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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주요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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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친구이자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염두에 두고 썼던 곡입니다. 작곡 이후 7년 가까이 숨을 죽이고 있던 이 곡은 1953년에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에야 비로소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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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시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글이 될 성싶습니다. 그에게 불어 닥쳤던 두 번의 정치적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교향곡 5번 d단조>를 설명하는 글에서 1936년의 첫번째 위기를, 또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를 거론하는 글에서는 1948년에 불어 닥쳤던 살벌한 음악가 검열, 즉 안드레이 즈다노프가 주도한 ‘반동적 개인주의자들’에 비판으로 인해 두번째 벼랑으로 몰렸다는 사실을 이미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무렵의 쇼스타코비치는 누가 보더라도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주요 작곡가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 말하자면 ‘시범 케이스’가 작용했으리라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지요. 즈다노프가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을 곤경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1948년 1월부터였습니다. 그는 이미 두 해 전부터 정치적 예술 검열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문학가들을, 이어서 연극인들과 영화인들까지 차례로 손봤지요. 마지막으로 눈길을 보낸 곳이 음악가들이었습니다. 한데 당시 쇼스타코비치의 명성은 누가 보더라도 탄탄했습니다. 그는 1946년에 레닌 훈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작곡가 조합의 레닌그라드 지역 의장까지 맡았지요. 대중적 인기는 당연히 높았고 서구와 미국에까지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즈다노프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범 케이스’로 쇼스타코비치만큼 적절한 인물도 드물었을 겁니다. 그는 당시 소비에트의 여러 음악가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쇼스타코비치에게 가장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폭압을 행사했던 즈다노프는 1948년 8월 모스크바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만(심장마비 설), 그가 주도했던 정책들은 여전히 강력한 문화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즈다노프가 죽은 이후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 적어도 5년간 그런 기조가 계속 유지됐습니다. 그래서 ‘즈다노비즘’이라는 말까지 생겼지요. 이 즈다노프식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심지어 북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6년 압록강변의 삼수군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시인 백석의 불우한 삶을 들여다보노라면, 즈다노프에게서부터 이어진 일종의 ‘나비효과’를 떠올리게 됩니다.

 

<교향곡 5번 d단조>로 복권된 이후부터 1946년까지, 소비에트의 애국영웅으로까지 칭송받았던 쇼스타코비치는 다시금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잘못 찍히면 죽는다’는 사실을 그만큼 잘 알고 있던 사람도 드물었을 겁니다. 물론 거기에는 물론 개인적인 이유가 깔려 있지요. 그는 세 살 위인 자신의 누나 마리아 쇼스타코비치,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하고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그 누나가 매형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유형 당했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막을 올리던 1937년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그해에 심촌인 막심 코스트리킨이 감옥에 갇혔고, 아내 니나의 어머니인 소피아 바자르도 노동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친인척들이 줄줄이 고초를 치르는 것을 지켜봤던 쇼스타코비치는 철저하게 가면을 쓰기로 작정했던 것 같습니다. 즈다노프의 혹독한 비난 이후, 그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음악들은 당의 입맛에 딱 맞는 곡들이었지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곡이 지난번에 설명했던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입니다. 이 곡으로 그는 또 한번 스탈린상을 받기까지 했지요. 그리고 스탈린이 사망하는 1953년 3월까지, 자신의 음악적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을 한 곡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시기의 그는 영화음악을 아주 많이 작곡했습니다. 당의 검열을 거쳐야 했던 당시 소비에트의 영화는 체제 선전에 부응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쇼스타코비치는 그런 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쇼스타코비치의 서랍 속에는 숨을 죽인 채 때를 기다리고 있던 악보가 한 편 있었습니다.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였지요. 알려져 있다시피 쇼스타코비치는 작곡 속도가 매우 빠른 편에 속하는 음악가였고 이 곡을 쓴 시기는 1947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젊은 시절부터 유난히 손이 빨랐던 것에 비하자면 외려 늦게 작곡한 느낌마저 있습니다. 아마도 뒤숭숭한 정세 탓에 마음 편하게 작곡에 몰두하지 못했으리라고 추정됩니다. 어쨌든 그는 즈다노프의 혹독한 비난에 직면한 직후에 이 곡을 완성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출판과 초연을 보류합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세월을 묵묵히 견디기로 한 것이겠지요. 그렇게 해서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는 침묵의 서랍 속에서 동면의 세월을 보냅니다.

 

작곡가가 언제 발표할 수 있을지 모르는 곡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힘겹고 고독한 일입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적어도 1948년부터 1953년까지 그렇게 숨죽이며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쇼스타코비치의 타협적 선택이었지요. 권력에 굴종한 비굴한 삶이었다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혹독했던 상황과 쇼스타코비치의 소심한 기질, 또 친인척들이 줄줄이 체포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경험 등은 그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1932년에 니나와 결혼했던 그는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즈다노프의 비난에 직면했을 무렵, 딸 갈리아는 열두 살이었고 아들 막심은 열 살이었습니다. 영웅적 저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일신의  안위를 접어둔 채 저항에 몸을 바친 레지스탕스들은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해서 곧바로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오로지 ‘도덕적 잣대’로만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것도 별로 균형 잡힌 시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이 시기에 서랍 속으로 들어갔던 악보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 외에도 몇 곡이 더 있었습니다. 1948년 여름에 작곡했던 <유대 민요 연가곡집>, 1949년 여름에 썼던 <현악4중주 4번>과 1952년 가을에 완성했던 <현악4중주 5번> 같은 곡들입니다. 말하자면 이 곡들은 자신만의 내밀한 방으로 돌아온 쇼스타코비치, 가면을 벗고 거울과 마주한 그의 맨얼굴들이었던 셈이지요.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는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친구이자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염두에 두고 썼던 곡입니다. 작곡 이후 7년 가까이 숨을 죽이고 있던 이 곡은 1953년에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에야 비로소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지요. 스탈린 사후에 소비에트에서는 즈다노비즘에 대한 비판이 드디어 막을 올리는데,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예술의 역사 전반을 살펴보면 명백하게 정치적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지요. 물론 예술이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숨죽이고 있던 소비에트의 예술가들이 해빙기를 맞아 주장했던 내용들을 요약하자면 예술의 정치적 획일화에 대한 반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당시의 예술가들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자체를 드러내놓고 반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예술을 국가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추락시킨, 그래서 결국 예술을 협소한 틀에 가둬버린 즈다노비즘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것이지요. 그런 반발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쇼스타코비치는 또 다른 시대적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모든 상황이 쇼스타코비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벌어졌고, 그는 다만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적응했을 뿐이라는 점이지요. 


1955년 10월 29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니홀에서 드디어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가 초연됐습니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1903~1988)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지휘했고, 바이올리니스트는 당연히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에 걸쳐 각각 두 곡씩 모두 여섯 곡의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작곡 순서로 따지면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는 두번째 협주곡입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 c단조>를 1933년에 쓴 것 외에, 나머지 협주곡들은 모두 스탈린 사후에 작곡됩니다. 이 또한 쇼스타코비치가 음악가로서 겪어야 했던 풍파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는 여섯 개의 협주곡 중에서도 규모가 큽니다. 1악장은 특이하게도 모데라토 템포의 녹턴(야상곡)이지요. 오케스트라의 저현 파트가 처음 네 마디를 무겁게 연주하다가 독주 바이올린이 앞으로 나서면서 강렬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도입부 주제를 연주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선율들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단순한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명상적인 분위기마저 느끼게 합니다. 중간부를 넘어서면 첼레스타와 하프가 바이올린 독주의 배경으로 합류하는데, 그 분위기가 신비하면서도 약간 몽환적입니다.  


2악장은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1악장과 댓구를 이루는 격렬함을 느끼게 하지요. 독주 바이올린이 선보이는 현란한 더블 스토핑, 중간부를 넘어서면서 등장하는 팀파니와 실로폰, 탬버린의 갑작스러운 리듬도 인상적입니다. 1악장에서 억제했던 에너지를 일거에 터뜨리는 것 같습니다. 코다로 달려가면서 더욱 격렬해지다가 급박한 느낌으로 마침표를 찍지요.

 

3악장은 파사칼리아 풍의 악장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무곡 양식을 가져와 앞의 두 악장이 보여준 파격과는 맛이 다른, 고전적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팀파니와 첼로, 더블베이스, 호른이 어울려 장엄한 분위기로 막을 열고, 이어서 파곳과 튜바 등의 관악기들이 코랄(합창) 분위기의 변주를 선보입니다. 거기에 이어지는 독주 바이올린의 선율은 짙은 비애감을 풍깁니다. 특히 연주시간 4분이 넘어가는, 장대하고 화려한 카덴차야말로 3악장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지막 4악장은 익살맞은 느낌의 부를레스카(burlesca) 악장입니다. 팀파니가 악장의 시작을 알리면서 현악기와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이어서 목관악기들이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3악장 카덴차에서 이미 등장했던 바이올린의 화려한 테크닉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는 악장입니다. 마지막은 프레스토로 급박하게 달려 나가다가 활기차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p.s. 초연 당시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현재 국내 매장에서 품절 상태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작 펄만, 주 빈 메타ㆍ이스라엘 필히모닉 오케스트라/1988년/Warner Classics


LP 시절이 끝나갈 무렵인 1988년 녹음돼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음반이다. 명쾌한 호연이다. 오이스트라흐에 비하자면 좀더 감정이 드러나는 연주라고 할 수 있다. 느리고 빠른 모든 악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테크닉을 보여준다.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좋다. 이 음반도 매장에서 당장 구할 수는 없지만 올해 안에 수입돼 판매될 전망이다. 글라주노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커플링돼 있다.




막심 벤게로프, 로스트로포비치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4년/Teldec


벤게로프는 이제 고작 40대 초반이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러시아 출신의 신동인 그는 한때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연주자였다. 특히 1990년대 초반의 벤게로프는 보기 드문 에너지와 테크닉으로 바이올린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이 녹음은 바로 그 시절의 기록이다. 에너지 넘치는 연주, 감성적으로도 완전히 물이 올라 있다. 특히 4악장에서 달려 나가는 속도는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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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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