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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말고 사람도 민감성이 있다
『센서티브』를 읽고
이 책을 쓴 저자 본인이 민감한 사람이었다. 혼자 두 아이를 키웠는데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을 하지만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1) 남들이 언쟁을 하는 불편한 상황이 되면, 나와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긴장이 되면서 덩달아 힘들어 진다.
2) 시끄러운 쇼핑몰이나 대형서점에 갔다 오면 괜히 피곤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
3)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기준점이 높은 편인데 그걸 지키지 못하면 남들이 칭찬을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4)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거나 부탁하느니 차라리 내가 혼자 하고 만다.
이중 몇 가지라도 당신을 잘 설명하는 것이 있는가? 만일 3가지 이상이라면 당신은 민감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민감함이란 예민한 기질로 어떤 자극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평균보다 강한 반응을 보이는 ‘고반응성’을 의미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가만히 두면 차이를 알 수 없지만, 어떤 자극이 왔을 때 예상하는 반응보다 훨씬 강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두피나 피부가 민감성인 경우 화장품이나 샴푸를 민감성 피부에 맞춰 만들어진 것을 써야 하듯이, 인간도 민감성이 높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민감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내향성과는 또 다른 기질이며 적지 않은 사람이 민감하다. 전체 인구의 20%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들 민감한 사람의 70%가 내향성이니 얼추 민감함과 내향성이 함께하는 것은 맞지만 나머지 30%는 외향성을 갖는 사람이니 동의어라고 할 수 없다. 민감한 사람은 자신의 성격 특성을 잘 알고 이를 단점이 아니라 고유의 개성으로 알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자신을 소심하고 까칠한 사람으로 쉽게 지치는 존재로 여기고 살아갈 우려가 있다. 실제로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의 반 이상은 분명히 민감성이 강한 사람일 것이라 추정하게 되는데, 나도 민감함이 좋은 시기에는 신중함, 배려심, 대인관계의 반응성이 좋음으로 작동하지만 나쁜 상황에는 불안과 긴장, 지나친 타인에 대한 의식, 소심과 뒤끝, 온몸의 긴장과 부정적 전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목사이자 정신치료자인 덴마크의 일자 샌드(Ilsa Sand)는 『센서티브(Highly Sensitive People in an Insensitive World)』에서 민감한 사람들의 특성과 대처방식을 제안한다. 저자는 민감한 사람들은 타고나게 예민한 신경시스템을 갖고 있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1989년 라 가스는 신생아에게 빨대로 물을 마시게 하다가 물의 당도를 줄이면 어떤 아기는 그냥 물을 계속 마시지만 다른 아기는 매우 강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2년 후에 아기들을 추적해보니 강한 반응을 보이는 기질은 여전했고, 수줍고 조심스러운 아기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자란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인식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색해 하지 않고 도리어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사람들과 만나 에너지를 얻기보다 혼자 있으면서 자가충전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고반응성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작은 신호를 잘 잡아내서 적절히 반응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덕분에 쉽게 피곤하다. 좋은 면으로는 직관적이고 주의력이 깊고, 부모로서 자식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반응할 수 있다. 반면 사람들의 자극을 일일이 인식하고 해석하고 반응을 하느라 쉽게 탈진해버릴 위험도 갖고 있다.
이 책을 쓴 저자 본인이 민감한 사람이었다. 혼자 두 아이를 키웠는데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을 하지만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차려주는 것이 의무라는 것은 알지만 그게 큰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등교 준비를 시키고 달래서 겨우 보내고 나면 벌써 지쳐버려서 컨디션 조절이 어려웠다. 그래서 귀마개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아이들이 알아서 챙겨서 학교를 가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방법을 선택했다. 비록 에너지가 넘치는 엄마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 컨디션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맞춰 세팅을 하고 나니 도리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자신의 경험이 이 책을 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과감하게 자신에게 맞춰서 삶의 패턴을 교정하지 않으면 민감한 사람들은 죄책감과 일상적인 불안과 긴장 속에 지내게 된다. 주변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넘기지 못한다. 긴장의 임계점이 낮고 자신의 가치관이 세운 기준점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양심적이고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 높은 기준점 덕분에 자신에게 실망할 일만 늘어나고, 자아는 부정적 평가에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도한 요구에 쉽게 지쳐버리고 자아비판에 시달리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 전형적인 민감한 사람의 생각 패턴이다.
이런 악순환의 돌림노래에 빠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자는 먼저 기준점을 낮추고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여유를 줘도 절대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혼날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선순환을 만들 것을 권한다. 그래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현재를 점검할 숨통이 트인다. 지금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여길 수 있게 된다. 남의 요구에 맞춰서 반응을 해주는 시간보다 이들에게 훨씬 중요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바로 ‘자연을 즐기는 것, 창조적인 것에 몰두하는 것, 조용히 앉아서 사색하는 것, 달리기나 수영과 같이 몸에 유익한 활동, 일기를 쓰는 시간’과 같은 것이 꼭 필요하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도 “난 오늘 오후에 쉴게”라고 살짝 혼자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눈에 들어오는 인풋을 줄이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는 것도 좋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것도 방법의 하나라고 조언한다.
이런 자기 특성을 모르면 대인관계에서도 망설이다가, 타인을 의식하다가 원치 않는 행동을 하거나, 질질 끌려가다가 후회하기 십상이다. 이럴 때 다시 죄책감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데, 갈등에 처하며 부정적 생각을 하기 싫어서 일단 회피하기 쉽다. 이럴 때 불편함이 느껴지고 긴장이 된다면 분노가 자신을 향하는 것은 일단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타인이 나를 싫어하고 떠날까 봐 하지 못하던 감정의 객관적이고 중립적 표현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당신의 친절한 말이 듣고 싶어.”
“우리는 정한 날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당신이 그런 표정으로 지켜보는 게 나는 기분 나빠.”
이렇게 말을 해도 절대 큰 관계의 단절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감한 사람들은 상대의 조금 큰 반응에 휩쓸려 버릴까봐 무서워서 그동안 이런 감정의 반응을 하지 못한 채 그 폭탄을 모두 안고 살아온 것이다. 이런 방식은 그렇지 않아도 민감한 사람의 자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과도한 짐을 지고 가게 만든다. 곧 탈진상태에 빠지고 만다.
“나는 이래야 한다”는 의무감(should)의 표현을 “내가 만일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자기판단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너는 나를 도와야 해”라고 말하면 안 들어주면 큰 상처다. 그러나 “네가 나를 많이 도와주면 참 좋을 텐데”라는 희망형(wish)으로 바꾸면 민감한 사람은 안전하고 바람직하게 자기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여전히 슬프고 민감한 기질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훨씬 편안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민감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자기연민으로 시작하는 자존감의 회복이다. 자주 자신을 위로하고 “이 정도면 잘한 거야”라는 칭찬과 위안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나는 정말 더 잘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어. 그렇지만 이 정도도 괜찮아”라는 말을 나에게 할 수 있는 위로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이런 민감한 특성이 결함이 아니라 일종의 능력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민감함은 결함이나 정신병리가 아니다. 5명 중에 1명이 갖고 있는 심리의 한 특성이다. 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정상성의 범위를 넓히면서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며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들을 알아, 맞춤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다들 각자 자기 사는 방식이 있는 법인데 이 시끄럽고 에너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민감한 사람들이 자칫 금방 소진되어버리거나 부적응자로 보이기 쉽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센서티브일자 샌드 저/김유미 역 | 다산3.0
덴마크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일자 샌드는 ‘민감함은 결함이 아니라 신이 주신 최고의 감각’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신작이자 출간 즉시 전 세계 민감한 사람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센서티브』는 세계적인 과학 잡지 [뇌와 행동]의 극찬을 받았으며, 19개국에 동시 출간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일자 샌드> 저/<김유미> 역16,2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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