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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경우를 대비한다면 간단한 사인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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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인본이란 특별하니까, 책을 쓰려는 사람들이라면 멋진 사인을 미리 연습해 두는 것도 좋겠다. (2018. 03. 13)

출판은 제조업이다. 상품이 기획되어 생산라인이 갖춰지면 몇만 개를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제조업과 달리, 출판은 길어야 이틀 동안 인쇄기가 돌아가 초판 이천여 권을 만들어 낸다. 만들어 내는 수량도 적은데다 새로 찍어낼 때마다 쇄나 판을 적어 넣어 몇 번째 만들어 낸 물건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은 한정판 상품과도 흡사하다. 하지만 책은 분명 공산품이다. 그럼에도 책이 특별해지는 건 책을 읽는 동안 각자가 경험하는 책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일반적인 상품보다 더 개별적이다.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사인이다. 면지나 도비라 빈 공간에 저자의 친필을 담은 사인본은 다른 책과 달리 한층 고유한 것이 된다. 한때는 사인본의 의미를 잘 몰랐다. 다들 좋다는 것에는 시큰둥해지는 모난 취향 때문인지 유명인을 만나도 부러 사인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사인은 시간의 일부를 받는 것'이라 말한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오롯이 한 사람을 위해 쓴 ‘시간’을 모양이 있는 것으로 고정한 것이 '사인'인 셈이다. 읽는 이의 시간이 책에 녹아 들어가는 만큼, 책에 저자가 건네준 나만의 시간을 받는 일은 근사하다.

 

 

사진_01.JPG

                                       가장 최근에 받은 사인본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그래서 저자 친필 사인이 담긴 사인본 이벤트는 꽤 인기가 있다. 가장 정통적인 방식은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것이다. 강연회를 열어 말미에 사인 받을 시간을 주기도 하고, 아예 일부러 사인회를 열기도 한다. 요즘은 미리 사인해둔 책을 한정해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필요한 사인본이 서너 권일 때야 편집자와 저자가 만나 사인을 받기도 하고, 수십 권 단위일 때는 저자의 집에 새 책을 보내 사인해서 다시 보내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초판 한정 사인본 이벤트’처럼 필요한 사인본이 500권을 넘어가면, 저자가 물류창고로 가는 수밖에 없다. 물류창고는 갈 때마다 이상하게 바람이 늘 많이 분다. 이곳에서 변변한 난방기구도 없이 간이 책상을 앞에 두고 접이식 의자에 덜렁 앉아, 지게차에 팔레트 단위로 실려오는 책에 손이 곱을 때까지 사인을 하고 나서야 풀려난다. 갓 나온 책을 보는 기쁨에 즐겁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사인을 하는 사람도, 옆에서 책을 건네는 사람도 말이 없어진다.

 

사인본에 들어가는 노력을 알고 난 이후 기회가 있다면 사인을 꼭 받고자 애쓴다. 초판 사인본을 냉큼 구매했는데, 사인이 없는 책을 받은 적이 있다. 서운한 마음으로 끙끙 앓고 있는데 마침 작가가 SNS에 글을 올려 사인본을 못 받은 사람에게는 따로 사인 종이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냉큼 저요, 손을 들어 내 이름과 그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구까지 따로 받았다. 더 신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진_02.jpg

                                따로 받은 사인 종이 『커피 우유 신화』

 

 

사인본을 만나게 되면 가장 씁쓸한 장소는 헌책방이다. 받는 사람 이름까지 적힌 사인본이 중고도서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괜히 내가 더 겸연쩍다. 난감한 사인본은 또 있다. 인쇄된 사인본이 그것이다. 보통 초판 한정으로 사인이 인쇄된 면지를 넣어 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쇄된 사인이란 무늬와 무엇이 다른지 애매하다. 게다가 인쇄된 사인본을 갖고 있다가 진짜 저자를 만나게 되면, 어디에 사인을 받아야 할까? 인쇄된 사인 위에 그대로 따라 그리기를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이벤트용 사인본 다섯 권을 들고 가다가 전철에 두고 내린 적이 있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었지만, 그나마 교정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며칠 걸려 새빨갛게 교정해둔 초교지를 잃어버리는 것이 몇 배는 두려운 일이니까. 내 속내와 무관하게 작가는 흔쾌하게 "지하철 이용자 대상으로 이벤트 한 셈 치지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지하철 이용자 대상 이벤트는 불발되어 사인본은 3호선 대화역에서 무사히 발견되었다.

 

아무튼 사인본이란 특별하니까, 책을 쓰려는 사람들이라면 멋진 사인을 미리 연습해 두는 것도 좋겠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경우를 대비한다면, 강조하지만 간단한 사인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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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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