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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인터뷰

열여섯 번째 문제. 이미지와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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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다 보면,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내뱉은 말 속에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존재가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참혹해지고, 사소해진다. 나는 내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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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뭐라도 되겠지』 출간 후 <채널예스> 인터뷰를 했을 때. 나는 나였을까?

 

열여섯 번째 문제. 이미지와 실체


<문제>

 

다음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책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빈칸에 알맞은 문장을 골라보세요.

 

인터뷰는 어떤 기능을 할까요?

 

우리는 왜 인터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인터뷰를 읽는 것일까요? 영화 상영 후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나 강연회에서 관객의 질문을 받을 때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싶어서 몇 분씩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인터뷰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인터뷰이에게 “나 좀 봐주세요” 하는 듯한 질문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 (중략) …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은 “극 영화에서는 감독이 신이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신이 감독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터뷰라는 장르는 독립 다큐멘터리적 속성이 많습니다. 그러니 인터뷰어는 인터뷰의 속성을 제대로 아는 것 못지않게 (            )도 갖추어야 하겠지요.

 

1) 여러 가지 돌발 상황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과 임기응변
2) 사실적인 상황을 만들어낼 줄 아는 연출력과 다양한 장면을 편집할 줄 아는 능력
3) 이 나라의 독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암기력
4) 히치콕의 영화를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시력
5) 상황을 일부러 연출하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게 하는 인내력

 

 

<해설>

 

음식 잡지 기자로 일할 때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은 ‘섭외, 녹취 풀기, 잡지에 실리는 식당 전화번호 확인하기’에 이르는 ‘공포의 쓰리 콤보’였다. 평소 발음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자주 받아왔던 터라 전화를 하기 전에는 목청을 가다듬었고, 가갸거겨고교구규를 반복하면서 발음에 신경 쓰며 아무도 없는 옥상으로 가서 섭외 전화를 걸었다. 열심히 발음 연습을 했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여전히 많았고, 섭외 타율도 높지 않았다. 섭외에 성공한 후 옥상에서 피우는 담배 한 대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녹취 풀기는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부터 곤욕이었다. 재생, 뒤로 감기, 재생, 뒤로 감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을 확인하는 몇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되곤 했다. 잡지 발행 직전에는 전화기를 붙들고 살아야 했다. 잡지에 실리는 모든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잘못된 전화번호가 실리는 경우도 가끔 있었고 (이럴 때면 식당이나 독자들에게 항의를 받게 된다) 취재가 끝난 직후 식당이 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음식 잡지 기자를 그만둔 후로도 종종 인터뷰를 했다. 그럴 때마다 녹취 풀기가 가장 힘들었다. 녹취 푸는 작업을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녹취를 풀면서 기사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 나간다. 남에게 맡길 수 없는 과정이다. 녹취를 푸는 게 괴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아, 여기서 추가 질문을 하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대목을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어서 추가 질문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허점투성이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다짐한다. 다음에는, 꼭, 반드시,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가겠다고. 다짐은 늘 창문에 번지는 입김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인터뷰어였던 시절이 지나가고, 이제는 인터뷰이가 되는 일이 더 잦다. 책을 낼 때 이외의 인터뷰는 거절하는 편인데, 인터뷰가 무섭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어가 A라고 물어서 나는 3이라고 대답했다. B라고 물었을 때는 8이라고 대답했고, C의 질문에는 12라고 대답했다. 잡지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는 기분이 많이 언짢아졌다. 인터뷰어가 자신의 질문을 바꾼 것이다. A 대신에 Y를 넣었고, C 대신에 V를 넣었다. 답은 똑같은데 질문이 바뀌었다. 인터뷰어는 자신이 바보 같아지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질문을 바꿔서라도 자신의 바보 같은 모습을 감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건 반칙이다.

 

좋은 인터뷰도 많았지만, 나쁜 인터뷰가 더 많았다. 나쁜 인터뷰가 더 많은 것은, 나쁜 인터뷰어였던 지난 시절에 대해 벌을 받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쁜 질문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이제 와서 나쁜 질문을 그렇게 많이 받는 거겠지. 나쁜 인터뷰를 여러 번 겪고 나면 말을 하기가 두려워진다.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인터뷰에 대한 명언이 있다.

 

“나는 매스컴의 관심이 싫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인터뷰를 해왔지만 시간 낭비였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에 내 이름을 달고 나인 척 나오는 남자는, 대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웬 비열한 놈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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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다 보면,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내뱉은 말 속에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존재가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참혹해지고, 사소해진다. 나는 내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일 뿐이다. 인간을 9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에니어그램’을 다룬 책 『에니어그램의 지혜』를 읽다가 나 자신을 들킨 것 같았다. 나는 4번 유형에 속하는데, 4번 유형에 대한 설명으로 이런 글이 있다.

 

4번 유형은 부정적인 자아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대체로 낮은 편이다. 이들은 환상 속의 자아(자신의 상상 안에서 만들어 낸 이상적인 자아 이미지)를 개발함으로써 보상하려 든다. 우리가 아는 어떤 4번 유형의 남자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이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는 상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불행히도 자신의 환상 속의 자아 이미지를 충족시키기에는 피아노 실력이 너무 모자라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연주를 해 달라고 부탁할 때는 무척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제 능력이 그에게는 수치심의 원천이었다.

 

4번 유형은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방식, 기호, 다른 사람으로부터 발견한 자질을 기초로 여러 가지의 다양한 정체성을 취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이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문제는 이들이 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감정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4번 유형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변화무쌍한 감정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에는 인터뷰 전문가들의 명언이 등장한다. 지승호 씨가 만났던 사람들, 읽었던 책 속의 이야기들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그중에서 김어준 씨의 이야기가 나를 찔렀다. “어이, 거기, 4번 유형!” 하면서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보통은 인터뷰를 하거나 당하기만 하는데, 저는 양쪽을 왔다갔다 많이 해봤어요. 그러면서 깨닫게 된 인터뷰어가 지켜야 할 몇 가지 코드가 있는데,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게 그 사람을 만나야지,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나면 안 된다는 거거든요. 인터뷰가 겉돌거나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흐르는 경우, 그건 십중팔구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해 가진 선입견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아 그 사람의 실체를 만나는 게 아니라 그 이미지만 만나기 때문이죠.

 

4번 유형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혹은 되었다고 생각하는 가상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그 이미지를 만드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미지’와 내가 점점 분리될 때다. 나는 잘 살고 있지 못한데, ‘잘 살고 있는 이미지의 나’로 자신을 세뇌시킨다면, 언젠가 두 극단 사이에서 존재가 갈갈이 찢어지고 말 것이다.

 

어떤 인터뷰는 인터뷰이를 바꾸기도 한다. 나를 송두리째 바꾸는 인터뷰를 하고 싶기도 하지만, 아직은 겁이 난다. 그런 순간이 올까. 지승호 씨의 책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을 읽고 나면 인터뷰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섭외 비법도 나와 있던데, 이런 책이 진작에 나왔으면 마음 고생을 좀 덜했을 텐데. 문제의 정답은 이미 밝혀진 것 같다. 1번이다. 개인적으로는 5번이 좀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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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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