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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프 오프 치킨(Bump Of Chicken), 전작을 넘어섰냐면 글쎄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 <Butterf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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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본 적 없는 색의 빛을 발견했다는 것. 대신 그것이, 전작들을 넘어서는 영롱함을 발하지는 못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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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답잖은 변명부터. 리뷰가 다소 늦어진 것은 글쓴이의 게으름에도 이유가 있지만, 처음 들었을 때의 인상이 별로였던 탓이 더 컸다. 범프가 이런 앨범을 낼 리가 없어. 그런 생각으로 감상에 감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발매일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나있더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같은 음색, 같은 멜로디, 같은 악기소리가 던져주는 파장의 중첩이 한두 번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어떤 오로라를 만들어 냈나요. 여기서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본 적 없는 색의 빛을 발견했다는 것. 대신 그것이, 전작들을 넘어서는 영롱함을 발하지는 못한다는 것.

 

작품은 전작의 연장 선상 위에 서 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프론트맨 중심의 밴드에서 네 명의 공동체로 변화해 가는 그 외견이다. 전반적인 작업은 ‘본인이 고민하기 전에 먼저 멤버들과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풀어나갔으며, 후지와라 모토오(藤原 基央)를 제외한 세 명의 높은 편곡 참여도는 범프라는 캔버스에 이제껏 없던 빛깔의 물감을 덧칠한다. 「ray」에서 감지된 변화의 바람은 더욱 풍속을 올려, 앞에 있는 안개를 걷어 냄과 동시에 이들이 향하는 곳의 풍경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역시 키 트랙은 「Butterfly」다. 「ray」에 비해 더욱 현란해진 신시사이저 루프가 고유의 가사와 멜로디를 만나며 발하는 열량이 손끝 저리도록 다가온다. 낯설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을 정도의 온도. 딱 그만큼의 따뜻함은 전자음과 오토튠이 만나 기묘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パレ一ド(parade)」에서도 느껴지는데, 두 곡 모두 골수 팬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질의 노래들이기도 하다. 컨트리에 가까운 어쿠스틱 사운드에 공간을 넓게 아우르는 퍼커션을 조화시킨 범프식 민요 「孤獨の合唱(고독의 합창)」과 앞으로의 각오를 담은 가사가 디스토션과 16비트 리듬이 만들어내는 궤도를 멋지게 장식하는 「Go」까지. 이곳저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이것이 과연 내가 알던 그들이었는가 싶은 결과물들이다.

 

나머지 반쪽엔 익숙한 일면이 담겨있다. 후렴구가 끝나는 순간에 엇박의 스네어와 맞물리며 절정으로 치고 올라가는 진일보한 구성의 「Hello, world!」와 타이트한 리듬과 반짝반짝 빛나는 노랫말이 정체성의 정중앙을 가리키는 「寶石になった日(보석이 되었던 날)」은 그야말로 그간 보여준 그들 자체. 「流星群(유성군)」과 「コロニ一(Colony)」와 같은 전매특허 발라드에도 역시 그 기운이 서려 있다. 잠시 혼란스러웠던 팬들은 아마 이 구간에서 평온한 정신세계를 맞을 수 있을 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의욕적인 시도와는 별개로 송라이팅의 날카로움이 무뎌졌다는 인상이 강하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사운드나 편곡, 구성의 사용은 분명 진화를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최근 보여준 대중 친화적 행보의 근간을 이뤄야 할 선율의 매력이 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점은 아무래도 아이러니하다. 가사 역시 초기에 비하면 자연스러움에서 그 맛이 덜한 편. 본인의 감각이나 사상이 변했음에도 애써 예전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것이 마음에 와 닿는 정도엔 분명 확연한 차이가 있다. 20년 동안 그가 변한 것인지 듣는 이가 변한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공유해 온 그 세상이 균열의 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인 듯싶다.

 

그들은 변했다. 이 문장은 한 치의 오류 없는 명제다. 그렇다고 그것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를 굳이 지금 따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더그라운드의 왕자를 표방했던 그들은 어느 샌가부터 메인스트림의 조류를 적극적으로 타기 시작했고, 이에 발맞춰 시작된 음악스타일의 변화는 <RAY>(2014)를 거쳐 이번 작품을 통해 그 탈피를 끝마쳤다. 무지의 영역이 실존하는 개체와 부딪히며 파생되는 새로운 세계. 20년 가까이 쌓여온 그 잔상이 발목을 잡아채는 지금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이 행보가 과연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여유를 두고 지켜보는 것뿐. 과연 변화의 끝에서 맞이하게 될 범프 오브 치킨의 진화형이란 어떤 것일지. 조금은 불안 불안한, 또 조금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2016/03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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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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