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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려는 자, 경찰서로 가라
마이클 코넬리의 고군분투
마이클 코넬리가 추리소설을 써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상을 모조리 받고 ‘경찰소설이라는 장르를 재탄생시킨 작가’로 세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 자체가 이런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완전히 포기했지만 나도 습작이랍시고 추리소설(경찰소설이나 탐정소설이나 범죄소설로 바꿔 읽어도 상관없다)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제대 후에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이렇다 할 대책이 떠오르지 않자 ‘소설이나 한번 써볼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 나와 비슷한 인간이 두 명 더 있어서 어렵지 않게 팀을 만들 수 있었다. ‘팀’이라고 하니까 말이 거창한데 별것도 아니다. 마감일을 정하고 각자 단편소설을 쓰고 약속한 날에 모여서 서로의 소설을 읽고 돌아가며 강평하고 마치고 나면 술 마시는 그런 모임이다. 내 책상 옆에 꽂혀 있는 책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신경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여서 습작을 읽고 쓰던 당시가 떠오른다. 즐거웠다. 쓰는 일이. 문제는 아무리 써도 전혀 늘지가 않는다는 거였지만.
그때 내가 두 사람으로부터 자주 지적받은 대목이 몇 가지 있다. 많은데 두 개 정도로 대폭 축소해서 얘기해 볼작시면, 하나는 매번 범인의 자백으로 사건을 해결했다는 거다. 이야기의 막판에, 그냥 총으로 여자를 쏴버리고 가버려도 무방할 범인이 ‘내가 왜 그랬는지 안 궁금해? 궁금하지? 알려줄까? 그래,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알려주지, 흐흐’ 하는 식으로 자신의 범죄를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탐정(혹은 경찰)에게 붙잡혀 사건이 해결된다는 설정이다. 즉 독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해주는 건데 무슨 <경찰청 사람들>의 해설자도 아닌 마당에 범인이 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잡혀가느냔 말이다. 그야말로 셜록홈즈가 왓슨이라는 ‘독자’에게 요점정리를 해주는 수법이 먹히던 시절에나 써먹을 수 있는 싸구려 장치였건만, 나는 늘 그걸 요령 있게 처리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다른 하나는, 툭하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장면을 훔쳐왔다는 거다. 이를테면 경찰이 현장감식을 하는 장면은 <CSI>에서 갖다 쓴다거나 형사가 범인을 추격하는 장면은 <더티 해리>에서 가져다 쓰는 식이다. 축적된 지식이나 경험이 없으니까 공부와 취재가 병행되어야 했지만 ‘공부는 귀찮고 취재는 어려우니까 FBI든 CIA든 대충 갖다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자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의 절차도 모르고 범죄현장은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으면서 무슨 추리소설을 쓴단 말인가. 그런 건 ‘도리모노쵸(일본 에도시대의 추리소설)’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제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지식이나 경험이 일천하면 이 장르의 글을 쓰는 건 무리다’라는 것이 내가 소설 쓰기를 포기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소설 어쩌고 하는 타령을 일찌감치 접은 건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마이클 코넬리의 글을 읽으며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무려, 추리소설가라는 꿈을 위해 기자가 됐다는 인간이다. 시작은 열여섯 살 때부터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레스토랑에서 새벽 무렵에 일을 마치고 인적이 끊긴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던 그는 수상한 남자를 목격한다. 남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무언가를 둘둘 말더니 인도 곁에 있는 산울타리 안에 쑤셔 넣고 몇 블록을 뛰어서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남자를 따라가던 코넬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몇 블록을 되돌아와 산울타리에 손을 넣어 티셔츠를 꺼내보았다. 둘둘 말린 것은 총이었다. 그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근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쓰인 무기임을 밝혀냈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경찰이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코넬리는 생각했다.
이후로 범인이 잡혔다는 기사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대신이라고 할까 범죄 관련 기사는 잔뜩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범죄 기사와 범죄 실화 서적과 범죄소설에 빠져들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은 결정적인 방아쇠가 되었다. 챈들러의 소설을 모조리 탐독한 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이유는, 신문사에 취직해 경찰출입기자가 되면 자신이 소설가가 되기 위해 꼭 알아두어야 할 세계(이를테면 경찰서)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영감을 얻으려고 자신의 문학적 영웅들(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이 살았던 로스앤젤레스로 집까지 옮겼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면접을 보던 날 면접관은 당일 게재된 은행강도 기사를 보여주며 “당신이라면 후속기사를 어떻게 쓰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때의 대답으로 그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경찰출입기자가 된다. 그리고 이때의 대답을 토대로 훗날 데뷔작인 『블랙 에코』를 집필한다. ‘해리 보슈’ 시리즈의 1편인 이 책의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이다.
경찰출입기자로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코넬리는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하여 열심히 소설을 썼다. 자신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힘이 닿는 데까지 사건 현장에서의 경험을 기록하고 수사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쌓아나갔다. 한창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활약하던 당시에 쓴 기사들을 엮은 논픽션 『범죄의 탄생』 서문에 코넬리는 이렇게 적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이 모든 순간들이 필요했다. 경찰과 살인범들과의 경험, 그리고 범죄담당 기자로 보낸 나날들은 소설가로서 소중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일단 범죄담당 기자가 되지 않았던들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먼저 진짜 형사들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면 해리 보슈라는 허구적인 형사에 대해서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살인범들과 얘기를 나눠보지 않았다면 내 나름의 살인범들을 창작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때, 그러니까 윌키 콜린스나 코난 도일이 활약하던 시절에는 작가의 전문가적 경험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수천 권의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수사의 절차 따위는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경찰들의 수사가 실제 수사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도 멋지게만 보이면 됐던 것처럼, 당시의 독자들은 리얼리티가 옅은 작품에 오히려 더 열광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함께 추리소설의 플롯과 트릭은 점점 고도화되었고 그에 발맞추어 추리소설 독자들의 시선도 높아졌다. 마이클 코넬리가 추리소설을 써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상을 모조리 받고, 거의 모든 추리소설 작법서의 저자들이 ‘마이클 코넬리처럼 쓰라’는 조언을 하고, 마침내 ‘경찰소설이라는 장르를 재탄생시킨 작가’로 세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 자체가 이런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마디 덧붙이건대 한국에도 ‘경찰 전문가적 추리소설가’가 한 명쯤 나타나 주면 좋겠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바람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출입처인 00 경찰서에 상주하며 범죄 기사를 작성하고 있을 박훈상 기자가 쓰면 아주 잘 쓸 것 같은데 말이지. 이 글 보고 생각 있으면 연락 한번 주시라. 박 기자가 추리소설을 쓴다면 얼마든지 북스피어에서 출간할 용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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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