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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긴 밥을 엄마가 먹지 않아 다행이야

‘아이가 남긴 밥’이 향해야 할 곳이 ‘엄마의 입’이라는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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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내가 쏟아내는 오물을 처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엄마 뱃속에 들어가는 음식마저 내가 뒤섞어놓은 잡탕을 먹을 필요는 없고, 내가 남긴 밥을 엄마가 꼭 먹어야 모성을 인증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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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식전 기도>, 1740년

 

<미씽 : 사라진 여자>에서 아이에 대한 애정을 대비해서 보여주기 위해 보모인 한매(공효진)는 아이의 콧물을 직접 입으로 훅 빨아먹고, 이를 본 지선(엄지원)은 인상을 찌푸리는 장면이 있다. 한매는 “안 더러워요”라고 하지만 지선은 “더러운 건 더러운 거야”라고 말한다. 직접 아이와 살 부비며 사는 보모와 아이의 애착관계를 강조하는 좋은 장치이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의문으로 남았다. 아이가 만들어내는 각종 액체와 오물을 환한 얼굴로 거두는가 아닌가를 두고 ‘엄마의 자격’을 겨루는 듯 했다.  제 아이의 콧물을 입으로 빨아먹지 않는 지선은 무심한 엄마인가.


몇달 전 한국에 있는 동안 가급적 조카를 돌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지금 27개월인 조카는 생후 10개월 후부터 제 할머니인 내 엄마와 살기 때문에 엄마가 꼼짝을 못한다. 나는 겨우 조카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도록 온갖 재주를 부린 뒤 식탁을 치우며, 설겆이를 하는 엄마에게 조카가 남긴 밥이 아깝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 그 동안 얘가 남긴 밥 어떻게 했어? 엄마는 “그냥 버려야지.”라고 한다. 우리를 건너다 보며 식탁에 앉아있는 아버지가 하는 말. “니 엄마는 유별나서 니들 남긴 밥도 안 먹던 사람이야. 당신은 이상하게 애들이 남긴 밥은 안 먹더라. 보통 엄마들은 다 먹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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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설거지 하는 하녀>, 1720~25년

 

오래된 레퍼토리. 엄마가 얼마나 까탈스러운 사람인지 설명하기 위해 아버지가 가끔 내놓는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우리가 어릴 때 엄마는 우리가 먹다 남긴, 이리저리 휘저어진 밥을 먹지 않았다고. 더불어 “어차피 아빠도 안 먹었잖아”라는 나의 대응을 되려 황당해 한다. 글쎄, ‘보통 엄마’들이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남의 집 밥상을 다 돌아다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애들 남긴 밥을 먹는 엄마를 ‘보통 엄마화’ 시켰음은 분명하다.

 

‘문화연구의 고전’이라 불리는 노동자 계급의 문화 연구서인 리처드 호가트의 『교양의 효용』은 나의 밑줄과 메모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티타임에 혼자 새우를 먹던 호가트의 어머니를 묘사한 부분이 항상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어머니는 우리가 피시앤드칩스와 홍차를 달라고 떼를 써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현명한 여성이었으며, 덕분에 우리는 코코아 외의 다른 음료는 마실 수 없었다. (중략) 언젠가 어머니가 돈을 인출한 직후 자기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 - 삶은 햄 한두 조각 아니면 새우 몇 마리였다 - 을 산 적이 있는데, 아마 그것은 예전에 어머니가 즐겨 먹던 것과 비슷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굶주린 참새마냥 티타임 내내 어머니를 둘러싼 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정말 놀랄 만큼 폭발적으로 화를 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것을 주기가 싫었던 것이고, 전혀 자비가 없었다. 결국 조금 얻어먹기는 했지만, 그때 우리는 생각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느꼈다.” - 『교양의 효용』, 65-66쪽


이 일화를 두고 저자 호가트는 “전통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라고 했다. 호가트는 이 책에서 먹고 입는 문제에서 가장 타격을 받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이 가정에서 어머니임을 강조하면서도, 때로 자식 앞에서 자기 몫을 악착같이 챙기는 어머니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모순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모두 가능한 모습이다.


나는 문득 ‘아이가 남긴 밥’이 향해야 할 곳이 마땅히 ‘엄마의 입’이라는 이 편견이 궁금하여 이리저리 조사(?)를 해봤다. 한 여성커뮤니티에는 “애들 남긴 밥 안 먹는 제가 엄마 자격이 없는 건가요? 다들 드세요?”라는 질문이 올라와 있고, 답변은 제각각이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질문이 엄마에게만 도착하고 있으며, 당연히 아이가 남긴 밥을 먹어야 ‘보통 엄마’라고 규정하는 ‘문화’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는 엄마가 내가 남긴 밥을 먹지 않았음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엄마한테 덜 빚진 기분이다. 날마다 내가 쏟아내는 오물을 처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엄마 뱃속에 들어가는 음식마저 내가 뒤섞어놓은 잡탕을 먹을 필요는 없고, 내가 남긴 밥을 엄마가 꼭 먹어야 모성을 인증하는 것은 아니니까. 엄마 밥상의 존엄을 빼앗으며 자식에 대한 사랑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


엄마의 기억 속에 엄마의 엄마들의 밥상이 어떻게 남아 있을까. 엄마가 말하는 ‘옛날 엄마들’은 밥상에 제대로 앉아 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그릇이 다 뭐야. 그냥 바가지에 먹는 거지” 푹 꺼진 부엌의 부뚜막에 앉아 바가지에 밥과 김치를 넣고 먹던, 그저 그런 계층의 옛날 엄마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젓가락도 없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은 후 숟가락을 뒤집어 막대 부분과 엄지 손가락을 이용해 젓가락처럼 김치를 집어 올려 먹었다고 한다. 주방 시설도 지금처럼 편리하지 않던 시절이니 그 일이 오죽 많았을까.


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수동식 펌프질을 하는 수도를 이용했다. 엄마가 연탄불 꺼뜨리지 않고 아궁이 위에서 새벽에 때맞춰 밥하다가 석유곤로가 나오면서 나름 아침이 획기적으로 바뀐 기억을 꺼내든다면, 아버지는 이렇게 ‘애들이 먹다 남긴 밥은 안 먹는 성격 유별난 여자’로 엄마를 기억한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70년대 후반 밥상의 추억은 다르다.


가스레인지는 내 기억으로 1986년 우리집에 처음 들어왔으니 그 전까지는 석유 곤로와 연탄 아궁이가 요리를 하는 주요 가열 도구였다. 80년대에 연탄가스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는 여성이 남성의 거의 두 배였는데, 이는 결코 여성의 가사 노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요리할 때 나오는 각종 연기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보고서가 얼마 전에도 나왔지만 집에서 요리하다가 폐암 걸려도 이는 산재도 아니고 직업병도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유령 노동자니까. 참 희한하지. ‘애 낳을 몸’이라서 담배도 안 되고 술도 안 되고 어쩌고 저쩌고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요리에서 나오는 연기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나와도 대부분 가정에서 여성이 요리를 맡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척 하니까.


집에 식구가 줄어들며 엄마는 강아지 밥만 챙기면 되나 했는데, 인생이란 참 뭔지, 엄마의 육아 노동은 안타깝게 환갑이 넘어 다시 시작되었다. 손녀를 돌보며 먹고 자는 일이 힘들어지는 것은 기본이요 엄마는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문을 열어둬야 할 정도로 항상 아이의 눈 앞에 있어야 했다. “이건 껌딱지도 아니고 본드야 본드”라면서 아이가 혼자 뚝 떨어져 놀기를 기다린 나날은 가혹하게 흘러갔다. 손녀가 아무리 예뻐도 모든 기본권이 박탈당한 채 노동에 치이다 보면 사람이 미쳐 버릴 지경이 된다. 두 돌이 지나면서 이제 ‘한고비’를 넘겼고, 드디어 3월, 어린이집에 조카가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엄마는 오랜만에 혼자 점심을 먹었다. ‘혼자’ 있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가부장제란 어머니의 밥으로 아버지의 법을 굴러가게 하는 제도다. 그렇게 밥만 남기고 사라지는 어머니들의 육신이 쌓은 침묵의 무덤이 식구(밥 먹는 입)의 안식을 받쳐 들고 있다.

 

장차 아들 밥이 되고
증자 증손 떡이 되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오장육부 쓸개 꺼정 녹아내린 어머니여
- 고정희, 「첫째거리 : 축원마당4. 보름달 같은 여성해방 이윽히 받으소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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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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