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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 빼앗기거나 잃은 자가 할 수 있는 일

김윤아 〈타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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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살을 깎는 이 복기는 무력한 세대를, 위로할 수 없는 시대를 대변한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고통의 복기, 지금의 어른이 온 힘을 쥐어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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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가 타인의 고통에 눈길을 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소통의 부재(혹은 불가능성)를 다루는 「유리」는 1집의 「담」과 일맥상통하고, 「은지」는 2집의 「girl talk」의 화자가 소녀가 자란 후 내뱉는 씁쓸한 회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은 밀도의 측면에서 또한 전과 다르다. 보다 넓은 가지에 뻗어 있었던 이야기들을 쳐내고, 철저하게 하나의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이전까지의 그는 <유리가면(琉璃假面)>처럼 작정하고 콘셉츄얼한 음반을 만들거나, 그러한 곡들을 곳곳에 끼워넣곤 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주제에 접근하려는 의지일까.

 

그러한 태도는 보컬과 사운드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사람이 내는 듯 곡마다 톤을 판이하게 달리하던 모습은 많이 가라앉고, 상대적으로 덜 꾸민 목소리로 노래한다. 사운드 역시 가장 정제된 느낌으로, 악기는 난잡하게 펼쳐지지 않으며 클라이맥스에서 과하게 팽창하지도 않는다. 「은지」와 같은 곡에서는 의도적으로 쌓아 올린 전자음으로 갑갑한 정서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건반 또는 스트링 사용이 중심을 이룬다. 후반 3분을 오롯이 현악과 건반 사운드만으로 채우는 「강」과, 시종 현악 편곡이 앞섰다 물러났다를 반복하며 곡을 이끌어가는 「유리」가 대표적이다.

 

빼앗기거나 잃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해답이 없는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그곳에는 ‘내가 널 구할 수 없었을까, 누군가 너를 구할 수 없었을까’ (「독」)라고 열없이 이야기하는 자도 있다.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를 반복하며 감정을 고조시키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말로 끝을 맺는 역설(「유리」)도 있다. 그런 저마다의 이야기는 아픔을 해소하거나 날려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절망을 입 밖에 내어 이야기함으로써 그 아픔을 다시 한 번, 또 한 번 상기하게 만든다. ‘가슴을 내리치는 고통’이라는 직접적 표현으로 상실의 후일담을 처절하게 기록하는 일(「키리에」)은 그 자체로 일종의 자학(自虐)이다.

 

어찌 보면 자기파괴적인 이 행위가 힘을 갖는 것은 그것이 고통스러울지언정 ‘잊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고, 또 지금이 잊히는 것이 너무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김윤아의 목소리는 때로 절제하고 때로 터뜨리며 상실의 감정을 실어나르는 데 집중한다. 그가 바라본바 타인의 고통이란 결코 덤덤하게 풀어낼 수 없는 것이기에, 특유의 극적인 보컬도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무겁고 음울한 단어들 가운데에서 홀로 살아 숨쉬는 양 역동적이다. 그렇게 그가 죽음의 이미지 속에서 길어내는 것은 묘하게도 생(生)의 감각이다.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아픔에 건네는 위로란, 어쩌면 불가능의 영역 안에 있다. 김윤아의 음악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앨범과 동명의 트랙 「타인의 고통」은 ‘미안해,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았어’라는 사과로 시작한다), 어중간한 위로 대신 고통을 적는 행위에 집중한다. 그래서 타이틀 「꿈」은 꿈을 이룰 거라는 북돋움이 아니라 수많은 이루어지지 않은 꿈에 대한 헌사인 것이고, 가장 밝은 멜로디를 가진 「안녕」조차 관계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 지나간다」가 말 그대로 다 지나갈 거라는 주문보다, 그런 상투적인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 또는 시대에 대한 자조(自嘲)에 가깝게 들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제 살을 깎는 이 복기는 무력한 세대를, 위로할 수 없는 시대를 대변한다. 그리고 고통의 복기로 우리는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고통>은 지금의 어른이 온 힘을 쥐어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다.


조진영(9512apha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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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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