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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무엇으로 하나가 되었는가?

바그너의 오페라로 떠나는 독일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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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바르트부르크와 뉘른베르크에서 함께 부르며 즐기던 노래가 어느덧 독일사람 모두의 노래가 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한 마음으로 문학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예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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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에서 동북쪽으로 약 210km를 가면 아이제나흐가 있다. 튀링겐 숲속에 자리 잡은 인구 5만여 명의 이 작은 도시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태어난 곳이다. 아이제나흐를 내려다보는 바르트부르크 성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무대이면서, 마르틴 루터가 1521년부터 약 10개월 동안 숨어 살면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곳이기도 하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2017년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이 새삼스럽게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모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1967년에는 바르트부르크 성 900주년이자 루터의 종교개혁 450주년, 그리고 "학생ㆍ교수 대회"(1817년 10월 17~18일 독일 전역에서 470명의 학생ㆍ교수 대표들이 모여 연 나폴레옹 격파 전승 기념대회. 독일 건국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바르트부르크에서 개최되어 통일 독일을 향한 독일인들의 염원이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제나흐 남서쪽 해발 400m의 산 위에 우뚝 솟은 바르트부르크 성은 1067년에 지어진 후 튀링겐 백작의 거처였다가 훗날 바이마르 대공의 소유가 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2세기 말엽에 백작 헤르만 1세는 해마다 음유시인 미네징어(Minnesinger)들을 바르트부르크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고 시와 노래를 겨루는 경연대회를 열었는데, 1842년 4월, 파리에서 드레스덴으로 가는 길에 이 성을 방문한 바그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오페라 "탄호이저"의 무대로 삼았다고 한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음유시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Walther von der Vogelweide)가 남긴 시에 당시의 경연대회가 잘 묘사되어 있어 바그너는 그것을 참고하여 <탄호이저>를 구상하였다.

 

오페라 <탄호이저>의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인물이다. 주인공 탄호이저는 물론 친구인 볼프람 폰 에센바흐, 그리고 바르트부르크 노래 경연대회에서 이들과 겨루는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까지 모두 독일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중세의 음유시인들이다. 그들 가운데 특히 볼프람 폰 에센바흐는 훗날 바그너가 작곡한 "로엔그린"과 "파르지팔"의 전설을 시로 남긴 원작자이기도 하다.

 

중세 독일의 시와 노래인 미네장(Minnesang)을 작사, 작곡하고 연주했던 음유시인 미네징어(Minnesinger)의 전성기는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중반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기사 계급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평민 계층에서도 음유시인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15세기에 이르면 마이스터징어(Meistersinger)의 시대가 열린다. 시인이자, 작곡가이면서 가수이기도 한 마이스터징어는 동업조합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수공업자이면서 따로 시와 음악의 기량을 갈고닦아 최고의 경지를 인정받은 장인가수( 匠人歌手), 즉 노래의 장인이다. 수공업자로서 마이스터의 위치에 오르려면 견습생부터 여러 등급을 거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이스터징어가 되기 위해서도 여러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의 주인공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이스터징어로 일컬어지고 있는 한스 작스(Hans Sachs, 1494년~1576년)이다. 평생을 뉘른베르크에서 구두 만드는 기술자로 일했던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시 "비템베르크의 나이팅게일"을 지어 그 이름을 떨쳤지만, 종교와 정치 비판 때문에 한 때 출판이 금지되고 생업까지 제한받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오페라에서 한스 작스는 친구이자 동료 마이스터징어인 파이트 포크너의 딸 에파가 사랑하는 귀족 청년 발터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파이트가 마이스터징어를 뽑는 경연에서 우승하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고 하자 풋내기 발터를 격려하고 이끌어 우승하게 만든다. 이 오페라의 마지막 3막은 뉘른베르크의 모든 길드 조합원들과 그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마이스터징어를 뽑는 경연을 펼치는 축제의 장이다.

 

이 장면에 마음을 뺏긴 히틀러는 1933년부터 1938년까지 해마다 뉘른베르크에서 나치전당대회를 열었고 그것으로 또한 독일 국민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치가 패망하자 전쟁에서 이긴 연합국은 더 이상 이곳에서 나치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뉘른베르크에 전범재판소를 열어 전쟁을 일으킨 범법자들을 단죄하고 처벌하였다.

 

뮌헨의 맥주 축제 "옥토버 페스트"를 갔다 온 사람들이면 누구나 독일 사람들의 맥주 사랑과 노래 사랑에 놀랐다는 말을 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어디서든 모이기만 하면 함께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끝도 없이 이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 옛날 바르트부르크와 뉘른베르크에서 함께 부르며 즐기던 노래가 어느덧 독일사람 모두의 노래가 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한 마음으로 문학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예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처럼 시와 노래로 생각을 나누고 뜻을 함께하였기에 라인강의 기적과 통일 독일의 영광은 물론 유럽 통합의 역사까지도 이루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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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승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 교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음악학과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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