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고 싶은 여행을 하면 되는데
방콕, 카오산 로드
한 번은 방콕의 유명한 해산물 레스토랑에 갔는데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다른 한국인을 신경 쓰느라 편하게 음식을 먹지 못했다. 마치 서울의 그럴싸하게 차려진 태국 레스토랑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2017.09.19)
그 여자는 왜 카오산 로드로 향했을까?
카오산 로드를 벗어날 수 있나요?
“누가 태국에 가자고 했는지 모르겠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왔던 <비치, The Beach>란 영화를 보고 그 배경지인 피피섬에 가보고 싶었는데…… 왜 카오산 로드 Khaosan Road로 향했을까?”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던 그 여자는 15년 전, 처음 떠났던 해외여행을 추억하며 말했다. 주변에 방콕을 다녀온 이들은 모두 카오산 로드가 ‘여행자의 성지’인 것처럼 떠받들었고 그녀도 다를 바 없었다.
“아무튼 그때만 해도 태국 여행의 시작은 방콕이었다고. 여행자라면 무조건 카오산 로드에 가야 했어. 우리도 다른 여행자들처럼 배낭을 메고 그 길 위에서 숙소를 잡았는데…. 좋았어.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거리, 카오산 로드에 우리가 찾던 태국을 모두 만날 수 있었거든. 숙소 앞에만 나와도 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바로 옆 건물에 들어가면 천천히 돌아가는 실링팬 아래에서 저렴한 가격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해외여행이 처음인 우리를 들뜨게 했거든. 낯선 태국어를 몰라도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고, 그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친절했어. 여행자에게 이만한 곳이 없단 생각이 들더라. 나중에서야 그게 다 우리 지갑을 노린 친절이란 것을 알았지만 뭐, 안전하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으니 돈 좀 더 내면 어때? 다음 여행도 당연한 듯 여행자 거리에 숙소를 잡게 되더라고.”
그 여자는 잠깐 말을 멈추고 긴 한숨을 쉬었다. 마치 15년 전 카오산 로드에서 숙소를 찾던 자신과 그곳과 한참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해 머무는 자신 사이에 무엇이 변했는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오래전 자신이 미련하게 붙잡고 있던 욕심이 무엇인지 생각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는 여행자 거리에 가야 여행이라고 생각했어. 현지인 틈에 머무는 여행을 왜 몰랐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매번 카오산 로드로 향했을까? 내 맘 한 켠에는 그 길을 벗어나 현지인들이 사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싶었는데 매번 그게 쉽지 않더라. 누군가 나에게 ‘방콕은 어땠어요?’라고 물을 때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카오산 로드가 마치 방콕의 모든 것 같아서 그 거리에 가지 않으면 형편없는 여행을 하고 왔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까 두려웠거든. 또 한편으로는 ‘거기 안 갔는데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방콕의 이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나도 그곳에 다녀온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을까? 한국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 해외여행을 떠났던 건데 그곳에서 마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나 봐.”
큰돈 써서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갔는데 남들이 찾아다니는 것 나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닐까? 그러나 또 한 편에서는 자신의 여행이 남들과 조금은 다른 특별한 여행이길 바라는 것도 솔직한 심정일 게다. 여행자 거리에 머문다고 현지의 삶을 살피지 못하는 여행도 아니고, 현지인 동네에서 집을 구했다고 해도 그들과 친밀해지는 경험을 하고 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하고 싶은 여행을 하면 되는데….
관광지를 안 가도 되는 여행
이 곳은 일상인가요? 관광지 인가요?
며칠 전, 블로그에 어떤 글 하나를 올렸다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포털과 SNS를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지더니 삼 일 만에 40만 명을 찍었다. 쓸 때만 해도 논란이 될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덧글에는 ‘여행 초보나 할 법한 생각이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다’ 등의 내용이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공감한다는 의견이 나머지 반이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는 글이었고 제목이 다소 자극적이었음을 반성한다. 그렇다고 일 년에 절반을 여행하며 사는 사람에게 ‘여행 초보’라는 단어를 붙인 건 쪼끔 자존심이 상한다.
독일 말밖에 들리지 않는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 그들은 정작 어떤 기분일는지, 우리처럼 외국에서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기 싫을까가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는 싫어요>라는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시간과 돈을 들여 낯선 풍경과 언어로 여행의 감각을 깨우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빈번할 정도로 말끝마다 ‘한국인이 없어서 좋았던 여행지’ 임을 강조한다. 타인의 행동, 생김새, 인적 사항 등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은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해외에 나가는 이때뿐이라도 자국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길 갈망한다.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에선 ‘거기까지 가서 그걸 안 봤다고?’ 혹은 ‘00을 안 먹어 봤다고?’하면서 자신의 여행은 특별하다는 식으로 타인의 여행을 훈수하고 평가한다. 한국인들이 없는 곳에 가 봤다는 경험이 스스로 우쭐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 경험이 많은 이들일수록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 가기 어렵고, 한국인의 발길이 적은 장소를 말한다.
한 달씩 살아보는 여행을 하기 전, 방콕을 일곱 차례나 방문했다. 일곱 번 모두를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에 숙소를 잡고 여행 책자에 소개된 관광명소를 따라 여행을 했다. 나는 여행에서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쪼개가며 관광지와 맛집을 찾아다녔다. 한 번은 방콕의 유명한 해산물 레스토랑에 갔는데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다른 한국인을 신경 쓰느라 편하게 음식을 먹지 못했다. 마치 서울의 그럴싸하게 차려진 태국 레스토랑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현지인이 북적거리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최고의 한 끼를 맛보며 영혼까지 탈탈 털렸던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리라. 여행 책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국의 블로그를 뒤지지 않고, 모험심을 풀가동시켜 들어갔던 로컬 100%의 현지 식당 말이다. 쭈뼛거리며 들어섰던 식당에서 인생 최고의 태국 요리를 맛보았다.
모험하지 않고서는 여행의 만족도는 고만고만하다. 카오산 로드의 길거리 음식, 밤거리, 싸고 허름한 숙소에서 만난 경험이 방콕의 전부가 된다. 여행을 처음 떠났던 5년 전과 달리, 이제는 ‘한 달 살기’, ‘살아보는 여행’이 열풍이다. 낯설었던 여행법이 유행이 되고 각자가 자신들만의 여행 방식을 고안해 낸다. 바쁘게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며 현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여행이 되었다.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바꿔도 전혀 다른 매력이 찾아오는 걸 나는 일곱 번의 ‘카오산 로드’라는 안온한 장소를 택한 후에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