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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탁상 담화’의 식탁을 차렸을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카타리나의 목소리를 대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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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아내인 카타리나를 존중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은 “온 인류가 여인에게서 잉태되고 태어나고 양육되기 때문”(420쪽)에 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결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7.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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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마틴 루터>와 <카타리나 폰 보라>

 

2017년이 끝나간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여러 곳에서 루터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었다. 반면 가톨릭 신문에서 “1517년 종교분열을 일으킨 마틴 루터”라는 표현을 접했다. 물론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종교개혁이 종교분열일 수 있다. 『탁상담화』를 읽어 보면 루터가 교황을 거의 악의 영혼으로 여기는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한다. 당시에 서로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화가가 어떤 인물을 지지하는 방식에는 초상화 그리기가 있다. 예를 들어 구스타브 쿠르베는 ‘근대’의 상징인 샤를 보들레르의 초상을 그렸다면, 루카스 크라나Lucas Cranach the Elder(1472~1553)는 종교 개혁의 상징인 마틴 루터의 초상을 그렸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 그는 구교에서 신교로, 독신 성직자에서 결혼하는 성직자로 역사를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적극 활용했다. 루터와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크라나흐는 수도사 복장을 한 루터의 모습을 자주 그렸다. 도덕적 인물로 영원히 남기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나아가 루터의 아내인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1499~1552) 초상까지 그렸다. 이는 성직자의 결혼을 지지하는 방식이다. 루터는 1520년 이미 성직자의 독신 제도를 폐지하는 선언을 했고, 수도원에서 탈출한 수녀인 카타리나 폰 보라와 1525년 결혼한다. 두 사람의 결혼은 기존의 종교적 관념에서 볼 때 파격이었고 많은 비난과 논란을 몰고 왔다. 초상화를 남기는 일은 곧 권력의 상징이기에 크라나흐는 부부의 얼굴을 나란히 그리면서 성직자의 결혼을 공적이면서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카타리나 폰 보라는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처음으로 알려진 ‘목사의 아내’다. 그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릴 때 수녀원에 보내져 그곳에서 교육받고 성장했으나 결국 다른 동료 수녀 11명과 함께 마차에 숨어 탈출했다. 당시 카타리나 폰 보라의 이미지는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사업가이며 지적인 여성으로 언급되기보다는 남편을 잘 보필하는 성직자의 아내로 활용되었다. 오늘날 ‘목사 사모님’이 목사의 아내로서 많은 노동을 하듯이 카타리나 폰 보라도 마찬가지였다.


성직자는 대체로 남성이고 이 남성이 종교적으로는 개혁적 인물이라 할지라도 제 아내에게도 개혁적이긴 힘들다. 교양있고 뛰어난 감각도 있으며 때로는 천재적이며 체제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남성들이 어떻게 여성을 혐오하고 멸시하면서 여성의 보호자를 자처해왔는지 알려면 고전을 보면 된다. 장 자크 루소도 『에밀』에서 소년은 강건한 신체가 중요하고 소녀는 (남자를 위해)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운동의 선구자인 메리 울프턴크래프트는 훗날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모욕에 가까운 연민의 대상”으로 여성을 그려낸 루소의 저작을 비판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루터도 예외가 아니다.

 

『탁상담화』는 성경 해석에 도움을 주는 관점도 있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남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성을 보편적 인간으로 두고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오는 구절도 많다. 결혼을 긍정하기 위해 독신을 ‘좋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고 결혼을 종교 다음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한다. 또한 루터는 아내인 카타리나를 존중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은 “온 인류가 여인에게서 잉태되고 태어나고 양육되기 때문”(420쪽)에 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결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성별의 인간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자를 좋아하고 심지어 보호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왜 여성을 혐오한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니 나름 억울한 남성들이 많다.


당시의 기준으로는 꽤 여성을 존중하는 편에 속했던 루터도 “여성들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침묵을 지키고 입을 별로 열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520쪽) 라고 한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구절이 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특정 성별을 침묵시킨 채 그렇게 인류의 편파적인 지적 역사가 쌓여왔다.


루터의 ‘탁상담화’에 참여한 유일한 여성이 카타리나 폰 보라이다. 루터의 집에는 루터 가족만 살지는 않았다. 루터의 조카를 비롯하여 친구의 자식들, 수많은 제자가 같이 살거나 드나들었다. 매일 루터의 식탁에 앉아 루터의 말을 듣는 그 수많은 제자를 위한 식탁은 누가 차렸을까. 바로 카타리나다. 그는 수십 명의 식구들을 관리하고 돌보았으며 거대한 정원을 가꾸며 약초를 재배하고 돼지와 닭 등 수많은 가축도 길렀다. 양봉도 역시 빼먹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기른 약초로 약을 만들어 남편 루터의 병을 치료하고 돌보기도 했다. 그는 남편이 집필하고 번역하는 책이 출판되어 돈을 벌도록 기획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루터는 학자이며 성직자이지만 돈을 버는 능력이 있지는 않았다.


카타리나는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동을 헸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바로 맥주다. 루터는 특히 맥주가 몸에 좋다고 믿었다고 한다. 끼니때마다 요리를 하고 빵을 굽는 일이 여성의 역할이었듯이 당시 맥주 빚기도 여성의 몫이었다. 일부 여성들은 맥주를 만들어 돈을 벌 수도 있었다. 카타리나 폰 보라가 만든 맥주는 Katharinenbier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집에 모여드는 사람이 많았던 만큼 맥주 맛도 유명했다.


여성의 일이었던 맥주 빚기는 1700년대부터 남성의 일이 되어 갔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금주법과 금주법 폐지를 거치며 여성은 맥주의 세계에서 점차 멀어졌다. 맥주를 만들거나 마시기보다는 맥주를 파는 역할에 제한되어 있었다. 오늘날 직업적으로 맥주 만드는 ‘브루어’는 주로 남성이 맡고 있으며 이 세계에서 여성은 소수가 되었다. 부불노동은 여성의 몫이지만 집 밖에서 직업적으로 전문화되면 남성이 차지하는 분야 중에 바로 이 술 만드는 일도 포함된다.

 

『데스데모나, 당신이 말을 했더라면!』은 문학이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없었던 11명의 여성에게 작가의 상상으로 발언권을 준 책이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다 좋아하진 않는다. 저자의 일부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이 없었던 여성에게 목소리를 부여해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놓도록 상상하는 시도는 충분히 재미있다. 그중 한 명이 카타리나이다. 카타리나는 자신이 빚은 맥주를 마시며 루터의 성경 번역을 지적한다. “왜 늘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거에요?” (중략) “에베소서에는 분명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용이 되어야 한다고 씌어 있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다르게 번역했어요.” (52쪽) 번역에는 번역자의 차별적 시각이 담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카타리나의 목소리를 대신 전한다. “한 번쯤은 이 카타리나에게도 감사해야 하지 않나요? 모두들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매일 신경을 쓰고 있으니 말이에요!”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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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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