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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남작은 잊어버리고, 계속 나무만 찾고 있다

하염 없이 소설 읽다, 첫번째 리뷰 『나무 위의 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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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소설을 읽는 건 소설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니다. 서점에서 일하느라 소설 읽기가 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 직업이나 이유 같은 건 잊게 되기도 한다. 그런 독서를 ‘하염 없이 소설 읽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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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은 사실 여름에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다. 아주 싱그러운 녹색의 내음, 정수리 위에서 떨어지는 태양의 촉감, 슬쩍 느슨해진 나무등걸의 촉감이 갈피갈피에 배어있다. 여름날 나무 많은 공원에서 펼쳐 든다면, 주변의 모든 풍경이 이 책의 배경으로 연상되는 놀라운 체험도 할 수 있다. 11월에 출간되었던 이 책의 초판이, 2판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는 8월에 출간되었다는 우연도 그런 면에서 운명적인 것만 같다. 모든 자연의 섭리처럼 제 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닐까?

 

이 책에 그런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면 그런 도저한 힘을 거슬러 겨울의 초입에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그런 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어울리고, 가장 자연스럽다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일. 그 거부가 필요하면서도 아주 낭만적인 모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 칼비노가 말하는 이 ‘모험’은 현실을 멀리하고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어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현실을 어느 정도 벗어나는 일이 가장 좋은 현실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땅과 나뭇가지 사이의 높이 정도 벗어나면 딱 좋다.

 

주인공 코지모는 달팽이 요리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부모님에 대한 반항으로, 식탁을 박차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절대 내려가지 않을 거예요”라고 선언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 두 살. 그는 이후 평생 그 말을 지켰다. 『나무 위의 남작』은 그렇게 한 평생을 나무 위에서 살아간 코지모의 유쾌한 모험담이다. 허리엔 단검을 차고, 덜 떨어진 삼촌과 마을의 수도관을 설계하고, 산적과 함께 책을 읽고, 해적들을 염탐하고, 스페인 사람들을 향한 먼 여행을 떠나고, 볼테르에게 편지를 쓰고 그리고 풋내 나는 멋진 사랑도 한다. 단 한번도 땅에 발을 딛지 않은 채.

 

오로지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독특한 인물이지만, 코지모의 일상은 우리와 특별히 남다르지 않다. 먹고, 자고, 빨래하고, 연애도 하고, 책을 읽고, 여행도 하는 걸 사람들은 보통 ‘평범한 삶’이라고 한다. 땅에 발을 딛지 않으면 지금의 삶이 무너질 것 같지만, 꼭 해야 하는 것들은 어떻게든 이루어진다. 다만 땅에서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뤄질 뿐이다. 오히려 땅에서는 줄 수 없던 도움을 사람들에게 주기도 한다. 살짝 위에서 내려다 보니, 땅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훤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코지모가 올라간 곳이 나무, 정확히는 ‘옴브로사의 나무’였기 때문이다. 칼비노가 배경으로 삼은 옴브로사는 “나무들이 울창해서 절대 나뭇가지에서 내려가지 않고도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가면서 몇 마일이고 갈 수 있는” 가상의 지역이다. 나무 정도 높이에 올라갔기 때문에 땅의 수확물과 사람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고, ‘옴브로사의 나무’가 아닌 외딴 나무 위로 올라갔다면 코지모의 모험은 결코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나무’와 ‘옴브로사’가 중요하다.

 

땅 위의 삶에서 영구히 벗어나는 코지모의 삶은 누구나의 로망이다. 다만 새로운 삶을 향한 탈출이 객기어린 일탈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도 ‘옴브로사의 나무’가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옴브로사의 나무’를 찾을 수 있을까? 기필코 찾아내고 싶다. 『나무 위의 남작』은 을 읽고 나서 남작은 잊어버리고 계속 나무만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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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저/이현경 역 | 민음사
『나무 위의 남작』에서는 끊임없이 18세기 사건들이 언급되며, 루소나 디드로, 나폴레옹처럼 역사와 자료에 근거를 둔 유명한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나무 위의 남작』은 역사 소설이 아니고 사건들 또한 모두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칼비노는 모든 사건들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공간 옴브로사 역시 칼비노가 자라난 산레모의 메리디아나 저택을 모델로 한 것으로, 수많은 나무들과 숲 속 동식물의 생태에 대한 정교한 묘사에서는 칼비노의 해박한 지식이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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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저/<이현경> 역10,800원(10% + 5%)

보르헤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이탈로 칼비노의 대표작이다. 환상과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한 『반쪼가리 자작』『나무 위의 남작』『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렇게 세 편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선조들』3부작은 ‘현대인들의 족보’로 일컬어진다. 『나무 위의 남작』에서는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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