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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친구들, 두려움과 용기

아이의 벌레에 대한 태도에서 발견한 긍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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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이 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의하는 사이 아이들은 어디서 주워 왔는지 긴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그 반지하 공간 곳곳을 탐험하고 다녔다.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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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올 여름, 아이와 함께 오래된 주택의 반지하 작업실 공간을 둘러보러 간 적이 있다. 도배와 장판을 깨끗이 했지만 반지하인데다가 습한 여름이라 집 안 곳곳에 거미 사체들이 보였다. 6살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서 벌레를 엄청나게 무서워하는 아이가 기겁을 하며 나에게 매달렸다. 처음 10분 정도는 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아이를 안은 채 그 공간을 둘러보았다.

 

나야말로 세상에서 벌레 빼고는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인데, 애써 용기를 내어, “거미가 뭐가 어때서? 거미 엄청나게 예쁘게 생겼잖아. 다리도 길고.”라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해보았다. 아이가 무서워하니 엄마인 나라도 씩씩해지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연기력이 부족했는지 아이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아이는 급기야 거의 눈물을 흘리며 “아니야, 엄마, 벌레 무서워! 나 땅에 내려놓지 마~!!” 애원하기 시작했다. 결국 거미의 사체가 있는 곳마다 휴지를 살포시 덮어놓고 나서야 아이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3살, 4살까지는 아이가 벌레를 이렇게까지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아는 게 많아지다 보니 이런 구별을 체화하게 된 것이다.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구분하고 또 (적어도 사회적으로 그렇다고 통용되는 판단의 기준에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와 아닌 존재도 구분하게 되었다. 예쁜 것과 예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착한 것과 나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객관적인 구분을 빠른 속도로 습득하고 있다.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의 개념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거칠 수밖에 없는 필수적인 단계이므로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번듯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해나가는 과정이 부모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는데 잠시 후 아이 친구들이 엄마들과 함께 도착했다. 아이 친구들은 모두 6살 동갑내기 남자아이들이었는데, 친구들이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며 잘난 척을 시작했다. “야, 여기 진짜 멋지지! 여기 벌레 진짜 많다! 여기 ‘벌레 공장’이야, ‘벌레 공장’!!!” 평소에도 어이없는 자랑을 많이 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이번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야, 좀 전까지 니가 엄마한테 매달려서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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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어른들이 이 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의하는 사이 아이들은 어디서 주워왔는지 긴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그 반지하 공간 곳곳을 탐험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그 나뭇가지로 휴지를 살짝 들어 올려 거미의 사체를 보여주자, 몰려 있던 아이들이 꺄르르 소리를 지르며 흩어진다. 그 순간 목격한 아이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에게 매달렸을 때 아이의 얼굴이 두려움과 회피와 의존으로 물들어 있었다면, 그 순간 아이의 얼굴은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함께 탐험을 하는 친구들과의 진한 동료애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한테는 아직도 아기처럼 매달리기만 해서 몰랐는데,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씩씩한 언니구나. 벌써 이렇게 커서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서운 게 없는 아이가 되었구나. 저 아이는 앞으로 친구들과, 동료들과 자기 길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겠구나. 저 아이는 이제 엄마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겠구나. 나는 뒤에서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밖에 할 게 없겠구나.

 

이번엔 서운하지 않았다. 서운하기는커녕 그 순간 나는 또 아이에게 반했다.(6년을 그렇게 반했는데 아직도 반할 구석이 남아 있다니.) 모험심과 용기와 설렘과 신남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표정은 내가 살면서 보아온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이다. 호기심으로 빛나는 그 눈이, 온갖 위험으로 둘러싸인 세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탐험해가도록 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 되리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아이의 벌레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그 후로도 많이 생각했다. 딸아이는 아기 때 벌레의 이질적인 형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것을 매혹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질적인 것에 대한 아이의 그 강렬한 감정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쪽에 가까웠다. 벌레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요소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다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지식과 상식이 쌓이면서 아이는 벌레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내장하게 되었다. 아마 엄마인 내가 벌레만 보면 기겁하는 모습(씩씩한 척하지만 들킬 수밖에 없는 두려움)을 통해 배운 바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친구들과 있을 때는 또 두려움과 혐오라는 사회적인 경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벌레를 보고 좋아하는 것은 똥이나 방구를 좋아하는 것과도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이질적인 것, 더러운 것(사회적으로 더럽다고 여겨지는 것), 생리적인 것, 동물적인 것, 운하임리히, 인간의 정교한 사회 시스템이 삶의 뒷면, 사적인 영역에 깊이 묻어두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아이들의 양가적인 태도는 신선하고 또 건강해 보였다. 그런 점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사회적인 금기, 사회적인 경계에 대한 감각이 자라나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건강한 양가적 태도는 앞으로 수없이 위협을 당하고 또 수많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그 감각을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금기와 경계를 건강하게 넘나들던 그 성장의 순간들을 늘 기억하기를.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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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희진(인문서 편집자)

6세 여아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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