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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팝(Iggy Pop), 연륜으로 중무장한 노장

이기 팝(Iggy Pop) - 〈Post Pop D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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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종잡기가 어렵다. 그만큼 기묘한 앨범이다. 작품에는 아트 펑크의 분위기까지 은근하게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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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종잡기가 어렵다. 그만큼 기묘한 앨범이다. 직선적인 록을 구사하는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리더 조시 호미와 협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처음 공개됐을 때 예상했던 보통의 개러지 록, 하드 록 음악과는 꽤 거리가 멀다. 앨범이 주는 느낌은 오히려 데이비드 보위와 작업했던 베를린 시절의 <Lust For Life>, <The Idiot>에 가깝다. 작품에는 아트 펑크의 분위기까지 은근하게 서려 있다.

 

상반되는 두 특성이 함께 뒤섞여 앨범을 특별하게 만든다. 우선 음반은 정말 차분하다. 내달리는 곡이 하나라도 있을 법한데 도통 그렇지 않다.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 혹은 조시 호미 식의 로큰롤이 배어있는 「In the lobby」가 가장 로킹한 곡에 해당하나, 스투지스 시절서부터의 모든 이기 팝을 함께 고려해보면 그리 썩 강렬하지만도 않다. 전체를 한번 훑어보자. 「Break into your heart」로 어두운 색감의 묵직한 공기를 뿜어내더니 이내 그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음반의 마지막 「Paraguay」에 이를 때까지 한없이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음악의 전면에 있는 이기 팝의 크루너 보컬은 너무 가라앉은 나머지 심지어는 지적으로 들릴 정도다. 그 뒤를 따르는 조시 호미의 기타 리프와 악틱 몽키스의 드러머 매트 헬더스의 드럼 라인 역시 절대 과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앨범에는 상당한 완력 또한 감지된다. 첫인상이 아무리 낯설다 하더라도 <Post Pop Depression>은 결국 이기 팝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 트랙 리스트 전반을 뒷받침하는 밀도 높은 에너지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Break into your heart」의 루즈한 스토너 풍 기타 리프와 「Sunday」, 「Gardenia」의 펑크적 사운드, 「In the lobby」, 「German days」의 매서운 그루브는 음악을 꾸준하게 밀고 나간다. 이뿐일까. 죽음과 고통, 공포, 사랑을 냉소적으로 다룬 텍스트를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이기 팝은 「American valhalla」와 「Sunday」 즈음에서 힘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급기야 「Vulture」에 이르러서는 예의 「I wanna be your dog」, 「Fun house」에서처럼 날카롭게 소리치기도 한다.

 

완급 조절이 훌륭하다. 앨범에는 단순한 일변도적 접근이 없다. 침잠하는 색감을 외부에, 작품을 끌고 나가는 록 사운드를 내부에 배치시키며 작품 특유의 정적인 기조를 조성하면서도 이따금씩 트랙 한 가운데서 두 요소의 위치를 교차시키며 동적인 이미지도 만들어낸다. 이 재미있는 접근은 <Post Pop Depression>을 통상의 지점에서 조금은 벗어난 멋진 개러지-펑크, 하드 록 음반으로 탄생시킨다. 게다가 이기 팝과 그의 어린 친구들은 베를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들만의 터치를 곳곳에 이식하기도 한다. 「Gardenia」의 메인 리프를 형성하는 크라우트록 풍의 기타 드론, 「Vulture」의 배경을 만드는 극적인 분위기, 다수의 곡에 장착한 보컬 코러스와 잔향감 가득한 텍스처는 그 무렵 데이비드 보위의 주요한 전법이었다. 덕분에 트랙 리스트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함께한 개러지와 펑크, 하드 록, 아트 펑크의 여러 인자와 음침한 색감이 교차해 갖은 마력을 자아내는 <Post Pop Depression>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긴장감은 이 앨범의 가장 주요한 매력일 테다. 노화를 거부하고 뻔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낸 평크의 대부에게 감탄이 먼저 쏟아진다. 이와 함께 프로듀서로서 음반의 뼈와 살을 함께 만든 조시 호미에게도 높은 평가가 따라야겠다. <...Like Clockwork> 이후 예술적으로 한 차례 진화한 이 천재의 역량 또한 결과물을 예사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했다. 연륜으로 중무장한 노장과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젊은 아티스트들이 만나 무시무시한 작품을 내놓았다. 아티스트의 아우라를 1977년 그 언저리만큼이나 강하게 만드는 2016년의 수작이다.

 

2016/03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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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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