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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의 문을 열면 아이가 하나 있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오는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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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인 우리가 새로운 문제 상황에 봉착하거나 새로운 과제를 받게 되었을 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이 도움이 된다. (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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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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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사이에 상황이 꽤 달라진 것도 같지만, 한국 사회는 아이들이 눈에 많이 ‘보이는’ 사회는 아니다. 저출산 사회라 그런 것인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8년쯤 전에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서 몇 달 동안 살 기회가 있었는데, 엇비슷한 대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에서도 선명하게 지각된 차이 중 하나는 서울과 달리 공적 공간에서 아이들과 유모차가 정말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거꾸로 오랫동안 다른 사회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지인들이 한결같이 “한국에는 길거리에 휠체어와 유모차가 왜 이렇게 없는가?” 의아해했던 것도 기억한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노키즈존’에 대해 이런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사회는 어른이건 아이건 아직도 서로 ‘공존’할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사회인 듯하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나는 소비자로서 원론적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는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업장을 선호하기는 한다.)

 

자꾸 여담이 길어져 죄송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작년 가을부터 올해 초까지 아기들, 어린아이들과 함께 광장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을 몹시 행복하게 여기는 쪽이다. 광장에서 더 ‘많은’ 더 ‘큰’ 더 ‘대단한’ 무엇을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는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이런 공존의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 공개된, 공식적인, 공적인, 공공의 장소에서 아기들, 아이들을 비롯한 더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잘 보이기를 바란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금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내긴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나는 아이를 낯선 종으로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딸 하나를 키우는 입장에서 또 부언하자면, 나 역시 남자아이들이 낯선 종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래서 아쉬울 때도 있다. 아들을 낳아서 키워봤더라면 낯선 종 하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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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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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어떤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이 그렇게 낯선 종은 아님을 환기시켜보고 싶다. 아니 어른들에게 낯설게 느껴지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임을 환기시켜보고자 한다. 실제 아이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은 어른들에게도 ‘아기들, 아이들’의 존재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아주 거칠게 이야기하면, 가령 그런 어른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자라지 않은 채로 있는 아이가 한 명 정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면 어떤 책에서, 드라마에서 본 아이의 모습과 아주 높은 강도와 밀도로 만나는 순간들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의 얼굴’을 할 수밖에 없는, ‘아이의 얼굴’로만 드러날 수 있는 타자의 모습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의 장남 아키라 후쿠시마(야기라 유야)의 표정이다.(사실 아키라뿐 아니라 막내동생 쿄코 후쿠시마[모모코 시미즈]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의 얼굴이 모두 매우 강력하다.) 그리고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쯤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오래전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 어린 박해영(김현빈)을 몇 시간 동안 계속 지켜보고 있는 이재한(조진웅)의 모습이었다.(이렇게 오래된 예를 들 수밖에 없는 것은, 본방사수는커녕 종영 후 시간이 흘러 다시보기가 무료로 풀린 다음에야 몇 개의 에피소드를 겨우 볼 수 있는 것이 워킹맘의 흔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또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A.I>의 데이비드(헤일리 조엘 오스먼트)가 보여준 표정도 있다. 할리우드의 아이답게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언어화하는 편에 속하긴 하지만, 어쨌든 같은 배우의 전작인 <식스센스> 콜 시어의 표정과 연결해서 기억해보자면 역시 이런 아이의 전범이기도 하다.

 

어쨌든 모든 어른들에게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응원하고 싶은, 지켜보게 되는, 아이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 오늘의 가설이다. 그 얼굴은 어린 시절 내가 친구들의 압박에 굴복하고 왕따에 동참했던 어떤 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길 가다 목격하거나 눈이 마주친 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아는 집 아이의 표정일 수도 있다. 어른들도 풀기 어려운 어떤 과제를 혼자 마주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스스로의 제한된 능력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상황을 언어들에 기대지 않으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들이 어떤 것이고 말해져야 하는 말들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온전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얼굴이다. 내가 도와줄 수는 없지만 (혹은 도와주지 못했지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 그런 모습이다.

어른인 우리가 새로운 문제 상황에 봉착하거나 새로운 과제를 받게 되었을 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이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언어들, 이미 주어진 감정들, 이미 주어진 생각들에 기대지 않고, 그런 것 없이(정확히 말하면 없다기보다 부족한 상태에서) 상황을 견뎌나가는 능력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지나갔을 때 우리는 거기서 우리 자신에게 더 특화된, 더 고유하고 정확한 언어들, 감정들, 생각들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얼굴, 이런 표정을 기억하는 것은 양육을 하는 데 있어서도 유익하다. 내 아이가 그런 얼굴, 그럼 표정을 지을 때 조금 더 잘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독한 성장의 표정을 포착하는 것은 아이를 결국은 나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나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는 인간, 타자로서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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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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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의 문을 열면 아이가 하나 있다. 5년쯤 전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것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였다. 그 선배는 “아직도 그 방의 문을 열면 거기서 일곱 살짜리 아이가 울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아이는 바로 선배의 아이고, 그 아이를 울린 것은 바로 아이를 혼낸 엄마인 그 선배다. 선배의 아이를 본 일이 한두 번밖에 없는데도, 그 방 안에서 울고 있던 아이의 얼굴은 나에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내 마음속에도 그런 아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장롱 속에도 숨고 침대 밑에도 숨고, 부엌에도 숨고, 대문 위에도 숨고, 여기저기 늘 숨어 있었는데, 나는 그 아이가 어디에 숨어 있건 별로 관심이 없었고, 한 번도 제대로 찾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이는 발견되지 않은 채 주로 계속 그렇게 혼자 숨어 있었고 나는 아이가 있는 줄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어쩌다가 눈에 띈 아이는 파란색 반바지에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바가지 머리를 하고 햇빛 때문에 잔뜩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숨바꼭질뿐 아니라 소꿉놀이나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곰곰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아마 아이는 그렇게 곰곰이 관찰하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한 방법들을 하나둘 수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 어떤 도구들이 진짜였고, 어떤 도구들이 가짜였는지, 한번 정산해볼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딸이 그 아이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목격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나와 함께 오래된 사진첩을 보던 딸이 그 아이를 찾아내서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말해주고 너와 단짝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어른이나 책이 이야기해주는 것보다도 명료하고 힘이 있다. 나는 그제서야 아이가 자라지 않은 채 여기저기 숨바꼭질을 하듯이 숨었다 나왔다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타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타자의 모습을 잘 보고, 들리지 않는 타자의 목소리를 잘 들으며, 명확하지 않은 타자의 욕구를 알고, 타자를 우리와 연결시켜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안에 숨어 있는 타자의 경험을 끌어내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가 타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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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희진(인문서 편집자)

6세 여아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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