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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어린이는 주는 대로 받는 독자니까요”
‘자신만만 생활책’ 1권 『몸, 잘 자라는 법』 펴낸 전미경 작가 편집자 + 작가 전미경, 책과 함께 미주알고주알
좋아한다기보다 어린이는 약자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모두가, 온 지구가 잘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책을 잘 만들고, 틀리지 않게 하려고 정성을 쏟는 이유도 어린이들은 주는 대로 받기 때문이에요.
‘자신만만 생활책’ 1권 『몸, 잘 자라는 법』을 쓴 전미경 작가를 만났습니다. ‘일과 사람’ 시리즈 완간 인터뷰를 한 지 딱 3년 만입니다. 그때는 편집자로서 ‘일과 사람’ 시리즈를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번엔 작가이자 편집자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출판이 아닌, 기성출판에서 자기가 쓴 책을 직접 편집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쉬운 일은 더더욱 아니겠지요.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이 책의 작가이면서 기획자, 편집자예요. 어땠나요?
떨렸어요. 원고는 ‘일과 사람’ 때도 써 봤지만, 그때는 공동 작업이었고 시리즈가 안정된 때라 그렇게 어렵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제 원고가 시리즈의 샘플 역할을 해야 했어요. 처음 ’자신만만 생활책’ 기획서를 썼을 때, 사람들이 어떤 책인지 잘 상상을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첫 권을 쓰기 시작한 건데 너무 힘들었어요. 체계를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구현하는 게. 처음에는 샘플로 조금만 쓰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전체가 나오지 않으면 작은 부분만 빼낼 수가 없으니까요. 완성을 했을 때는 또 원고량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맞아요. 초고를 봤을 때 분량 때문에 깜짝 놀랐어요.
네. 남의 원고는 잘 빼는데, 제 걸 빼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다 주옥 같고. (웃음) 그림이랑 같이 자리를 잡고 보니 제가 보기가 싫더라고요. 글이 너무 많아서. 만들면서 점점 덜어냈는데 아직도 좀 많지 않은가…… 생각해요.
덜어내는 건 편집자 몫이잖아요.
그러니까요. 객관적으로 봐 주는 것도요. 그걸 혼자 하는 게 실은 가장 힘들었어요. 그리고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잔소리 하는 책인데 애들이 짜증나지 않을까? 말풍선도 넣고 재미있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엄마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애들이 과연 좋아할까? 그런 걱정도 많았어요.
기획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일과 사람’을 하면서도 후속권에 대한 압박이 계속 있었어요. 뭐가 있어야 먹고 살잖아요. 중간중간 기획 회의도 하고 그랬는데 너무 일이 바쁘니까 본격적으로 시작은 못 했어요. 어느 날 같이 일하는 지혜 씨가 아주 오래된 백과사전을 가져왔어요. 학원사에서 나온 『가정생활백과』라고, 지혜 씨 엄마가 처녀 때부터 갖고 계셨던 건데, 이게 너무 웃긴 거예요. (꺼내며) 이 책이에요.
우와 진짜 오래됐네요. 엄청 두꺼워요.
별별 정보가 다 들어 있어요. 생활에 대한 것들 전부 다요.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하고 머릿속에 계속 갖고 있다가 다른 가벼운 정보책들을 보면서 조금씩 힌트를 얻었어요. 요만큼씩 요만큼씩 오랫동안 보완을 하다가, ‘일과 사람’ 끝나고 본격적으로 기획서를 쓰게 됐어요. 처음 『가정생활백과』를 봤을 때만 해도 아이디어가 구현될 수 없을 거라는 쪽에 기울어 있었어요. 이렇게 책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책 반응이 좋아요.
네, 주변 반응이 좋으니까 저도 좋더라고요. 표지가 너무 예쁘게 나오고, 인쇄도 마음에 들어요. 아이들이 재밌어 한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는데…… 왜 재미있을까? (웃음) 궁금해요.
사실 생활 습관에 관한 그림책은 영유아용이 많아요. 이닦기, 세수하기 같은 거요.
영유아 책이라면 세수를 아예 못하는 유아에게 알려 주는 식이 될 텐데, 이 책은 아니에요. 어느 정도 세수도 할 줄 알고 코도 풀어 봤고, 혼자 할 줄 아는 어린이한테 더 자세히 알려 주는 거죠. 책이 있다고 해서 부모님 이 책을 주고 ‘이거 보고 이대로 해라’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르치는 건 부모님이 해야 하는 거니까요. 다만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하기가 어려우니까. 어린이와 부모님한테 같이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동네 책방에 『몸 잘 자라는 법』이 들어와 있는데, ‘이런 것까지 글로 배워 야 하나 싶은 것까지 알려 주는 책’이라는 추천 이유가 붙어 있어요.
어른이 똑바로 알려 주지도 않고, 똑바로 못한다고 혼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릴 때 기억을 돌아보면서 내가 못 배웠던 것들을 많이 반영했어요. 그리고 코 푸는 법 같은 경우에도, 저는 어른 되어서야 알았거든요. 그렇게 풀어야 한다는 걸. 의사 선생님이 굉장히 많이 강조해요. 코를 잘못 푸는 바람에 귓병이 나서 병원에 오는 아이들도 많대요. 병원에서 엄마들한테 꼭 당부하는 내용이더라고요.
얼만큼 ‘깨알같이’ 알려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미주알고주알 알려 주는 게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전 그런 게 재밌거든요. 누구도 책에 실어 주지 않은 것을 글자로 박아 주는 것. 그리고 쟤는 모르는데 나는 아는 거? ‘야 그거 이렇게 하는 거야.’ 라며 알려 주길 좋아하는 어린이들도 약간 배려를 했어요. (웃음)
자료 수집이나 취재는 어떻게 하셨어요?
몸을 알려 주는 책은 있어도 생활 기술을 알려 주는 책은 없기 때문에 의사들의 칼럼을 많이 봤어요.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한테 많이 물어 보고. 웹 서핑도 했고요. 네이버 지식인 보면 황당한 거 많이 물어봐요. 엄마 아빠가 안 가르쳐 준 것들. 성기 닦는 법 이런 걸 인터넷에 물어보고 있어요.
인터넷에요?
청소년들이 많이 물어봐요. 그런 걸 가르쳐 주는 부모님도 있고, 아닌 부모님들도 있잖아요.
질문에 답은 누가 달아요? 검증되지 않은 답변이잖아요.
모르겠어요. 자세히는 알려 주는데 틀린 정보가 더 많죠. 저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많이 찾았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한테 감수를 받았어요. 용어들도 다 확인을 받았고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아 내가 더러워서 병에 걸리나?’ 하는 생각이 들까 봐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도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감기나 눈병처럼 아이들이 가볍게 앓는 질환들은 90%가 더러워서 걸리는 거래요. (웃음) 진짜 그렇대요. 손만 씻어도 해결되는 게 너무 많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책에 주인공은 있지만 줄거리가 없어요. 처음부터 줄거리는 생각 안 하셨어요?
네. 아이들이 따라갈 수 있게 약간의 상황 설정만 했어요. 줄거리를 위해서 지면을 쓰는 게 아까웠어요. 정보를 주기 위한 당위성 같은 거잖아요? 제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한데…… 어린 시절에도 학습만화나 생활에 관련된 내용을 동화로 포장한 책들은 재미가 없더라고요. 책은 재밌어야 하고, 만화 같은 경우도 촌철살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고 쓸 때도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맞아요. 읽고 보고 하는 데 재미가 진짜 중요하거든요. 재미랑 예쁜 거? (웃음) 만들 때도 제가 재미없으면 힘들더라고요. 기획서 쓸 때 재밌었기 때문에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었어요. ‘돈 있으면 내가 낸다’ 막 이러면서요.
취향 이야기를 하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이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네, 그렇지만 어쨌거나 모르는 상태에서 남을 맞출 수는 없잖아요. 나를 기준으로 일단은 내가 재밌어야 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린이들의 기준이 약간 황당하기는 해요. 원고를 읽혀 봤을 때, 그림 아래 캡션이 있으면 재미가 없대요. 근데 똑같은 캡션을 말풍선에 넣어서 보여 주면? 너무 재미있대요!
안 그래도 말풍선을 여쭤보려고 했어요. 독특한 유머코드가 있어요.
말풍선 중에 좋아하는 장면이 몇 개 있어요. 58쪽에 고양이가 ‘내 꼬리도 애썼어.’ 하는 거랑 55쪽에 외출한다고 자기가 직접 목줄 매는 거. 51쪽에 걷기 연습하는 장면에서 ‘네 발로 걷든가.’ 이런 것들.
다 고양이가 나오는 장면들이네요.
네. 제가 고양이랑 같이 살고 있고. 또 약간 블랙 유머 비슷한, 쓸데없는 그런 거 좋아해요.
‘일과 사람’부터 ‘자신만만 생활책’까지 계속 정보책을 만드셨어요. 노하우가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이야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좋아하는 책도 그냥 이야기책이에요. 서사가 있는 책들. 그런데 만드는 건 정보책이 재미있더라고요. 사 보진 않는데. (웃음) 노하우라면……. 저는 글줄이 길게 흘러가지 않게 계속 쪼개요. 길면 지루하니까요. 글도 쪼개고 그림도 쪼개고. 약간 어린이들을 정신없게 만드는 거? 그게 중요한 테크닉이라고 생각해요.
생각지도 못했던 테크닉이네요.
저부터도 길면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이야기책을 쓸 생각은 없으세요?
그건 정성껏 해서 되는 책은 아닌 것 같아요. 정보책은 정성 들여서 자료 수집 많이 하고, 그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야기책은 이야깃거리가 막 샘솟고, 글이 머릿속에서 계속 밀려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유의 사람이 아니니까 시도도 안 해요.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으니까요.
좋아하는 작가나 책이 궁금해요.
고미 타로나 요시타케 신스케. 재밌고 가볍게 푸는 작가를 좋아해요. 창작그림책 중에 최근에 가장 좋았던 책은 김효은 작가의 『나는 지하철입니다』. 너무너무 좋았고요. 숀 탠도 좋아해요. 숀 탠은 그림도 글도 너무 너무 좋아요. 일과 사람 만들 때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많이 봤어요. 일하다 막히면 계속 그 책을 넘겨봤어요. 그땐 그림이나 구성 위주로 많이 봤는데, 나중에 글을 천천히 읽어 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또…… 윌리엄 스타이그 좋아하고요.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도요.
‘자신만만 생활책’ 시리즈에서 앞으로 나올 책들은 또 뭐가 있나요?
음식, 안전, 옷, 가족, 소녀와 소년, 재활용, 책상, 집, 학교……. 모두 열 권짜리 기획이에요. 의식주는 기본으로 넣었고요. 가족과 학교, 아이들의 주변에서 찾았어요. 참, 집하고 책상 편은 화가가 쓰고 그리는 걸 다 해요. 화가들이 구성하면 독특한 것이 있거든요. 시각 이미지로 먼저 생각하는 사람하고, 텍스트로 생각하는 사람하고 다른 결과물이 나오니까요. 최미란 작가가 집, 이고은 작가가 책상 편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멀리 있는 애들을 좋아하죠. (웃음) 저는 애들하고 잘 노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딱 봐서 쟤가 놀고 싶다 그럴 때만 놀아 주거든요. 약간 기분이 별로라거나 낯을 가리면 가까이 안 가요. 놀고 싶어 할 때는 누가 톡 건드려만 줘도 재밌게 놀잖아요. 그럴 때 놀아 주면 막 깔깔거리고 난리가 나요. 다른 사람들은 저를 보고 ‘쟤는 애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잘 놀지?’ 그래요. 아, 참을성도 좀 있어야 되더라고요. 아이들은 계속 반복하면서 놀잖아요. 난 두 번만 재밌는데 열 번까지 참고 놀아 줘야 되니 까. 저도 큰맘 먹고 하는 거죠.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애들이 가까이에서 울고, 찡찡거리면 안 좋잖아요. 남의 애를 째려볼 수 도 없고. ‘나는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는데 이런 이율배반이 뭘까?’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좋아한다기보다 어린이는 약자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모두가, 온 지구가 잘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책을 잘 만들고, 틀리지 않게 하려고 정성을 쏟는 이유도 어린이들은 주는 대로 받기 때문이에요. 제가 만든 책이 영향을 아주 많이 미칠 수 있잖아요. 정확한 정보로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아이들에게 잘해 주는 저만의 방식이라고 정리한 거죠.
몸 : 잘 자라는 법전미경 글/홍기한 그림 | 사계절
『몸_잘 자라는 법』은 어린이들에게 제 몸을 스스로 돌보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제대로 세수하는 법, 머리 감는 법, 이를 잘 닦는 법, 눈이 나빠지지 않는 법, 손발톱을 깎는 법, 똑바로 앉고 서고 걷는 법을 자세히 알려 줍니다. 또 음식을 제대로 먹는 것, 똥을 잘 누는 것, 잠을 잘 자는 것이 왜 중요한지도 알려 줍니다.
관련태그: 자신만만 생활책, 몸, 잘 자라는 법, 편집자, 일과 사람
10년 동안 어린이책 편집자였다. 지금은 작가들을 만나 사진도 찍고, 영상 편집도 하고, 꽃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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