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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미친 예술가의 환상적인 세계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혁명과 반혁명의 충돌이 가장 극심했던 프랑스에서 1830년에 작곡된 곡이지요.‘소설적 교향곡’으로서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했습니다.
1804년에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은 유럽 곳곳을 정복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1806) 스페인을 속국으로 만들고(1807)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인 오스트리아를 1809년에 굴복시켰습니다. 잇따른 승리에 도취해 영국, 러시아와 또 한판의 전쟁을 벌이지요. 하지만 이 지점부터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광활한 러시아를 정복하는 데 실패한 데 이어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했던 영국과의 전쟁에서도 패배하지요. 결국 그는 1814년 4월에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로 유폐됩니다.
베를리오즈 [출처: 위키피디아]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은 좌절됐지만 당시 유럽 사회에 남긴 영향은 거대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유럽 곳곳으로 전파된 것이지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의 ‘빈 체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빈 체제’는 빈 회의의 결과물이지요. 1814년에 유럽 각국(오스트리아?영국?러시아?프로이센)의 보수파 지도자들이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다시 세상을 옛날로 돌리기로 합의합니다. 이후의 복고적 질서를 ‘빈 체제’라고 부릅니다. 프랑스에서는 부르봉 왕조가 부활하고 독일 지역에는 독일 연방이 세워지지요. 북이탈리아, 폴란드는 열강에 의해 분할 지배됩니다. 한마디로 말해 빈 체제는 절대왕정으로의 복귀라고 할 수 있는데, 혁명의 본산지였던 프랑스에서 특히나 강력한 반동 정책이 실시됩니다. 왕좌에 복귀한 샤를 10세가 이를 주도했지요. 일단 의회를 해산시켰습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으로 토지를 잃었던 귀족들에게 대대적인 보상 정책을 실시하지요.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하겠습니다. 당시 유럽의 정세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는 것은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데 상당히 요긴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음악들이 대체로 이 시기의 예술적 산물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빈 체제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것은 왕과 귀족들을 위한 세상으로의 회귀였기 때문에 곧바로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힙니다. 유럽 곳곳에서 크고 작은 봉기들이 일어나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에서 1830년에 일어났던 7월혁명이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혁명의 주체는 노동자와 소시민, 그리고 자본가들이었습니다. 노동자와 소시민들은 공화정을 완전히 부활시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들끓었지만 자본가들로 이뤄진 혁명 지도부는 결국 ‘입헌군주제’라는 방식으로 타협하지요.
문화사적으로 보자면 이 시기는 낭만주의의 시대입니다. 혁명의 열기와 함께 찾아온 낭만주의의 기운이 유럽 전역에 흘러넘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가장 두드러진 장르는 문학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괴테와 실러가 낭만의 풍조를 이끌었지요. 괴테가 나폴레옹 지지자였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러의 시에 기초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태어난 것도 이미 썼던 칼럼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물론 많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빅토르 위고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레미제라블>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소설의 주인공 장발장이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쳤던 해가 1796년입니다. 한데 어린 조카는 왜 굶주렸던 걸까요? 우리는 이 장면에서 혁명 이후의 혼란한 사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혁명은 당연히 혼란을 수반하지요. 그 혼란을 겪으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겁니다.
당시에도 물론 그랬습니다. 물가가 엄청나게 치솟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장발장은 빵을 훔치다가 19년의 노역형을 선고받았고 훗날 탈출해서 신분을 바꾸고 살아갑니다. 아마 뮤지컬이나 영화로 <레미제라블>을 본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젊은이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위를 하는 장면이 기억나는지요? 그 장면에 이르면 장발장은 어느새 노년에 이르러 있지요.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그 장면은 1832년 6월 파리에서 일어났던 봉기입니다. 장발장은 사랑하는 양녀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구하려고 이 봉기에 참여하지요.
자, 다시 음악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혁명과 낭만이 몸을 섞던 시대에 음악은 과연 어땠을까요? 음악에서도 물론 낭만주의가 유행합니다. 특히 이 시기는 문학과 음악의 융합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대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융합’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지만, 사실 이 ‘융합’이라는 것은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 음악에서 이미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낭만주의적 시를 가사로 삼은 ‘가곡’을 비롯해 한 편의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성격을 띠는 ‘표제적 교향곡’이 중요한 장르로 등장했다는 뜻입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은 그 지점을 잘 보여주는 음악입니다. 혁명과 반혁명의 충돌이 가장 극심했던 프랑스에서 1830년에 작곡된 곡이지요. 바로 7월혁명이 일어났던 해입니다. 한마디로 ‘소설적 교향곡’으로서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했습니다. 물론 이 교향곡을 설명하면서 주로 거론되는 것은 베를리오즈 개인의 특정한 체험들이지요.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 받았던 감동과 오필리어와 줄리엣을 연기했던 여배우 해리엇 스미스슨을 향한 사랑, 또 베토벤의 교향곡과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받은 영감과 자극 등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다 틀리지 않은 얘기입니다. 그런 개인적 경험들이 <환상교향곡>이라는 걸작 속에 녹아들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기억해야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파리음악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던, 그래서 피아노를 아예 칠 줄 몰랐던 베를리오즈, 대신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했던 그는 낭만주의 시대의 선택을 받은 음악가라는 점이지요. 독일의 바그너가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의 베를리오즈도 기질적으로 고전보다 낭만에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기질도 그렇거니와 인생을 살면서 겼었던 여러 가지 풍파, 아울러 자기 과시적인 태도 같은 것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기질적 낭만성이 당대의 시대적 흐름과 만나면서 음악사를 아로새긴 걸작들로 남은 것이겠지요.
<환상교향곡>은 짝사랑했던 여인 스미스슨을 생각하면서 작곡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베를리오즈 본인의 자전적 기록에 따르면, 1827년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영국의 한 극단이 <햄릿>을 공연하는 걸 보았다고 하지요. 그 다음날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가 내걸렸고 베를리오즈는 그 연극도 한걸음에 달려가 관람했다고 합니다. 스물네 살 때였지요. 혈기 왕성한 베를리오즈는 셰익스피어 연극에 매료됐을 뿐 아니라 여배우 스미스슨에게 완전히 빠져 버립니다. 훗날 이렇게 회고하지요. “나는 절망적인 상태로 몇개월을 보냈다. 모든 파리 사람들을 탄식하게 만든 오필리어 역의 여배우 꿈을 꾸었다.” 그리고는 거의 스토킹에 가까운 구애를 퍼붓습니다. 광적인 러브레터를 계속 보냈던 것이지요. 하지만 잘 나가던 여배우는 무명의 작곡가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스토커 베를리오즈’가 무서웠을지도 모릅니다.
베를리오즈는 스미스슨을 향한 짝사랑이 좌절된 후,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뺏기기도 합니다. 벨기에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 모크와 사랑에 빠져 청혼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유명한 피아노 제작자인 플레옐과 결혼합니다. 베를리오즈는 격분했겠지요. “그들을 죽이고 자살하려고 했다”는 기록을 자서전에 남겨놓고 있습니다. 광적인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베를리오즈는 훗날, 그러니까 1832년에 자신이 그토록 구애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여배우 스미스슨과 재회합니다. 말하자면 인기가 시들해진 왕년의 스타, 게다가 자신이 직접 극단을 만들었다가 파산을 맞은 스미스슨과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지요. 베를리오즈는 “빈털털이가 된 이 딱한 여인”과 이듬해에 결혼합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두 사람은 아들을 하나 낳고 헤어지지요. 그녀가 알콜 중독자여서 파경을 맞았다는 ‘설’이 많은데, 그런 얘기는 주로 베를리오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어서 100% 신뢰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환상교향곡>은 스미스슨을 향한 연모가 좌절된 이후에 작곡한 곡이지요. 한 여인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과 환상을 한 편의 드라마로 형상화하고 있는 곡입니다. 몽상가 베를리오즈는 ‘어느 예술가의 생애와 에피소드’라는 부제를 붙여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요. 음악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고통 받던 한 예술가가 아편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는데, 아편의 양이 치사량에 미치지 못해 혼수 속에서 온갖 환각을 겪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상교향곡>보다 뒤에 작곡한 <렐리오>와 1부와 2부로 짝을 이루는 곡입니다. 모두 5개 악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베를리오즈는 애초에 각 악장의 스토리를 일일이 밝혀두었으나 훗날에 표제만 남기고 모두 삭제하지요.
1악장은 ‘꿈, 열정’입니다. 느린 목관의 연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사랑을 향한 동경을 묘사하지요. 점차 음악이 격렬해지고 빨라지면서 사랑의 고통, 질투에 휩싸인 감정을 그려냅니다. 2악장은 ‘무도회’입니다. 약간 긴장감이 감도는 현의 트레몰로와 하프로 막을 엽니다. 이어서 우아하고 경쾌한 왈츠가 등장하지요. 베를리오즈 본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음악 속의 주인공은 무도회의 춤추는 사람들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이리저리 찾아 헤맵니다. 혹은 어디를 가든 그 여인의 모습이 끊임없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하지요.
3악장 ‘들판의 풍경’은 표제처럼 목가적인 악장입니다. 목동의 느긋한 피리 소리로 시작하는데, 곧 이어 현악기들의 트레몰로가 약간의 불안감을 지핍니다. 주인공이 들판을 거닐며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는 악장이지요. 목가적인 평안함과 어두운 예감이 뒤섞여 있습니다. 4악장은 ‘단두대로의 행진’입니다. 팀파니가 연주하는 불길한 리듬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주인공의 꿈속에서 펼쳐지는 그로테스크한 환상이 펼쳐집니다. 사랑했던 여인을 살해한 죄목으로 단두대로 끌려가는 장면이 행진의 음형으로 묘사되고, 악장의 거의 끝부분에 이르면 사형의 칼날이 쿵 하고 떨어지는 장면까지 음악으로 그려냅니다. 매우 사이키델릭한 악장입니다.
5악장은 ‘마녀들의 밤의 축제와 꿈’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향을 받은 악장으로 알려져 있지요. 단두대로 끌려가서 처형되는 4악장보다 오히려 더 그로테스크합니다. 주인공의 장례식에 모여든 마녀들의 소름끼치는 춤이 펼쳐집니다. 심지어는 사랑했던 여인마저도 마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장례식의 종소리, 이어서 바순과 튜바가 레퀴엠 중 ‘분노의 날’(Dies Irae)을 연주하는 부분에 귀를 기울여보기 바랍니다. 처음 듣는 분들은 음악이 좀 장황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베를리오즈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들으면 한 편의 그로테스크한 드라마처럼 들려올 겁니다.
▶샤를 뮌슈(Charles Munch), 보스톤 심포니/1962년/SonyMusic(RCA)
샤를 뮌슈는 보스톤 심포니와 1962년에, 파리오케스트라와 1967년에 <환상교향곡>을 레코딩했다. 두 연주 모두 빼어나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에서는 보스톤 심포니를 지휘한 음반이 구입하기에 좀더 용이하다. 수십 년 동안 <환상교향곡>의 필청음반으로 손꼽혀온 녹음이다. 해석은 역시 뮌슈의 스타일대로다. 힘이 넘치는 화려한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과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피해갈 수 없는 음반이다.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1974년/Philips
지난해 타계한 콜린 데이비스도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운위하면서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출신의 지휘자이지만 베를리오즈의 음악은 그의 주요한 레퍼토리로 자리해 있다. 앞서 언급한 뮌슈의 강렬한 드라이브에 비하자면 상당히 보수적인 느낌의 연주다. 주관적인 해석을 가능한 배제한 채 균형잡힌 연주를 들려주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차분하게 음악의 구조를 음미하게 해주는 연주다. 물론 이 또한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겠다. <환상교향곡>의 극적인 느낌을 짜릿하게 맛보려면 뮌슈의 지휘가 더 적절하겠다.
ps. 존 엘리엇 가디너가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1991년/Philips)은 시대 악기를 사용한 호연입니다. 현재 품절 상태인 탓에 추천 목록에 넣지 못했습니다.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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