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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야 하는데

살과의 전쟁에 내몰리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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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으로 “살 빼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는 행동은 ‘먹기’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일종의 고해성사나 다름없다. (2017.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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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 사빌Jenny Saville, <흔적Trace>, 1993-94년

 

tvN에서 방영하는 <코미디 빅리그>의 ‘사망토론’ 코너에서 “유학 갔다 돌아온 여자친구 전지현, 몸무게가 120kg이 되었다면?”이라는 주제가 등장한 적 있다.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논쟁의 대상이다. 50kg이었던 여자친구가 1년 후 120kg이 되어 돌아왔다면 남자 입장에서 과연 헤어져야 하는가, 계속 만나야 하는가를 놓고 가상토론을 벌이며 방청객에게 질문도 한다. 한 남성 방청객이 계속 만난다고 답하자, “50킬로에서 120킬로가 되었는데도 계속 만난다고?”라며 개그맨은 방청객에게 되묻는다. “자기 꼬라지를 아는 모양이지 뭐”라고 하면서 헤어지지 않는다는 남성을 조롱하기도 한다. 뚱뚱한 여자를 만나는 남자는 ‘꼬라지’가 훌륭하지 못하다는 무시를 당하는 꼴이다. 게다가 정작 그 뚱뚱한 여자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


120kg은 아니더라도 나도 유학 생활 동안 50kg 초반의 몸무게가 10킬로 정도 늘어서 60kg을 넘긴 적이 있다. (60kg이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뚱뚱’까지는 아니지만 더 이상 날씬하지 않은 상태가 되자 한국에 돌아온 나는 “살쪘네”, “프랑스에서 버터를 많이 먹었나 보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등의 소리를 들었다. 내 몸의 현실은 옷을 사러 가면 더욱 명확해졌다. 여유 있게 입던 55사이즈가 불편해져서 66사이즈를 입으려니 고를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다. 고작 66사이즈인데?


2014년 3월 12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는 가수 소녀시대 멤버들이 출연했다. 그중 티파니의 별명과 몸무게가 공개되었다. 핑크색을 좋아하는 티파니가 워낙 잘 먹어서 ‘핑크 돼지’로 불리는데 그는 48kg으로 멤버 중에서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한다. 조금의 군살도 용납하지 않는 여자 아이돌의 세계에서 잘 먹는 48kg의 가수는 ‘돼지’라는 별명이 붙는다. 물론 겨우 48kg의 여성이 듣는 ‘돼지’라는 별명은 그다지 비하의 목적이 담긴 표현은 아니다. 다만 여성의 살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사회인지를 알 수 있다. 여성 연예인, 특히 젊은 여성일수록 다이어트는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요구되는 항목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자기관리’를 놓고 누리꾼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언급해야 할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아무나 자신이 잘 먹는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거나 ‘돼지’라는 별명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실제로 잘 먹고,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무렇지 않게 잘 먹는다는 말을 예전에는 쉽게 했다. 언제부터인가 이에 대해 의구심이 생겼다. ‘잘 먹는 나’ 그러나 ‘뚱뚱하지 않은 나’에 대해 안심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아무리 먹어도 “먹는 거 다 어디로 가고 살이 안 쪄”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내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나는 ‘잘 먹는 나’에 대해 별 의식 없이 살아도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깨작거리지 않고 왕성하게 잘 먹지만 살은 안 찐 여자를 뭔가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여기서 조금만 변태적으로 나아가면 바로 <잘 먹는 소녀들>이 만들어진다. 살이 조금 찌자 달라진 태도를 금새 인식할 수 있었다. 내가 52kg일 때 “먹어도 왜 살이 안 쪄”라는 목소리는 60kg이 되자 “그렇게 먹으니까 살이 찌지” “먹으면서 운동은 안해” “나잇살은 못 속여” 라는 말로 바뀌었다.


사람을 만나면 일단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태도가 일종의 ‘인사’나 다름없다. “살쪘네” “살 빠졌다” 혹은 “나 살쪘지?”라고 먼저 묻기도 한다. 많은 여성이 음식을 앞에 두고 “살 빼야 하는데”라는 말을 습관처럼 뱉는다. 한때는 같이 밥 먹는 사람이 자꾸 이런 소리를 해서 속으로 무척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날씬하면서! 다이어트 이야기는 지겹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먹기와 살 빼기 사이에서 불필요한 죄책감을 강요받는다. 반복적으로 “살 빼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는 행동은 ‘먹기’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일종의 고해성사나 다름없다. 살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부정적 편견을 끌어온다. 게을러, 둔해, 먹는 걸 밝혀, 자기관리 안 해, 연애 안 하나 봐...... 요즘은 ‘쿵쾅쿵쾅’도 있다. 뚱뚱한 페미니스트가 열 받아서 쿵쾅쿵쾅 달려온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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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 사빌Jenny Saville, <계획 Plan>, 1993년

 

키와 무관하게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를 ‘4’로 맞추기 위해 애쓰는 여성들도 많다. 여자의 몸/무게는 나이와 함께 적을수록 높게 평가받는다. 뚱뚱한 여성이 예쁘게 보이더라도, 뭔가 더 예뻐질 수 있는데 불필요한 살이 미모를 가리고 있어 안타깝다는 듯 “살 빠지면 더 예쁘겠네”라고 한다. 마치 나이 든 여성에게 “젊었을 때 미인이었겠다”라고 하듯이. ‘젊고 날씬함’의 범주를 벗어나면 ‘아쉬움’이 있는 몸이 된다. 뚱뚱하고 늙은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 날씬함은 여성의 사명, 365일 살과의 전쟁에 내몰리는 여성이 한둘이 아니며 다이어트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많지 않다.


몸을 옥죄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실제보다 훨씬 더 뚱뚱하게 여긴다. ‘날씬하지 않으면’ 곧장 ‘뚱뚱한’ 모습으로 직행하는 몸에 대한 상상은 지극히 사회적인 현상이다. 이 사회적 살은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사라질 줄 모른다. 바디 쉐이밍Body shaming, 곧 여성이 자신의 몸에 수치심을 갖게 하여 자신의 몸을 끝없이 부정하고 고쳐야 할 몸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잘못된 몸. 머리가 크다, 이마가 좁다, 사각턱이다, 매부리코다, 눈이 작다, 눈 사이가 멀다, 코가 낮다, 입이 너무 크다, 광대뼈가 너무 튀어나왔다, 피부가 안좋다, 눈이 찢어졌다, 볼살이 너무 붙었다, 이중턱이다.... 오! 아직 목 아래로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목 위에만 해도 지적질할 거리가 끝이 없다.


이렇게 여성의 몸에 들이대는 숨 막히는 기준 속에서 자신이 뭔가 고쳐야 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이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먹기’가 된다. 제 몸을 숫자로 보듯이 음식도 칼로리를 기준으로 숫자로 환원한다. 그 숫자들이 모두 제 몸에 추가된다고 생각하니 먹는 게 부담을 주지만 또한 식욕을 참는 일도 스트레스를 추가한다. 거식과 폭식을 오가며 죄책감만 쌓인다. 먹는 일이 힘들어지니 인간관계도 위축된다.


남성의 섭식장애는 노화로 인해 70대 이후 늘어난다면, 여성은 오히려 젊은 시절에 집중되어 있다. 20대 여성의 섭식장애는 또래 남성보다 9배 높다. 한때 먹으면 토하기를 반복하던 친구는 어느 날 크로아상 12개를 먹었다며 눈을 내리깔고 어두컴컴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는 또 죄책감에 시달렸다. 남은 크로아상은 다 버렸다. 한번은 밤중에 누텔라를 통째 들고 막 퍼먹었다고 한다. 또 죄책감이 찾아온다. 남은 누텔라는 다 버렸다. 그는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먹는 몸에 벌주기를 반복했다. 자존감을 가지라고? 온 세상이 여성의 몸 구석구석을 물어뜯으며 문제 덩어리로 만들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모른 척하고 개인에게 자존감을 가지라는 말은 기만이다.


여성의 섭식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중에는 ‘불임’에 대한 걱정도 크다. 이 또한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몸에 가둬놓고 걱정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무월경, 불임, 성격이 나빠진다, 심하면 죽는다 등 섭식장애의 결과를 강조할 뿐 왜 유독 젊은 여성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그 밑바닥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청소년과 20대 여성뿐이 아니라 이제는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섭식장애가 40대 여성에게서도 늘어나고 있다. 삶이 길어졌다는 것은 여성에게 다이어트의 시간도 함께 늘려버린 셈이다.


누군가는 또 밥상 앞에서 탄식한다. “살 빼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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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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