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번역은 제3의 언어, 회색의 언어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정영목 저자 인터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같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하다 보면 작가를 이 책이 저 책을 비춰주어서, 전에는 흐릿했던 것이 또렷해지기도 하지요. (2018. 06. 05)

정영목4.jpg

 

 

첫 에세이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정영목 옮김’에서 처음으로 ‘정영목 지음’으로 나온 책인데, 느낌이 어떠신지요?

 

제 주위에도 옮긴이에서 지은이로 바뀐 것을 축하하는 분들이 계신데, 마음은 고맙게 받지만 사실 그 자체가 축하받을 일은 아니죠. 저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글 쓰는 분들 가운데 존경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건 그 분들이 지은이라서가 아니라 훌륭한 지은이라서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제가 지은이가 된 것도 그 자체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옮긴이에서 영전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얼마나 좋은 지은이일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안타깝게도 점수가 높지는 못합니다만). 이건 제가 옮긴이일 때 그 자체로 무엇보다 못하거나 낫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얼마나 좋은 옮긴이이냐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유학 경험이 없단 걸 알면 많은 독자와 번역가 지망생이 의외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번역가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91년에 시작하셨지만 번역이 생업이라는 자의식은 10년쯤 뒤부터 가지셨다고요.


유학을 안 가서 아쉬움을 느낀 적은 없지만, 그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운 적은 많습니다. 번역을 하게 된 계기는 “어쩌다가”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 그 시절만 해도 번역은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저 또한 자유롭게 내 시간을 쓰면서 생계도 도모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앞의 “어쩔 수 없이”가 서서히 떨어져나간 것 같고, 그러면서 자유롭기는커녕 제 생활이나 생각까지 번역에 얽매이게 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번역이 생업이라는 건 그렇게 사는 방식까지도 받아들였다는 뜻이겠죠.

 

번역 의뢰를 수락하는 기준과 기본적인 번역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동시에 여러 권을 진행하신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수락’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어쨌든, 어떤 것이든 한 가지라도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면이 중요한 듯합니다. 책 한 권을 번역하는 것은 꽤 긴 작업이므로 그런 유인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겠지요. 물론 그밖에 해당 저자에 대한 ‘애정’도 당연히 작용하고요. 번역 작업은 누구나 할 만한 ‘표준적인’ 방식으로 합니다. ‘동시에 여러 권’이라는 말은 소설과 인문을 병행하면서 내적인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는 말이 좀 와전된 듯하네요. 하지만 집중력이나 지구력이 약해서, 한 권을 오래 진득하니 잡고 있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를 보면 번역가가 추구해야 할 번역은 ‘제3의 언어, 회색의 언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부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했을 때, 그건 어떤 면에서는 외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제3의 언어가 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회색의 언어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것을 굳이 기존의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묶어두려고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물론 미숙한 한국어 구사를 정당화하자는 뜻은 아니지만요). 외국어에서 오는 자극을 즐기고, 그것을 활용해 우리말의 외연, 우리말의 회색의 영역을 넓히는 게 번역의 중요한 재미이자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삶도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겠지요.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을 보면 필립 로스나 알랭 드 보통 등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럿 번역하셨단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새로이 보이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에 대한 마음도 일반 독자들과는 다를 것 같고요. 최근에 필립 로스의 타계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지요.

같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하다 보면 작가를 이 책이 저 책을 비춰주어서, 전에는 흐릿했던 것이 또렷해지기도 하지요. 또 번역이라는 건 일차적으로 매우 꼼꼼한 읽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복되는 미세한 버릇이나 작은 변화도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그럼 왠지 작가 본인보다 작가를 더 알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하지요. 왜 우리도 가까운 친구의 경우에는, 친구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버릇 같은 걸 알게 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큰 작가의 경우에는 쉽게 자신을 알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산맥처럼 커서 산 하나만 올라가 봐서는 전모가 잘 안 들어오는 거지요. 사실 산 하나를 올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고요. 몇 개를 올라가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전모를 조금은 알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정말 가볼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로스는 그런 큰 작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과 무관하게 평소 즐겨 읽는 책은 어떤 책인지,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업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읽는 양으로만 따지자면 우리 소설이 가장 많은 듯합니다. 꼴지로나마 흐름을 따라가 보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요.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그 외에 다른 여러 분야에도 아직 호기심이 남아 있고, 또 새로 배우고 싶은 분야도 생겨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또 제 즐거움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만화인데,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권하고 싶네요. 그 책 한국어 번역판을 들고 가마쿠라를 어슬렁거리는 중늙은이가 눈에 띈다면, 그게 저일 확률이 아주 낮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을 읽을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두 책은 언뜻 성격이 달라 보이지만, 번역 작업의 주변에서 벌어진 일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권에는 그 작업 자체에 대한 생각, 즉 번역 작업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주로 담겨 있습니다. 미리 주의를 드리자면, 번역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또 한 권은 그 작업에서 파생된 작업, 예를 들어 그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생각이 주로 담겨 있습니다. 역자후기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자리에서 하게 된 이야기를 모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번역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글들도 조금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데까지 관심이 미치신다면, 자랑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시간을 내서 한번 훑어봐 주시면 저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정영목 저 | 문학동네
번역 실무에 대한 테크닉보다는 번역의 윤리와 역할, 번역가의 글쓰기 문제 등 번역가 지망생이 생각해봄직한 화두를 다루어 ‘번역가의 일’에 대한 저마다의 성찰을 독려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