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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어도 표준어인데 은어는 표준어가 아닌 이유

최종희의 『열공 우리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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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일수록 모국어를 풍요롭고 정확하게 쓰는 사람의 품격이 돋보입니다. 우리는 국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모국어의 넓고 깊은 세계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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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영화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영화 대부의 스틸 컷. 범죄 용어는 특정 계층만 쓰는 은어가 많다.

 

“그 친구 아직 나이는 젊은데 생각이 왜 그렇게 구닥다리야”
“나 어제 집에 오는 길에 불량배들에게 삥땅 뜯겼어”


이러한 예문은 우리가 종종 일상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구닥다리’. ‘삥땅’ 같은 단어는 척 보기에도 그다지 교양 있거나 점잖은 말투는 아닌 듯합니다. 이런 말들을 비속어라고 하는데, 더 상세하게는 비어와 속어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비어(卑語/鄙語)란 “①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 ②대상을 낮추거나 낮잡는 말”을 뜻합니다. 위에 나온 말들 중에서는 구닥다리[舊-](여러 해 묵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사물/생각 따위를 낮잡는 말)가 이에 해당하는 데, 원말은 구년묵이[舊年-](①여러 해 묵은 물건. ②어떤 일에 오래 종사한 사람을 낮잡는 말)입니다.

 

속어(俗語)란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 혹은 상말(점잖지 못하고 상 스러운 말)을 이릅니다. 위의 예에서는 삥땅(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할 돈의 일부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 깡다구≒깡(악착같이 버티어 나가는 오기), 야코죽다(기죽다의 속어. ‘야코’는 ‘코’의 속어), 얍삽하다(사람이 얕은꾀를 쓰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태도가 있다), 짝퉁(가짜 또는 모조품의 속칭) 등이 이 속어에 속합니다.

 

점잖은 사람들도 비어나 속어를 사용한다

 

그럼 이러한 비어나 속어는 표준어일까요 아닐까요?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뜻합니다. 이 기준에 비추면 비어나 속어는 표준어가 아닌 듯도 합니다. 그러나 정답은 이들 비어나 속어도 표준어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째서 저급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비어와 속어가 표준어에 드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말들을 살펴보면,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허물없는 사이에서는 교양 있는 표현 대신에 다소 속된 표현을 의도적으로 선택할 때도 있습니다. 언어생활에서 긴장과 격식의 무게를 덜어내서 편안함과 친밀함을 더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소통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때 대체로 그러한 세속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이번엔 그 친구도 용빼는 재주 없이 용코로 걸려들었다.” 라는 표현을 보면 용코로는 ‘영락없이’를 뜻하는 속어입니다. 그럼에도 ‘용코로’라는 속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리듬감을 확보하고 그와 동시에 통쾌감을 공유하고 듣는 사람의 맞장구를 유도하는 복합적 소통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 쌍것들이 돈이 되는 줄 알고 찍자를 붙자는 짓이지 뭐야.” 따위와 같은 데서 쓰인 찍자도 “괜한 트집을 잡으며 덤비는 짓”을 뜻하는 속어 지만, ‘찍자’ 대신에 ‘트집/생떼’ 등과 같은 중립적 언어를 사용해 보면 그러한 효과가 반감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화자(話者)는 ‘그 쌍 것’들에 어울리는 속된 표현(속어)을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화자가 꾀하려는 간접 보복 효과도 슬며시 거두고 있지요.

 

이와 같은 이유로 속어나 비어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에 속하게 되어, 표준어에 들게 된답니다. 즉, 표준어란 교양 있는 ‘고품격 언어’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라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지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세계 ‘은어’


우리말에는 비어나 속어와 비슷해 보이는 은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산에 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은 초마니(初-, 초년생 심마니), 천동마니(풋내기 심마니), 노마니(老-, 노련한 심마니), 선채마니(善採-, 산삼을 잘 캐는 능숙한 심마니) 같은 말을 씁니다. 은어란 이처럼 특정한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도록 쓰는 말을 말합니다.

 

그런데 비어나 속어와 달리 은어는 표준어에 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맞습니다. 특정 계층이나 부류에서만 쓰기 때문입니다. 즉 교양있는 일반인들이 잘 쓰지 않고 나아가 대부분은 모르는 단어들입니다.

 

범죄 용어에 은어가 많은 것도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줍니다.


큰집(교도소), 빵(감방), 국수〔포승(捕繩)〕, 은팔찌(銀-, 수갑), 사진관(寫眞館, 면회실), 범털(부자이거나 지적 수준이 높은 죄수), 개털(돈이나 뒷줄이 없는 죄수) 등은 주로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 사이에서 쓰는 말입니다. 조직 폭력배 등 범죄 조직 연루자들은 교도소 경험이 많으므로 자연히 이런 은어를 자주 쓰지요. 당연히 이런 말들을 보통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알아듣지 못하고 쓰지 못하니 표준어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표준어가 되기 위한 자격 조건


표준어(標準語)란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를 말하는데요.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서 일차로 표준어에서 제외되는 것은 ‘방언(方言)/사투리’입니다.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말이므로, “전 국민이 공통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죠.


두 번째로는 ‘현대 서울말’이므로 고어(옛말)는 표준어에 들지 못합니다. 고어란 정의에서 보듯 “오늘날은 쓰지 아니하는 옛날의 말”이므로 현대 말이 아닌 까닭에 표준어에서는 제외되는 것이지요.


세 번째로 “전 국민이 공통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에 미달하는 것으로는 ‘은어’가 있습니다. 은어는 특정 계층에서만 쓰는 일종의 계층 방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비어, 속어, 은어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은어만 표준어가 되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셨나요?

 

□ 개념 정리


표준어 : 우리말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①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 ②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중 표준어로 정한 말. 여기에는 토박이말/고유어/순우리말 외에 한자어, 외래어, 속어, 비어, 순화어 들이 포함되며, 사투리/방언과 은어/변말, 고어/옛말 들은 제외된다.


은어(隱語) : 어떤 계층/부류의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만 알아듣도록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


고어(古語) : 옛말. 오늘날은 쓰지 아니하는 옛날의 말.


속어(俗語) : ①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 ②상말(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


비어(卑語) : ①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 ②대상을 낮추거나 낮잡는 말.


방언(方言) : ①“한 언어에서, 사용 지역 또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화된 말의 체계”, ②(사투리의 동의어로)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 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지역에서만 쓰이는 지역적 제한을 우선하는 경우에는 사투리가 적절하고, 지역이나 계층으로 분화된 경우에는 방언이 적절하다.

 


 

 

열공 우리말최종희 저 | 원더박스
『열공 우리말』은 우리말에 대한 13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1천여 표제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그 표제어와 분류별, 유형별, 실생활 사용례별로 연관된 1만2천여 단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설명한 우리말 어휘 공부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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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종희

“언어는 그 사람”이라는 소신을 지닌 우리말 연구가이다.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 대표이며, 경기교육청 ‘학교로 찾아가는 인문학’ 강사이다. 충남 서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퇴직하고 나서 꼬박 5년을 바쳐 완성한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은 현재 국립도서관에 “마지막으로 납본된” 중대형 종이 사전이 되었다. 『박근혜의 말』, 『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워크북』, 『내가 따뜻한 이유』(공저) 등을 썼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셀프 혁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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