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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편지를

그래, 가장 친한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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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 중이다. 이것이 『디어 존, 디어 폴』이나 『가장 사소한 구원』처럼 서간집 형태의 책으로 만들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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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소설 『나의 남자』를 출간하고 다음에 쓸 책을 고민해보았다. 막연히 이번에는 에세이를 써야지 생각해보았다. 에세이도 주제나 형식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연이어 라종일과 김현진이 공저한 『가장 사소한 구원』 그리고 소설가 폴 오스터와 존 쿳시가 공저한 디어 존, 디어 폴』을 읽게 되었다. 『가장 사소한 구원』은 배경이 너무 다른, 전직 외교관인 70대 노신사 라종일과 30대의 당찬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일년동안 주고받은 32통의 편지들을 담았고, 디어 존, 디어 폴』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존과 폴, 두 사람이 스포츠, 영화, 문학, 정치, 경제, 국제시사 문제 등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편지들을 모았다. 서간집을 이렇게 연달아 읽다보니 나도 문득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다섯 살부터 대학입학 전까지 나는 이삼년에 한 번씩 아버지의 직업때문에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며 살아야했다. 그래서 늘 ‘전학생’ 신세였고 매번 때가 오면 헤어져야 했던 친구들과 눈물의 작별을 하며 편지를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초등학생때부터 고등학생때까지 친구들과 주고받은 AIR MAIL 편지들이 한 가득 쌓였고 그것들은 지금도 고스란히 커다란 보관함에 간직되어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연애편지를 참 많이도 썼다. 주로 캠퍼스 커플이었던지라 학교에서 매일 보는데도 뭐가 그리 또 할 말이 많은지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 다 잠든 후 조용히 몰래 편지를 써서 다음날 만나면 전해주곤 했다. 물론 그 연애편지들도 빠짐없이 보물처럼 잘 간수하고 있다. 다시 읽어보면 닭살이 돋긴커녕 당시의 순수한 마음이 애틋해서 매번 감동받곤 한다. 부디 편지를 써주었던 그 남자애들이 지금도 무탈하게 잘 살아주기를 기원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편지’는 본래의 가치를 상실했지만 나는 예전부터 전화통화나 직접 만나 대화를 하기보다 편지와 같은 간접소통을 편애했다. 정성이 들어가고, 한번 더 생각을 해본 후 쓸 수 있고, 무엇보다 세월을 거슬러 그 존재가 남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지금도 이메일함에 새 이메일이 도착해있거나, SNS 쪽지함에 새 쪽지가 도착해있으면 찰나의 흥분과 즐거움을 느낀다. 어떨 때는 불과 삼십 분 전에 체크했는데도 그새를 못참고 또 이메일함을 맴돌고 있다. 편지는 중독성이 있다.
 
누구와 편지를 주고받지? 잠시 고민했는데 쉽게 답을 찾았다. 깊은 속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상대여야만 했다. 그래, 가장 친한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자. 나의 ‘베프’는 현재 홍콩에 산다. 기업환경에서 이메일이 사용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에 이미 우리는 일년간 이메일 서간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둘 사이에 주고받은, 우리의 20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메일편지들을 모두 출력해 두 권의 두툼한 책으로 만들어서 나눠가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이십년 후, 우리는 40대가 되어 이렇게 다시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어떤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이참에 서로의 거울이 되어 우리들이 체득하고 잃어간 많은 것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40대에 ‘불혹’이 되기는커녕 여전히 흔들리고 한치 앞이 안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신뢰하는 사람과의 깊은 대화는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에 대한 방향감각도 예민하게 해주더라.
 
벌써 두 달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 중이다. 이것이 디어 존, 디어 폴』이나 『가장 사소한 구원』처럼 서간집 형태의 책으로 만들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20대때 그저 소통하기 위해 치열하게 썼듯이 우리는 제3의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우리가 쓰면서 즐겁고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찌 되든 봄날에 쓰는 편지란 아련하고 기분 좋은 법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편지를 받아보거나 써본 적은 언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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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존, 디어 폴폴 오스터,J. M. 쿳시 공저/송은주 역 | 열린책들
폴 오스터와 J. M. 쿳시의 서간집 『디어 존, 디어 폴』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노년에 접어든 두 작가는 편지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논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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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라종일,김현진 공저 | 알마
대한민국 1퍼센트라 불리는, 이른바 성공적인 엘리트 코스를 밝아온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와 10대 시절 《네 멋대로 해라》를 출간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자칭 집도 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에세이스트 김현진. 겹치는 데라고는 전혀 없는 30대 ‘날백수’와 멋스러운 70대 노교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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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경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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