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때까지 먹어야 제대로 된 여행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
스페인이란 나라는 수호성인 산티아고(야고보)가 지키고 수많은 골목은 바르가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는 풍경입니다. (2017.11.28.)
당신이 떠올리는 스페인 요리
아참! 갈리시아 Galicia 지역의 요리 ‘뿔뽀(Pulpo, 문어)’도 빠질 수 없죠.
스페인을 대표하는 요리는 무엇일까요? 넓적한 팬에 쌀과 해산물 혹은 고기를 넣고 끓이는 빠에야 Paella? 도토리를 먹고 자란 흑돼지의 뒷다리를 염장한 하몽 Jamon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테죠. 스페인에 다녀갔다면 감자튀김 위에 매콤한 소스를 뿌려 먹는 빠따따 브라바스 Patatas bravas나 생새우를 마늘과 함께 올리브유로 익혀 먹는 감바스 알 아히요 Gambas al ajillo의 맛과 향이 먼저 떠오를까요?
여름에 세비야를 비롯해 남부 스페인에 머물렀다면 토마토 수프를 차갑게 해서 마시는 가스파초 Gazpacho 나 살모레호 Salmorejo의 시원한 맛이 생각나는 분도 있을 거예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먹는 음식이라면 돈키호테의 고장, 라만차 요리 삐스또 Pisto를 빼놓으면 안 되죠. 음식 타령을 늘어놓고 있자면 어떤 분은 ‘무슨 소리야. 그런 음식은 여행자들이나 먹는 거고 진짜 스페인을 봤다면 숯불에 구운 아사도 Asado 야’ 하거나 ‘우리가 된장찌개 먹듯이 이들도 흔히 먹지만 각자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토르티야 Tortilla가 진짜 스페인 음식이지’ 하는 분도 계시겠네요.
그래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많이 마주하는 음식은 아마도 ‘바르’에서 먹는 타파스가 아닐까 해요. 참, 바 Bar를 스페인어로 읽으면 바르가 돼요. 표기법은 같으나 영어와 스페인어의 발음 사이에서 생기는 차이지요. 스페인 어디에서나 바르를 찾을 수 있어요. 골목을 걷다 보면 ‘이렇게 외져서 장사가 되나?’ 싶은 곳에도 있는데요. 스페인이란 나라는 수호성인 산티아고(야고보)가 지키고 수많은 골목은 바르가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는 풍경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바르가 없으면 못 사는 것처럼 보여요. 아침에 눈을 떠 커피와 보카디요로 아침 식사를 하는 곳도 바르이고, 수다 상대를 찾기 위해서도 바르에 가요. 주말에는 꽤 근사한 식사를 내놓는 레스토랑으로 변신하니 친구들과 주말 약속 장소도 여지없이 바르죠. 그야말로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르에서 지내지요.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의 삶 가운데 바르가 있게 된 것인지, 바르가 많아서 스페인 사람들 인생에 한 부분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어요.
그 여자와 저는 여행에서 현지인들의 문화를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아침에 빵집에 가서 방금 구워낸 바게트 하나 고르고 까페 솔로(에스프레소)와 보카디요(스페인식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하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추로스 가게에 들려 코코아 한 잔에 츄로스 한 접시로 디저트를 대신하기도 해요. 도시를 거닐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추천받은 식당에서 메뉴 델 디아를 맛보기도 합니다. 간식으로 아침에 산 빵을 반으로 쭉 갈라 하몽 또는 치즈를 담뿍 올리면 이만한 간식이 없어요. 시장에 찾아가 절인 올리브 중 아삭한 녀석을 한주먹 사서 김치 마냥 곁들이기도 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면 바르(Bar의 스페인어 발음)에 들어가 세르베싸(맥주의 스페인어 발음) 한 잔으로 하루를 마칠 차비를 하지요. 동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식당 한 켠에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처음에는 쭈뼛쭈뼛했지만 익숙해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고요.
전문가가 추천하는 미식의 도시
자, 보고만 있어도 군침이 돌죠?
화장실도 이용할 겸 바르에 들리면 어김없이 바 위에 올려져 있는 음식이 바로 타파스예요. 타파스는 스페인 남부에서 시작된 (요리라고 하기보단) 음식인데요. 그 기원이 참 다양해요.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남미에서 넘어온 갖가지 재료로 요리된 음식을 한 입씩 맛보려고 조금씩 덜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잔 속으로 들어가는 파리를 막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라는 설도 있어요. 안달루시아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파리가 정말 많거든요. 길을 걷는 중에도 파리가 한꺼번에 열 마리씩 몸에 달라붙는 정도니까요. 파리 때문에 빵 위에 조리된 음식을 조금씩 올려놓고 뚜껑을 덮었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남부에서 빵 위에 올려놓고 먹는 타파스를 스페인 북쪽에서는 핀쵸스 Pinchos라고 불러요. 핀쵸 Pincho는 번역하자면 ‘꼬챙이’ 혹은 ‘꼬치구이’ 쯤이 되는데요. 말 그대로 이쑤시개로 꿰어 올려둔 음식들을 핀쵸스라고 부르지요. 꼬챙이가 없이 빵 조각 위에 올린 타파스도 북쪽에서는 핀쵸라고 해요. 타파스든 핀쵸든 여행자에게는 이것저것 많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반가운 방법이죠. 바에 살짝 기대어 서서 한두 개 맛보고 동네를 둘러보다가 또 배가 고파지면 다른 바르에 들어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간단한 음식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곳이 스페인 북부, 바스크 Basque 지역의 산 세바스티안 San Sebastian입니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케이터링 업체가 재미있는 조사를 했는데요. 전문가 의견, 인구당 레스토랑 수, 패스트푸드점 비율, 레스토랑의 다양성, 파인 다이닝, 스트리트 푸드 등 총 15개 항목으로 평가해 여행자가 방문해야 할 전 세계 미식 도시 100곳을 선정한 거죠. 그렇게 해서 뽑힌 '2017/2018 최고의 미식 여행지(2017/2018 Best Food Destinations)' 1위에 오른 도시가 바로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입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슐렝(Michelin, 미쉐린)이 타이어 닳도록 여행 많이 다니라고 맛집 가이드북을 만든 것이 ‘미슐렝 가이드’인데요. 맛으로의 음식을 넘어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요리를 손님에게 내놓는 가게 만이 그 가이드북의 별을 받을 수 있다죠. 구심지에 위치한 핀쵸바 거리에 가면 그 받기 힘들다는 미슐렝의 별을 단 식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간단히 먹고 돌아설 수 있는 음식이라 여겼던 핀쵸를 이용해 분자요리의 성지가 된 곳이 바로 산 세바스티안입니다. 물론 별을 받은 식당은 예약 없이 들어가기 힘들지만 구심지 안의 핀쵸바들 중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많아요. 물론 그들이 내놓는 요리도 훌륭합니다. 맛은 물론이고, 눈도 즐거운 요리를 만날 수 있지요.
‘먹고 또 먹고 지칠 때까지 먹어야 제대로 된 스페인 여행이 아니겠냐’고 자문해 보지만 이렇게 먹다 보니 스페인에 와서 축 쳐진 제 뱃살에게 미안해지는 건 어찌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