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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노랫말도 음악도 감동이 없다
싸이(Psy) < 칠집싸이다 >
익숙한 동시에 낯설다. 익숙한 원초적 흥은 살아 숨쉬지만, 날 것 그대로 투박하던 가사는 'B급 모양'으로 세공된듯 싱거워졌다.
'단군 이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란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2012년 「강남스타일」에서 촉발된 '싸이 광풍'은 그 해 음악계는 물론 이후의 자기 자신까지 집어삼켰다. 당초 계획했던 6집의 Part.2는 발매가 무산됐고, 지난해 여름 싱글로 공개하려던 「Daddy」는 정규 앨범으로는 3년 반만에 발매된 < 칠집싸이다 >에 수록됐다. 이토록 먼 길을 돌아온 앨범이건만 음반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모양새다. 신보에서는 통쾌한 풍자, 해학과 날 선 직설 화법, 과감한 섹스 코드 등의 '싸이스러움'이 죄다 무뎌졌다.
음악은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수 시장을 겨냥한 「나팔바지」와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한 「Daddy」의 작법은 언어만 다를뿐 결국 「강남스타일」의 재현이다. 펑크(funk) 기타와 브라스, 또는 일렉트로닉으로 구분되는 사운드 차이를 제외하면 벌스에서 빌드업, 아이코닉한 댄스를 위한 훅에 이르는 구성은 익숙을 넘어 구태의연하다. 윌아이엠의 「I got it from my mama」를 레퍼런스 삼은 「Daddy」의 주요 내러티브에서는 좀처럼 창의적인 재치를 찾기 힘들다. 펑키한 벌스와 스윙감 넘치는 훅, 특유의 익살맞은 가사를 두루 갖춘 「나팔바지」가 간신히 이름값을 해내지만, 이마저도 전작들의 답습 수준이다.
수록곡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이언티와 김준수, 전인권 등 가요계 신,구 빅스타들에서 윌아이엠, 에드 시란에 이르는 화려한 피쳐링진을 완성했지만 내실은 여느 때보다 빈약하다. 신해철이 평소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일부 인용, 가사로 만들며 그를 기린 「Dream」에는 철학적 가사는 있지만 「낙원」, 「어땠을까」의 감동적 멜로디는 없다. 자전적인 「좋은날이 올거야」 가사에는 「싸군」, 「솔직히 까고말해」의 번뜩이는 센스가 휘발됐고, 전형적인 윌아이엠식 클럽 뱅어 「ROCKnROLLbaby」에서 두 베테랑의 팽팽한 랩핑은 인상적이나 음악이 주는 감흥은 역시 적다. 싸이만의 위트가 가사에 녹아있는 「댄스쟈키」, 복고풍 신시사이저와 캐치한 멜로디로 벅찬 감동을 주는 「I remember you」 정도가 수작으로 꼽을만하다.
싸이하면 떠오르는 B급의 'B'는 로우 퀄리티의 'B'가 아니다. 2001년 데뷔 이래 그가 가요계에 날린 충격파는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키치함과 B급 '정서'에서 기원한 것이었다. 그는 구태여 고상한 가사를 쓰지 않았고, 에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새」와 「챔피언」, 「환희」 등 거침없는 단어, 소재 선택과 유쾌한 문장은 통쾌감을 안겼고, 「연예인」과 「낙원」, 「아버지」 등 그만의 솔직하고 진한 감성은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은근한 울림을 선사했다. 싸이 전후로 키치함을 내세운 가수들이 있을지언정, 그만큼 B급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주무른 가수는 없었다. < 칠집싸이다 >는 그래서 익숙한 동시에 낯설다. 익숙한 원초적 흥은 살아 숨쉬지만, 날 것 그대로 투박하던 가사는 'B급 모양'으로 세공된듯 싱거워졌다. 노랫말도, 이를 담고 있는 음악도 감동이 없다. 「솔직히 까고말해」서, 그가 언제부터 이렇게 몸을 사렸는가.
2015/12 정민재(minjaej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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