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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성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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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를 ‘정육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조명 색깔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이 부위별로 지적당하고 평가받듯이 육식은 동물을 부위별로 바라보게 한다. 닭가슴과 닭다리 사이에서 인간의 상상은 육질과 맛에 머문다. (2017.10.17)

 

그림1chickensoup.jpg

데이나 일라인Dana Ellyn, <치킨 수프>. 물감과 붓 등 미술재료에도 동물로 만들지 않은 ‘비건’이 있다. 다나 일라인은 비건 작가로 작품의 재료와 소재 모두에 이러한 비건주의를 적용한다.

 

사람들을 초대해놓고 수육을 삶으려다 퍼뜩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초대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채식주의자다. 혹시 유제품과 계란은 먹는지 물어보는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는 ‘강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어서 해산물도 먹는다고 했다. 딱 한번 봤는데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는지 거듭 고마워 했다. 고마운 쪽은 나였다. 해물을 먹을 수 있다면 고기를 먹지 않아도 초대 음식을 만드는데 별 문제가 없다. 혹시 해물도 유제품도 먹지 않으면 나의 변변치 않은 솜씨로 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가을이라 마트에는 늙은 호박이 굴러다닌다. 나는 해물호박찜을 하기로 했다. 커다란 호박을 사서 오븐에 살짝 익힌 뒤 위에 구멍을 내고 속을 파내었다.


5년간 채식을 해온 R에게 “나는 계속할 자신이 없어서......”라고 했더니,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 못해요. 난 그냥 오늘 안 먹었을 뿐이에요. 그게 어느새 5년이 지났고요.”라고 했다. 이 말에 조금 용기를 얻었다. R의 경우는 정치적인 동기에서 채식을 시작했다. 공장제 축산에 대한 거부를 위해 자신이 택한 작은 실천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작은’ 실천이 아니다. 채식의 동기는 다양하다. 나의 또 다른 친구는 어릴 때 어른이 수저를 들기 전에 먼저 고기 반찬에 손을 댔다가 혼난 기억이 있다. 그 후로 고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적 동기가 아니라 상처받은 후유증으로 고기를 거부한 경우다. 25년 정도 채식을 하던 그는 아이 출산 후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는 사람이 되었다. 주로 남을 먹이는 역할을 맡은 여성들이 채식을 할 때 겪는 문제 중 하나다.


전에는 닭요리를 할 때 우유에 살코기를 재워두곤 했다. 지금은 더 이상 우유에 닭을 재우진 않는다. 닭살을 소젖에 재울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더 맛있게 먹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나는 딱히 채식을 실천하거나 이에 대해 강한 의견을 내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실천을 못하니 양심상 의견을 잘 못 낸다. 나 혼자 먹을 때는 고기를 잘 안 먹지만 다른 사람과 식사할 때는 다 먹는다. 혐오식품이거나, 너무 어린 동물, 살아있는 회, (내가 아는 범위에서)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면 적당히 먹고 즐긴다. 게다가 종종 나의 호기심은 윤리를 무찌른다. 얼마 전에는 루이지애나 주에 갔더니 악어 꼬리 고기를 먹을 기회가 있었고, 나는 그 기회를 누렸다. 한 번만 먹지 뭐, 이렇게.


붉은 고기를 딱히 즐기지 않다 보니 ‘어차피 나는 잘 안 먹는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육식에 대해 조금 안일한 태도가 있는 편이다. 비건 식사를 한 적도 있는데 조금 부지런하기만 하면 입맛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붉은 고기를 덜 좋아할까. 혼자 생각해 본 적 있다. 맛 때문은 아니다. 내가 립과 돼지갈비를 좋아하고, 프랑스에서 이런 저런 기회로 맛본 여러 ‘부위’와 접촉했을 때 나는 분명히 즐겼다. 동물을 좋아해도 먹을 때는 그들을 잊고 하나의 ‘고기’로 대하며 먹는다. 생각해 보니, 사람에서 그 형체가 멀어질수록 내가 덜 불편하게 먹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육고기보다는 흰살인 가금류, 가금류보다는 생선을 찾는다. 반면 육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토막 나지 않은 채 올라온 생선이나 멸치를 싫어한다. 몸 전체가 다 보여서 못 먹겠단다. 고기가 되기 전, 본래의 몸뚱이를 보면 먹기 괴롭다고 했다. 어쨌든 공통점은 동물을 먹을 때 ‘인간과 먼 고기’로 대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림2gentrifiers.jpg

               데이나 일라인, <아메리칸 젠트리파이어American Gentrifiers>

 

페미니스트의 채식, 생태, 동물권 등에 대한 관심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과 자연, 여성과 동물이 ‘비인간’으로 지배받고 착취당하는 방식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육식의 성정치』는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방식”을 다루는 책이다. 얼마 전 한 남성이 여자친구의 반려견을 우산으로 때려 죽였다는 사건을 읽으며 이 책이 떠올랐다. 물화 된 생명은 쉽게 분풀이 대상이 되고 학대당한다. 사창가를 ‘정육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조명 색깔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이 부위별로 지적당하고 평가받듯이 육식은 동물을 부위별로 바라보게 한다. 닭가슴과 닭다리 사이에서 인간의 상상은 육질과 맛에 머문다.


“노동하는 남자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고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통념이다. 이것과 비슷한 또 다른 통념은 힘 센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것에 비례해 강해질 수 있다는 미신이다. 가부장제 문화의 신화에는 고기가 남자의 힘을 세게 하는 작용을 한다는, 그리고 남성적인 특질들은 이런 남자다운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형성된다는 믿음이 숨겨져 있다. (중략) 남자는 강하고, 남자는 강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남자에게는 고기가 필요하다는 미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육식의 성정치』, 66쪽

 

작년 12월 10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던 날과 지난 3월 헌재에서 탄핵을 결정되던 날을 ‘닭 잡는 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잡은 것일까. 한동안 ‘초식녀’니 ‘육식남’이니 하는 말이 돌아다닌 적이 있다. 이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남성을 생태계의 상부 구조에 있는 육식 동물에 비유하면서 단순하게는 밥상의 고기를 먹는 순서부터 넓게는 세계의 지배자까지, 남성에게 자연스럽게 권력을 부여한다. 고기 밥상이란 남성에게 여성이 바치는 일종의 지배자의 밥상이다. ‘풀떼기’는 여성의 성의 없는 밥상을 종종 상징한다. 반찬이 이게 뭐야, 집에서 뭐하는 거야! 닭가슴살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요즘에는 그 양상이 조금 변했으나 아직도 어른들 사이에는 닭다리를 먹는 서열이 있다.

 

작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이후로는 언급하기 부담스러워진 소설이지만 이 소설만큼 육식의 성정치를 잘 녹여낸 작품을 찾기 어렵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남편이 실망해마지 않던 그 밥상, 상추에 된장을 싸서 먹고 소고기도 조갯살도 넣지 않은 말간 미역국은 내가 혼자 먹을 때 자주 먹는 식단이다. 영혜의 채식은 단지 그의 식단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의 변화로 향한다. 영혜는 채식을 하면서 남편과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고 남편이 출근할 때 돕지도 않는다. 고기를 ‘먹지 않음’은 아버지에 대한 대항으로도 나간다. 강제로 영혜에게 고기를 쑤셔 넣는 아버지의 폭력성. 영혜가 브래지어를 싫어했듯이 그의 ‘먹지 않음’은 이러한 폭력과 강제에 대한 거부 행위이다.


영혜가 평범하게 살아올 때는 남편이 밥과 몸으로 영혜를 평범하게 착취했다면, 채식주의자가 되면서는 형부가 예술적 성취를 위해 영혜를 식물화한다. 마지막에 영혜는 가장 극단의 저항 방식을 취한다.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존재가 된다. 모든 폭력에 대한 거부. 한편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나무가 되는 선택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다시 여성은 자연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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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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