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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서점원

어느 날, 한 출판사 대표님에게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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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 막연히 책과 관련된 일을 할 거라 생각하면서 편집자나 도서관 사서를 떠올렸지 서점원을 떠올려 본 적은 없다. 그런 내가 서점원이 되다니!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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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을 집중해서 바라보다 고개를 들면 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의 빛 속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인데도 그 순간이 벅차게 행복해서 이렇게 늘 사진으로 남겨두곤 했다. 서점원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

 

출판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 채용공고를 봤다. 이 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하면서 책 만드는 과정을 익혔으니 이번에는 책이 독자의 손으로 전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서점 일이 나와 맞지 않아 다시 편집자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매일 독자를 만나며 책을 판매해 본 경험은 나에게 좋은 재산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땡스북스의 첫 공채 직원이 되었다.

 

땡스북스는 디자이너가 만든 서점으로, 운영 방식이 일반 서점과 많이 달랐다. 책을 입고 할 때 ‘겉(디자인)과 속(내용)이 같은 책’이라는 뚜렷한 기준이 있고, 직거래하는 출판사와 한 달에 한 번씩 기획 전시를 할 때는 해당 전시를 담당하는 직원이 직접 포스터를 만들었다. 전시 내용이나 신간 소개, 이벤트 소식을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업데이트 할 때도 직원들이 사진을 찍고 편집해서 올리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디자인 안목이 뛰어났고 관련 프로그램을 능숙히 다룰 줄 알았다. 내게 없는 디자인과 브랜딩 감각을 땡스북스에서 키워 보자는 기대를 갖고 입사했지만 동시에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느꼈다. 디자인에서 내 역할을 다 할 수 없다면,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책에 대한 애정이므로 책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루는 일에 좀 더 전문성을 갖춰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내가 찾은 건 역시 책이었다.

 

일본 서점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서점은 죽지 않는다』는 나의 서점 교과서였다. 책은 어디서 사든지 똑같은 책이다. 이 서점에서 산다고 삼십 쪽이 더 있다든가, 저 서점에서 산다고 표지 디자인이 다르거나 하는 일이 없다. 다르게 말하면 책은 어느 서점에서나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에서 사면 할인도 되고 적립도 되는 데다 하루만에 배송까지 해준다. 그런데도 왜 오프라인 서점이 존재해야 하는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일본 서점인은 대답 대신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오프라인 서점에는 온라인 서점의 총알 배송과 할인 혜택 같은 편리성과 효율성은 없지만 서점원의 책을 다루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나에게 또박또박 알려 주었다.

 

“그 책은 왜 여기에 두면 안 되는가, 왜 저 책이 아니고 이 책을 여기에 두어야 하는지 표현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저에게 중요했어요.” (『서점은 죽지 않는다』), 31쪽)

 

“직접 읽어보고 이 책이야말로 이 작가의 진수라고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면 서가를 만들 수 없습니다. (……) 생선집 주인이 자기가 진열해 파는 생선의 맛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을 설명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은 똑같다고 봅니다.” (『서점은 죽지 않는다』, 165쪽)

 

서점원은 저자가 쓰고 출판사가 만들고 유통업자가 수송한 책을 단순히 진열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어디에 꽂을지, 어느 책 옆에 놓을지,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 신경 쓰면서 읽는다. 공간에 끊임없이 변화를 주기 위해 매일 진열하는 책을 바꾸고, 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거나 독자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다. 그들은 책을 판매하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 주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나는 그동안 서점에 가면 ‘책’만 보았지 ‘서점원’의 존재를 인식한 적이 없었다. 지금껏 책의 매력을 전하는 서점원을 만난 적도 없다. 오히려 집 근처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이 나에게 책에 대한 추억을 더 많이, 더 자주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좋아해 막연히 책과 관련된 일을 할 거라 생각하면서 편집자나 도서관 사서를 떠올렸지 서점원을 떠올려 본 적은 없다. 그런 내가 서점원이 되다니!

 

서점이라는 공간, 서점원의 역할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면서 책을 입고하고 진열하는 순간이 즐거워졌다. 책을 살피고 읽는 시간이 많아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 얽힌 배경이나 뒷이야기, 디자이너의 의도 등 책과 관련된 다채로운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도 재미를 느꼈다. ‘이 책의 옆자리엔 어떤 책이 좋을까?’, ‘이런 흐름으로 살펴보다가 이 책을 발견하면 좋겠다.’ 나름의 꿍꿍이를 가지고 책을 진열했는데, 어쩌다 손님이 그 책을 집어 계산대로 오면 짜릿했다. 오랫동안 서가에 꽂혀 있던 구간을 지금 시기에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평대에 꺼내 놓았는데 곧잘 팔리면 신이 났다. 입고된 책을 쇼윈도에 진열할지, 평대에 놓을지, 서가에 꽂을지에 대한 나의 고민과 선택이 어쩌면 책 한 권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책을 쥔 손에 힘을 잔뜩 주며 일했다. 책을 주문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신중한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애정하는 출판사의 신간을 넉넉히 주문했다. 서점원이기 전에 나 역시 한 사람의 독자이므로 ‘계속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만들어 주세요’ 하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 그런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서점원이 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출판사 대표님에게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정지혜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특별히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메일을 씁니다.
『동사의 맛』이 2쇄를 찍었습니다.
언론에 이렇다 하게 소개가 된 것도 아니고 저자가 유명한 분도 아닌데

두 달 만에 초판을 다 팔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관심을 보여 주셨던 정지혜 매니저님이 떠오르더군요.
처음 책을 진열한 곳도 땡스북스였고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도 땡스북스였습니다.
거기서 책을 사서 읽은 분들이 입소문도 많이 내주셨고요.
그렇게 생각해 보니 그냥 아무 말씀 없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정지혜 매니저님 고맙습니다.
서점원의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책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사무치게 깨닫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메일을 읽다 눈물이 핑 돌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뛰는 가슴을 주체 못하고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또 읽었다. 편집자와 서점원 사이에서 흔들리던 정체성이 단단하게 자리 잡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다 서점원이 되었지만 어쩌면 나는 평생 서점원으로 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만 원의 보너스를 받은 것보다 더 값진 한 통의 메일이었다. 어느새 책과 사람을 잇고, 저자와 독자를 잇는 이 매력적인 일에 나는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푹 빠져 있었다.


 

 

서점은 죽지 않는다 이시바시 다케후미 저 / 백원근 역 | 시대의창
‘책’이란, ‘서점’이란, ‘서점인’이란 무엇인지, 왜 서점의 본질적 가치와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해야 하는지 이 책은 묻고 있다.


 

 

동사의 맛 김정선 저 | 유유
이 책은 한국어 동사를 다루되, 일반 독자는 재미있게 읽으면서 동사 활용법을 익힐 수 있고,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글을 다루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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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지혜(사적인서점 대표)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 '사적인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의 만남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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