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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한층 깊어진 배우 안재영

작품마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안재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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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연습 들어가기 전에 감을 되살리려고 오랜만에 <라흐마니노프> 공연 영상을 봤는데 ‘왜 이렇게 뭐가 많이 들어가 있지? 뭘 이렇게 더하려고 했지?’ 생각하면서 대본을 다시 읽어봤어요. 분명히 그때는 최선을 다해서 했을 텐데, 제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그사이 연기가 늘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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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연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창작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6개월 만에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앙코르 무대를 마련합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발표되기까지 오랜 슬럼프를 겪어야 했던 음악가 라흐마니노프와 그를 치유한 정신의학자 달 박사의 이야기를 담은 2인극으로, 위로가 있는 이야기와 감동적인 음악이 더해져 객석을 뜨겁게 달궜던 작품인데요. 이번에도 라흐마니노프 역에 박유덕, 안재영, 달 박사 역에 김경수, 정동화 씨가 캐스팅돼 다시 한번 따뜻한 무대를 선사할 예정입니다. 특히 안재영 씨에게는 <라흐마니노프>가 첫 2인극에 첫 타이틀 롤인만큼 더욱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작품마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안재영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맞아요, 2인극은 <라흐마니노프>가 처음이고 타이틀 롤이기도 하네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것도 처음이에요(웃음).”

 

창작뮤지컬인 데다 초연부터 참여했으니 작품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잘 아실 것 같아요.


<라흐마니노프>는 제작진이며 배우며 모두가 하나가 돼서 만들었어요. 손때가 참 많이 묻은 작품이죠. 연습을 다시 시작할 때 오세혁 연출님이 ‘그대로가 좋지만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더블 캐스팅으로 한 달 동안 했으니 익숙해진 면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더 예민하고 신중하고 섬세하게 가자는 말씀을 하셨어요.”

 

객석에서 수많은 기립박수를 접해봤지만, <라흐마니노프> 초연 당시 객석 반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깊은 감동에서 스며 나오는 정말 뜨거운 박수라고 할까요?


“행복했어요. <라흐마니노프>는 어떻게 보면 무척 잔잔하고 심심한 작품이에요. 음악가의 이야기라지만,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은 공간에 있어주고 만져주고 위로해주는 이야기잖아요. 극으로 만들면 얼마나 재미없어요. 그런데 재미없다고 뭔가를 집어넣지 않고, 온전히 더 따뜻하게 들어주고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극으로 만들어서 많은 관객들이 위로를 받으면서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HJ컬쳐에서 워낙 대단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많이 올렸습니다만, 실존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배우로서는 큰 부담일 것 같습니다.


“그렇죠. 나로 인해 인물이 왜곡되거나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스스로도 그 인물의 무게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서 어려워요. 그런 부담을 느낄 때마다 그들도 사람이고, 아파했고, 배도 고팠을 것이고... 좀 더 소박하고 인각적인 모습에서 출발하려고 했어요.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부담감과 존경심, 죄송함 같은 감정이 있지만, 극에 들어가면 라흐마니노프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인물이라는 점에 집중했어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비롯해 ‘보칼리제’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비해 인물 자체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은데, 캐릭터는 어떻게 잡아갔나요?


“연습 들어가기 전에는 인물에 대해 공부도 하고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음악을 사랑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도 많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글보다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더 많이 이해했던 것 같아요. 어떤 음악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따뜻한 곡들도 많더라고요. 이 사람 깊은 곳에는 이런 따뜻함도 있구나... 하지만 저희 작품은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어떤 해석을 가지고 픽션을 더해 극화한 것이니까 무엇보다 대본에 가장 집중했죠.”

 

극중 실제로 피아노 연주를 하시잖아요(웃음).


“연극 <히스토리보이즈>를 하면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라흐마니노프 곡이 살짝 나와요. 원래 피아노를 배웠던 게 아니라서 연주 실력을 얘기할 정도는 아닌데, 다행히 이 작품이 ‘라흐마니노프의 얼어붙은 3년’을 다루고 있어서 피아노를 감히 치지 못하는 설정이거든요(웃음). 1번 교향곡의 실패로 피아노 뚜껑도 닫혀 있잖아요. 마지막에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는 과정에서는 연주를 좀 해야 하니까 잘 치려고 연습은 많이 했죠.”

 

달 박사의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던데, 2인극이니까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무대에서 만나는 두 달 박사는 어떤 느낌인가요?


“두 분이 캐릭터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데 상대 배우로서 느끼기에는 많이 달라요. 경수 형은 뜨겁게 접근하는 느낌이라면 동화 형은 차갑게, 색깔로 비유하자면 빨간색과 파란색 같다고 할까요? 동화 형은 냉소적인데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이고, 경수 형은 따뜻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데 화나면 무척 무서운 그런 느낌이에요. 달 박사도 매력적이라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벤트 차원으로 역할을 바꿔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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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라흐마니노프가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어서 교향곡 1번이 실패한 것으로 표현됩니다. 연기와도 비슷해서 배우들도 많이 공감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늘 공감해요. 이번에 연습 들어가기 전에 감을 되살리려고 오랜만에 <라흐마니노프> 공연 영상을 봤는데 ‘왜 이렇게 뭐가 많이 들어가 있지? 뭘 이렇게 더하려고 했지?’ 생각하면서 대본을 다시 읽어봤어요. 분명히 그때는 최선을 다해서 했을 텐데, 제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그사이 연기가 늘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6개월이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초연 멤버가 그대로 다시 모이면 성장이라고 할까요? 반년 사이 또 달라진 점들이 보일 것 같아요. ‘나는 어떻게 살았나’ 돌아보게 되고요.


“그렇죠, 이 작품으로 만나서 어떻게 보면 잠시 떨어져 지낸 거잖아요. <드래곤볼>로 치자면 다음 검술대회 때 만나자고 헤어진 뒤 각자 수련을 했겠죠. 대회에서 다시 만나면 ‘검이 빨라졌는데?’ 등등 성장이 느껴질 거예요. 저는 <라흐마니노프> 초연 이후 20일간 혼자서 일본 여행도 다녀왔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통해 연기에 대해 다른 고민도 하게 됐고, 다른 분들도 각자 열심히 살아왔을 테니 분명히 모두 한 단계 성장한 상태에서 만나게 될 거라 생각해요. 그럼 이 무대가 또 얼마나 깊어질까 기대도 되고요.”

 

안재영 씨와는 2014년 연말 연극 <취미의 방> 때 만난 이후 인터뷰로는 2년 만인데, 그러고 보니 그사이 독특하고 좋은 작품에서 참 다양한 역할을 하셨네요. 3월에는 연극 <나쁜자석>에도 참여하시잖아요.


“네,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죠. 제가 꽃미남도 아니고 사실 두루뭉술하고 밋밋하게 생겼는데... 이런 제 외모가 좋긴 해요. 배우로서의 모토도 ‘어떤 역할이든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한다!’거든요. ‘나는 햄릿 이미지는 아니야’ 라며 스스로 틀 안에 가두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작사나 연출가 입장에서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배우를 캐스팅하겠지만, 저는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나는 사랑받는 음악가입니다. 새로운 곡을 쓰면 관객들이 나를 사랑해 줄 겁니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게 하잖아요. 안재영 씨는 2017년 스스로에게 어떤 암시를 하고 있나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공연이 어떻게 보면 반복이라서 그만큼 성장도 있겠지만 저도 모르게 소홀해지는 면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무대에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기를 공부하는 것도 소홀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현재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사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이 힘들다면 그 고통마저 느끼면서 살아보자, 그게 희망사항이에요.”

 

초연 당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보며 위로를 얻고 희망의 자기암시를 했던 관객 여러분은 지난 6개월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간 열심히, 다채롭게, 더욱 깊어진 모습으로 무대를 지켜온 안재영 씨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기자 역시 지난 반년, 아니 안재영 씨를 처음 만난 이후 지나간 2년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얼마나 성장했나, 상처는 치유됐나... 모두에게 그 어느 때보다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지금,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선사하는 감동을 경험해 보시면 어떨까요. 위대한 음악가 라흐마니노프가 아니라 좌절하고 아파했던 또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말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곁들여진 넘버는 현악 6중주의 연주로 초연 때보다 더욱 풍성하게 극의 감동을 더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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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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