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
이즘 페스티벌 취재기
페스티벌은 늘어가지만 정작 그 주체인 음악 대신 유흥이 앞서는 최근 흐름에서 여유로웠던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음악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2017.08.17)
2017년 범람하는 음악 페스티벌 속에서도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생소한 세계였다. 도심형 페스티벌의 중심지 잠실을 벗어나 한강 난지공원을 택했고, 해외 인디 씬의 기린아들로 구성된 라인업은 보편이 아닌 인디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7월 29, 30일은'페스티벌 결전의 날'로, 터줏대감 <지산 록 페스티벌>부터 EDM의 <유나이트 위드 투모로우랜드(Unite With Tomorrowland)>, 힙합의 <워터밤 2017(Waterbomb 2017)> 모두가 겹쳐있었다.
이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꿋꿋이 이틀 동안 한강 난지공원 행을 택한 필자의 소망은 '제발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기를…' 하나뿐이었다.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나오(Nao), 썬더캣(Thundercat), 샘파(Sampha),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 Years), 오 원더(Oh Wonder), 더 엑스엑스(The XX)를 보러 누가 올 것인가 하는 걱정과 그들이 들려줄 라이브에 대한 기대를 반반 정도 갖고, 한강공원을 따라 7월의 마지막 홀리데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전체적 조망
소규모 페스티벌에 걸맞게 아담한 광경과 아담한 무대가 눈에 띄었다. 양일간 전체적으로 한산한 느낌이었으나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이 펼쳐질 때는 사람들로 꽉 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한적한 페스티벌은 의외의 장점을 안겨줬는데, 어느 부스든 5분에서 10분 이상의 줄이 생기지 않았고 화장실, 흡연 부스 등 편의 시설 이용에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불편을 느낄 새가 없었다. 항상 망원경으로, 앞에 있는 사람의 스마트폰 화면으로나 봐야 했던 헤드라이너들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무리한 운영 대신 규모에 맞는 작은 설계가 효율적이었다.
아티스트 무대
토요일 첫날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한 서사무엘과 김아일은 적은 관객 수에도 아랑곳 않고 파워풀한 무대를 보여줬다. 'Samuel, Last Name Seo'와 같은 서사무엘의 커리어와 최근 합동으로 발매한 EP <ELBOW>의 트랙들을 중심으로 공연을 펼쳐나갔다.
해외 아티스트 중 첫 번째로 무대에 선 이는 재즈와 고전 소울을 기막히게 배합한 베이시스트 썬더캣(Thundercat)이었다. 드럼, 키보드, 베이스 3인조 밴드 구성으로 무대에 오른 썬더캣은 왜 자신이 2017년 호평의 주인공인지를 압도적인 무대로 증명해냈다. 깔끔한 사운드 세팅과 쉴틈 없는 테크닉 연주의 폭격, 보컬과 즉흥의 적절한 경계는 처음 접하는 사람도 대단하다는 걸 금방 느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감상 난이도는 재즈 음악이라 조금 높은 편이었으나 오히려 이 장르적 특성만 아니었다면 웬만한 페스티벌의 메인 헤드라이너로 설 자격이 있음을 만천하에 인증했다.
런던 출신 신스팝 듀오 오 원더(Oh Wonder)의 무대는 사랑스러웠다. 맑고 선선해진 날씨에 조세핀 가셰(Josephine Gachet)와 앤서니 웨스트(Anthony West)의 잔잔한 목소리가 곁들여진 공연장의 분위기는 최고였다.'Without you', 'All we do'처럼 잔잔하다가도 신보의 메인 싱글 'Ultralife'처럼 활기찬 무대를 보여주며 총천연색 무대를 보여줬다.
토요일의 최고 공연은 지난해 <For We All Know>로 올해의 작품 후보를 휩쓸었던 나오(Nao)의 무대였다. 가녀리지만 숨겨진 유혹의 힘을 갖춘 최고의 보컬 컨디션과 더불어 역동적인 무대 퍼포먼스까지 선보이자 스테이지의 모든 관객들은 그 진한 그루브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곡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 뿜어내는 천부적인 리듬 감각은 경이로운 수준으로 왜 자신이 대세의 자리를 넘보는 신세대 디바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Inhale Exhale', 'Girlfriend', 'Bad Blood' 등 데뷔 앨범 히트 퍼레이드를 모두 포함한 데다 무라 마사(Mura Masa)와의 콜라보 'Firefly'까지 더해 더욱 완벽했던 공연.
마지막 무대는 런던 출신 일렉트로니카 트리오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 Years). 그 전의 호응도 대단했지만 이들의 무대는 필연 마지막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정말 엄청난 반응이 따라 나왔다. 섹시한 보컬 올리 알렉산더(Olly Alexander)의 몸짓과 노래 하나하나에 <프로듀스 101>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비명이 터져 나왔고, 'Desire'와 'King','Shine'의 히트곡에는 한국 관객들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떼창'을 선사해줬다. 아이돌 콘서트장 부럽지 않았던 열광적인 팬들 앞에 올리는 거듭 '사랑해!'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전날보다 더 한산해 보였던 일요일의 페스티벌을 깨운 건 샘파(Sampha)의 목소리였다. 개인적 아픔을 건조하면서도 짙은 보컬로 잔잔하게 담아낸 로 2017년 최고의 앨범 한 자리를 예약한 그의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대세라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공연 도중 런치패드가 고장 나고, 드럼 패드 위치가 자꾸 엇나가고 드러머 폴 러브조이(Paul Lovejoy)가 채를 놓치는 등 엔지니어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위기를 수습하는 모습이 산만했지만 그조차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4인의 밴드원들이 모두 드럼 스틱을 잡고 드럼 세트를 두드리면서, '(No One Knows Me) Like the piano'에선 건반과 단 둘이서, 'Plastic 100 ?C'에서는 극강의 몽환을 보여주면서 무대를 지배했다.
2015년 방한하여 서교동 Yes24 무브 홀에서 공연을 펼쳤던 라이(Rhye)는 너무 잔잔한 공연 구성과 라이브 문제로 한 번 얘기가 나온 터라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쓸데없다고 말하듯,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메인 스테이지의 관객들은 음원을 아득히 뛰어넘는 아우라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메인 싱어 밀로쉬(Milosh)의 깊은 목소리와 우아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바이브는 잔잔하면서도 본능적인 움직임을 유도했다. 지루했다는 평을 의식했는지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넣으며 파워풀한 첼로 독주, 바이올린 독주를 포함하여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밀로쉬의 말대로 '로큰롤 밴드일지도'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늘하늘 우아한 라이의 세계가 펼쳐졌다.
드디어 마지막 차례, 페스티벌의 진짜 주인공 더 엑스엑스(The XX) 의 무대가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관객 수는 제일 많았고 다들 엄청난 기대에 사소한 화면 전환에도 함성이 터졌다. 이윽고 몽환적인 인트로를 깔아놓은 다음 'Crystalised'의 기타 리프가 울려 퍼지자 스테이지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로미(Romy Croft)와 올리버(Oliver Sims)의 짙은 보컬에 관객들은 탄성을 내질렀고, 마치 전지전능한 듯 디제이 셋 뒤에서 비트를 주조해내는 제이미(Jamie XX)의 디렉팅에 모두들 몸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시크하면서도 도도한 이 트리오는 이틀 전 후지 록 페스티벌의 셋 리스트를 전개하면서도 'A Violent Noise', 'Brave for you'를추가하고 순서를 약간씩 수정하는 등 한국을 위한 공연을 이어나갔다. 'Dangerous'와 물 흐르듯 이어졌던 'I dare you', 제이미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Loud Places'는 단연 최고. 인디 씬의 루키로부터 어엿한 메이저의 위치에 오른 그들의 성장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앵콜 곡 'Angels'에서의 실수도 웃어넘길 만큼.
결론
올 사람만 올 라인업, 적당한 편의시설, 한적해서 그런지 몰라도 쾌적했던 환경, 여유로운 분위기 등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대형 페스티벌에 지친 이들에게 여유로운 난지 한강공원은 거의 천국 같은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힘들이지 않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데다 편의시설도 쾌적하고 날씨도 좋았으니 말 그대로 금상첨화.
물론 미숙했던 셔틀버스 운용, 공연 후 귀가 수단 조치 미흡으로 단 한 대의 시내버스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던 등 불편한 점도 있었다. 페스티벌이 같은 날짜에 몰리다 보니 스폰서 업체들도 규모가 작았고, 그와 관련된 이벤트도 적어 페스티벌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 어렵기도 했다. 라인업 격차도 상당해 일요일 낮 시간 스테이지는 너무 한산했고, 전체적으로도 그리 많은 관객이 들어온 것 같진 않았다.
약간의 불편함과 어색함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 음악적인 면에서 그렇다. 한국 팬들에게 어필하기 힘든 라인업을 꾸렸음에도 그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한창 활동하는 해외 젊은 아티스트들의 무대는 그간 우리가 봐왔던 슈퍼 록 스타들과 사뭇 달랐는데, 더 엑스엑스가 10분 정도 늦긴 했지만 타 아티스트들은 정확히 정시에 무대에 올랐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커리어 노래를 동원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쏟아냈다. 컨디션은 모두 최고였고 음향 부분에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워 모든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페스티벌은 늘어가지만 정작 그 주체인 음악 대신 유흥이 앞서는 최근 흐름에서 여유로웠던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음악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소규모 페스티벌만의 강점을 더 다듬는다면 매 휴가철, 범람하는 페스티벌 열풍 속에서도 신선하고 젊은 흐름을 만들어 훌륭한 대안으로 자리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Fake Virgin Seoul
Photo Credit : Hospital Photograph / Kaipaparazzi / Stillm45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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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