 나’를 남겼으니까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버린 건 아닐까.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남긴 사랑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살면서 가끔 필요하고 때로 간절했던 ‘부정’의 결핍을 나는 그런 식으로 채우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해 나는 다섯 살, 동생은 세 살이었다. 엄마는 고작 스물일곱 살이었다. 나중에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 엄마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그제야 실감했다. 나의 스물일곱은 뭐든 허물고 새로 시작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가능성의 나이였다. 왜 나를, 내 동생을 버리지 않았느냐고, 따지듯 물었던 날도 있었다. 따지듯 말했지만 정말 궁금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희생되어도 좋은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엄마의 스물일곱을 내가 방해하고 어쩌면 훼손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견디기 힘들었다. 자라는 동안 나는 송곳 같은 자식이었다.

 

“네가 이런 글을 썼으면 좋겠다.” 내게 달려라, 아비』 를 선물한 어른은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하던 신문사의 기자이자 등단한 시인이었다. 나는 책 제목을 흘끗 보곤 ‘아비’가 ‘하늬’처럼 씩씩하고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아비가 아버지를 뜻하는 말인 줄이야. 책을 펴고 홀린 듯 읽어나가면서 김애란의 문장과 행간에서 일종의 연대를 느꼈다. 내 아버지도 지구 어디쯤에서, 지구가 아니라면 외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라도 ‘사랑의 인사’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서로의 부재 속에서도 나름대로 썩 잘 살고 있음을 그렇게 확인할 수도 있는 거니까. 

 

소설책을 덮고 아버지가 그저 ‘여기’ 없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고 나니 기분까지 좋아졌다. 학창시절로 돌아가 다시 가정환경조사서를 쓰게 된다면 아버지 직업란에 ‘마라토너’라고 적고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없음’을 나는 달려라, 아비』 를 통해서야 비로소 긍정하고 극복했다. 

 

김애란이라는 작가를 소개한 어른은 내게 ‘김애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라고 했지만, 나는 ‘김애란을 만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문화팀 발령 이후 첫 인터뷰를 맡게 됐을 때 김애란을 섭외했다. 그는 연재 중이던 장편소설(두근두근 내 인생』 )이 출간되고 나면 만나자고 몇 차례 고사했지만, 나는 그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졸랐다. 내 삶이 그의 글에 빚진 부분이 많았으므로. 나를 <시사IN> 기자로 꼭 뽑겠다고 고집한 당시 편집국장이 ‘좋았다’고 했던 자기소개서 역시 그의 문장에 빚졌다. 나는 김애란의 단편 『영원한 화자』 의 문장을 인용해서 자기소개서를 썼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최종 면접을 보고 온 날, 잠을 뒤채며 또 김애란의 문장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절실함은 언제나 내게 이상한 수치심을 주었다”라던. 김애란이 그 문장을 떠올렸던 날도 입학 면접 날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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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아버지의 부재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있음’ 역시 나는 김애란의 소설을 통해 극복했다. 엄마가 나를 가여워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엄마는 늘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자기 처지를 연민했고, 자기 새끼를 연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가 될 수 없었던 걸까. 나는 많은 시간 엄마에게 ‘물리적으로’ 빚진 기분으로 살았다. 차라리 소설 속 ‘어미’처럼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욕도 잘하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엄마가 김애란 소설 속 ‘모’처럼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내가 선택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실재하는 엄마의 빈 부분을 메꿔줄 가상의 엄마가 필요했다. 달려라 아비』 나 『칼자국』 속 엄마 같은. 그러다 그냥 또 다른 엄마를 발명하면 어떨까 싶었다. 어떤 아이에게는 ‘두 명의 엄마’가 필요한 법이다.

 

나의 엄마, 송명희 씨. 주민등록상으로는 1961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60년에 태어난 사람. 할아버지는 엄마가 태어나기 한 해 전 죽어버린 아이처럼 엄마도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남아’ 3녀1남의 둘째딸이 된 여자. 나는 늘 엄마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다. 고3이 되던 여름, 취업이 결정되고 폴더형 휴대전화를 처음 가졌을 때 나는 휴대전화에 엄마 번호를 입력하면서 ‘엄마’ 대신 ‘송명희’라고 적어 넣었다. 아버지가 사랑을 담아 가만히 발음했을 그 이름을. 나는 송명희 씨가 여자로 살길 바랐지만, 그녀의 사랑은 번번이 실패했다. 엄마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받을 사랑을 아버지와 함께 사는 5년 동안 모두 받았노라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은 내 생각엔 앞뒤가 맞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동네 모르는 다방 아가씨가 없는 남자였다는 흉을 종종 보곤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런 기억을 평생 파먹으며 사는 여자였다.

 

엄마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출근하면서 “간다”라고 말하는 거였다. “갔다 올게, 아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해봐.” 시간에 쫓겨 인사 없이 훌렁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아침에 한두 마디 나눌 여유가 있으면 새삼 깨닫곤 했다. 집 나선 가족이 돌아오지 않는 일이 엄마에게는 평생의 상처라는 걸. 그래서일까. 엄마는 내가 긴 출장이나 여행을 가기 전에는 아침을 잘 차려주지 않았다. 엄마가 차렸던 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식사가 출장 날 아침이었던 탓이다. 마찬가지로 그날 아침 밥상에 올렸던 고등어자반 역시 졸라야만 해주는 음식이다. 

 

시골 동네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걸로 이름 나 등록금을 대준다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했던 엄마. 할아버지의 자존심 때문이었고, ‘계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아들인 막내삼촌이 춘천으로 유학을 갔을 때 엄마도 함께 춘천으로 갔다. 밥 해줄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영어로 써진 간판을 읽고 싶다며 엄마가 영어공책을 사왔던 날, 대문자와 소문자를 차례대로 적어준 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디 내 엄마뿐일까. 수많은 ‘엄마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박탈당한 기회를 생각한다. “다시 태어나면 대학도 다니고 대학원도 다니고 유학도 가야지.” 엄마의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엄마. 그때는 내 딸로 태어나. 내가 엄마 하고 싶은 공부 다 시켜줄게.”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더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 현실의 엄마와 나는 당장 생활의 구멍을 메꾸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지만. ‘다음 생’을 약속하는 일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런 소리나 주고받을 뿐이다. 우리 식의 위로다. 

 



 

 

달려라, 아비김애란 저 | 창비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 등으로 상처입은 주인공이 원한이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기긍정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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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일호(시사IN 기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자주 ‘이상한 수치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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