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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책 좋아하는 젊은 여자가 미친 사랑에 빠질 때

『결혼이라는 소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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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의 초반에서 매들린은 자신이 대학에서 배운 ‘결혼 플롯’을 포함해, 문학에서의 사랑과 결혼, 섹스에 대한 ‘이성적 분석’을 들려준다.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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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부터 모두 살펴보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첫 문장에서 들킨 기분을 느낄 것이다. 심지어 이 이야기의 제목은 『결혼이라는 소설』 아닌가. 책장이라는 풍경으로부터 모든 것이 설명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 대목을 읽으며 당신의 책장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으로 주인공들을 상상하고 만날 일이다. “겉보기에는 아무렇게나 고른 것 같아도 마치 인성 검사를 할 때처럼 차츰 하나로 초점을 좁혀 가며 모아들인 텍스트들이었다. (중략) 검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결과를 기다리면서 ‘예술적’이라거나 ‘열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섬세’하다면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며, ‘자아도취적’이고 ‘가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올까 봐 겁을 먹기도 하지만”. 이제 웃을 차례다. 책 속으로 모험 떠나기를 즐기는 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어떤 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그답게 약간은 비딱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이라는 소설』을 시작한다. 결혼이 소설과 같다면, 결혼이라는 소설을 우리는 어떤 것으로 상상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시대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는가. 소설에서 인물의 결혼은 전체 분량의 어디에 위치하며, 그 위치는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1982년, 매들린은 대학을 졸업한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두 남자가 있다. 미첼은 집안 식구들이 다 아는 데다 부모님은 그가 그녀의 이상적인 결혼 상대라고 생각한다. ‘나이 든 사람이나 걸칠 법한 옷을 입고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미첼과는 한때 친구 이상의 관계를 모색해 볼 생각이었으나 둘 다 무안함만 잔뜩 안은 채 진전이 없었다. 레너드로 말하면, 헤어졌다. 헤어졌다는 말만 던진 뒤 시간을 뒤로 돌려, 성인이 된 매들린이 만난 남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이내, 레너드에게 왜 꽂혔는지가 나온다. 그리고 90년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남녀들에게 (읽었든 읽지 않았든) 성경과도 같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등장한다. ‘사랑에 빠진 미치광이’라는 이 첫 챕터는 독립적으로도 아름답고 흥미로운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젊은 여자가 처음으로 미친 사랑에 빠질 때 망하는 방식을,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천연덕스럽게 적어 놓았다. 그 유명한 ‘기다림’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글.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고(만남, 편지, 전화 연락, 귀가의) 사소한 지연에 시달리며 유발되는 불안감의 폭발.” 감정적으로 오르가슴을 이미 느낀 상대와의 첫 섹스가, 음, 그러니까 상대방이 만족을 느꼈다는 만족감 외에 딱히 오르가슴의 O와 닮은 것이 없을 때조차도, 그 모든 것을 (구역질 나는 그의 냉장고조차) 자진해서 참아 내고 있을 때, 롤랑 바르트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음을 알게 되는 장면 같은 것은 두통을 유발한다. 이제 무언가가 잘못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결혼이라는 소설』의 구조적인 재미는, 대학 교육을 받은 데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인문학을 전공한 현대 여성(80년대 이후에 대학을 다닌)이 살면서 겪는 이상한 ‘뒤통수 맞기’를 구성 면에서도 그대로 구현한다는 데서 온다. 대학을 다니는 20대 초반 여성들은 자신이 이전 세대의 여성들의 삶을, 그들의 글쓰기를 궤뚫어 보거나 삶의 양태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마치 실험실의 청개구리를 해부하고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분석하고 비판하고 논문을 쓰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 기분을 환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살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을 깨부수게 되기 때문이다. 알았던 것을 모르게 되고, 모르는 것을 (전혀 유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며, 그렇게 알게 된 것을 비밀로 하게 된다. 혹은 폭로한다. 페미니즘을 배우는 것과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같지 않다. 비슷하지조차 않다. 딸로 사는 것은 연인으로 사는 것과 같지 않으며, 아내로 사는 것과도 같지 않다. 삶은 소설과 다르다.

 

『결혼이라는 소설』의 초반에서 매들린은 자신이 대학에서 배운 ‘결혼 플롯’을 포함해, 문학에서의 사랑과 결혼, 섹스에 대한 ‘이성적 분석’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시기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허세로 가득한. 이를테면 연인에게 “아버지란 존재를 죽여라.”라고 하며 너의 아버지는 버지니아 울프인지 수전 손태그인지를 묻는 행위, 그 질문에 대해 너의 아버지는 누구냐 묻는다면 장 뤽 고다르의 이름을 대는 남자. 이런 것을 시간이 흐른 뒤 웃으며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가볍고 즐거운가. 웃을 수 없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의 결혼 경험이 불러오는 파국에 비하면.

 

매들린의 시선에 포착된 레너드라는 남자가 아니라, 레너드가 진짜 경험한 성장 시절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부터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해 보인다.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했을까. 레너드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여학생들이 원하는 존재로 성장한다. 지적인 면에서나 성적인 면에서나 깊이 몰두한 시기?즉 여러 상대와 섹스하는?를 보내던 레너드는 우울증을 앓게 되고 마침내 매들린과의 관계가 시작되고 깊어졌을 때는, 매들린과의 연애를 ‘이야기’로 만들어 친구들 앞에서 소비하는 자기 자신에게 도취된다.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결국은 그도,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다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혼이 타이밍이라고 말할 때, 그 타이밍은 어떤 뜻일까. 사랑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이런 답은 어떨까. 삶에서 베팅할 수 있는 유일한 판돈이 결혼밖에 남지 않았을 때가 결혼할 타이밍이라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너무 늦게 찾아온다, 결혼 직후에. 그리고 머지않아 매들린은 부모님이 원했던 신랑감과 자신이 선택한 남편을 나란히 놓고 보게 된다. 하지만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결혼에 관한 교훈극을 쓸 생각은 없다. 미첼은 그러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가 이어지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소설』의 엔딩은 희극이라고 불러야 좋겠다. 매들린이 읽어 온 그 많은 소설의 메타적이면서 유머러스한 결말. 마지막 장면의 “그래.”라는 한 마디에 숨은 것들. 결혼을 둘러싼 수많은 밤의 기억과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은 여린 것들에 대하여,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달관한 척하지 않고 보여 준다. 마침내 남는 기이한 만족감. “그래.”

 


 

 

결혼이라는 소설 제프리 유제니디스 저 / 김희용 역 | 민음사
매력적이지만 불안한 남자와 착하지만 평범한 남자 사이에 선 여자, 이 시대에 사랑과 결혼이 지니는 의미를 찾는 가장 혁명적인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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